[이미지 출처: 클래식매니저]

 

 

 

머리가 아팠습니다. 여지없이 지끈지끈했어요. 출장 야근 후 함께 일한 분과 했던 술 한 잔 덕분이죠. 아침부터 찌뿌둥했습니다. 얼큰하게 매워 땀을 한 움큼 쏟아내게 만든 해장라면도 숙취를 쫓아내지 못했으니 '해장'이라는 이름이 무색했어요.

 

따뜻하고 진한 아메리카노에 기대를 걸고 카페에 갔습니다.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가방에서 요즘의 보물 1호 노이즈캔슬링 헤드폰을 꺼내 쓰고 파워를 켰습니다. 곧 주변 소음이 차단되니 나만의 공간이 생긴 거 같았어요.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을 플레이했습니다.

 

관악기가 진중하게 선율을 짚어 나가기 시작하고 현악기가 그 뒤에서 긴장을 유발시켰어요. 길 떠나는 이가 멀어지는 게 아쉬웠나봐요. 여리던 멜로디와 화음은 장중하게 커지며 배웅합니다. 오케스트라 전체 악기가 한껏 응축되었던 긴장을 단번에 터트리는 듯한 하이라이트는 짜릿한 쾌감마저 느껴졌어요.

 

기분이 나아집니다. 풍성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헤드폰으로 좋아하는 곡에 푹 빠지니. 스마트폰으로 오래간만에 페이스북에 들어갔습니다. 온갖 뉴스가 쏟아지는 곳이라 어쩌다 들리는 편인데 그 날은 먼저 접속하게 됐어요. 필연이었을까요?

 

저작권이 만료된 클래식 음악의 음원을 무료로 스트리밍 서비스해주는 '클래식매니저(ClassicManager)'에서 글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남은 숙취마저 잊을 정도로 눈에 확 띄었죠. '클래식매니저에서 컨트리뷰터즈 멤버를 모집합니다', 한 줄만 읽고도 가슴이 두근거리더군요.

 

"클래식을 들어볼까 하는데 어디서 어떻게 들어야 해?", "뭐부터 들어야 해?" 라는 질문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가이드 해줄 수 있는 사람을 뽑았습니다. 즉, 클래식 음악에 관심있는 분들이나 입문자들이 애호가가 될 수 있도록 리뷰어, 에반젤리스트 등의 역할을 하는 거죠.

 

보자마자 '와~ 재미있겠다' 싶었습니다. 공연 관람 후 리뷰를 남겨야 직성이 풀리는 기질과 클래식 음악과 무용에 푹 빠진 제게 새로운 취미 활동이 될 거라는 걸 직감했어요. 돈 버는 게 아니지만 상관없었습니다. 머뭇대기 전 지원하기 위해 노트북을 열었어요.

 

윈도우가 부팅되는 짧은 순간 자성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너가?', '모집 조건을 봐봐~ 주제에 맞는 플레이 리스트를 뽑고 명반을 소개할 수 있겠어?', 모차르트와 베토벤, 베르디와 푸치니, 바그너와 브람스 등의 음악과 오페라 그리고 발레와 같은 무용 공연에 환장하지만 소개까지 할 내공이 쌓이지는 않았죠.

 

앞뒤 없던 흥겨움이 슥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전문적인 공부를 해온 사람들 혹은 어렸을 때부터 풍부하게 접해온 분들만 할 수 있어 보였어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덤빈다고 무시당하지 않을까 걱정도 됐습니다. 기회가 배웅 당하고 있었어요.

 

자신감이 떨어졌지만 놓치기 싫었습니다. 이렇게 의미롭게 놀 수 있는 찬스가 언제 올지도 모르겠구요. 몇 가지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그들을 유혹하기 위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나는 어쩌다 푹 빠지게 되었을까?', '그 과정을 공유한다면?'

 

별달리 아는 게 없었어도 클래식 공연 전반을 즐기는 모습과 어떤 감명을 받는지 진솔하게 보여줄 수 있을 거 같았어요. 또한, 음악과 무용에 대해 이해하고 싶은 욕구가 크니 그 과정을 찬찬히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흥미가 있으나 선뜻 다가오지 못하는 분들에게 내밀 손 정도의 역할이면 충분했어요.

 

이 마음을 담아 지원서를 써서 보냈어요. 식어버린 아메리카노를 마시는데 어느덧 이메일처럼 숙취도 망설임도 걱정도 시원스레 날라갔습니다. 결과는? 아래의 사이트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https://www.facebook.com/classicmanagerproject/posts/1402607789828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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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감사한 마음으로, 지상 Dream

http://wangmada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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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안녕하세요. 왕마담 왕지상입니다. 뜸해도 너무 뜸했지요? 여전히 이렇게 끌리는 흥미를 쫓아 열심히 놀고 있습니다. 편지에 언급한 클래식매니저는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폰 모두 App 다운로드가 가능하니, 무료로 거장들의 클래식 연주를 편히 감상하시길 바랄게요^^

 

 

 

[Wagner: Tannhäuser Overture - Thielemann / Münchner Philharmoni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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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마담 2017.06.20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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