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가는 길'은 프랑스길과 포르투갈길 등 여러 길을 통해 스페인 북서부의 '산티아고'라는 도시까지 순례 하는 것을 말한다. 그 중 프랑스길이 가장 일반적이다. 이 길은 프랑스의 '생장피드포르'부터 시작하여 '산티아고'까지 약 800Km 정도를 걷게 된다. 평균 하루에 20~25Km를 걷게 되어 약 32~35일 정도가 걸린다.

 

시간적인 여유가 모자란 사람들은 산티아고에서 가까운 큰 도시들에서 시작하게 되는데 나는 대체적으로 약 2/3 정도는 걸을 수 있는 Burgos라는 도시에서 시작했다.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걷는 데에 있어 첫번째 관문은 바로 알베르게(순례자 숙소)를 찾는 일이었다. 그리고 나서는 순례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끄레덴시알'이라고 불리는 순례자 여권을 만들어야 한다. 이 순례자 여권은 알베르게나 성당에서 만들 수 있고 이것을 보여주어야 순례자 숙소인 알베르게에서 잘 수 있다. 스페인의 보통 호스텔이 약 20~40유로 정도라면 알베르게는 5~10유로 정도이니 훨씬 싸고 저렴하다.

                                                 [순례자 여권과 각 알베르게에서 받은 확인 도장]

원래 계획은 Logrono 라는 Burgos보다 100Km 산티아고에서 더 떨어진 도시에서 시작하려 했다. 그러면 총 600Km정도를 걷게 되는 일정이었다. 그런데 마드리드에서 버스를 타고 도착한 Logrono에서 알베르게(순례자 숙소)를 찾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한국에서 알아간 정보와 Logrono에서 알려준 알베르게의 정보는 모두 어느 Area를 알려준 것 뿐이기에 순례길을 실제 걷지 않은 실제 정보를 모르는 상태에서의 알베르게를 찾는 일이 어려웠다. 그 전까지는 특정 호텔이나 민박집처럼 지도에 특정하게 표시가 되어 있는 줄 알았다. 게다가 지도를 잘못 보아 한참 헤매다 묻고 물어 찾은 알베르게는 이미 문이 닫혀 있어 어쩔 수 없이 그 날 호텔에서 자야 했다.

 

조금 낙담한 나는 이왕 하루를 더 늦게 시작하는 만큼 아예 100Km 정도 앞선 거리에 있는 Burgos에 가서 좀 여유롭게 시작하고자 마음먹고 그 다음날 버스를 타고 Burgos로 이동했다. 그런데, Burgos라는 마을에 도착해서도 알베르게를 찾기 위해 그 큰 도시를 한 바퀴 정도 돌았다. 도시 외곽에서 찾고 있는 알베르게가 이미 재작년 2009년도에 문을 닫았다는 얘기를 듣고 또 낙담했다. 이러다 순례길 걷기도 전에 진이 다 빠질 거 같았다. 그 근처 인근 호텔에 들어가 알베르게를 찾는다는 문의를 하니 도심 성당 근처에 가면 사설 알베르게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 다시 도심으로 향했다.

                                                                 [Burgos 성당 야경]

 

감격적으로 처음 찾은 알베르게에 들어가 순례자 여권을 만들고 처음으로 순례자 확인 도장을 받고 숙소로 올라가니 이층 침대가 즐비하다. 글로만 읽고 사진으로만 보던 알베르게의 내부에서 직접 자다니... 그런데 사다리도 없는 이층 침대에서 자란다. 조금 어리둥절 어리버리하고 있을 때 옆에서 어떤 사람이 묻는다. '한국에서 오셨어요?' 나는 너무나 반가웠고 조금은 낯설었다. 짧기도 짧게 대답했다. '~ 안녕하세요. 그나저나 이층 침대를 어떻게 올라가야할까요?' 그렇게 말을 트고 Burgos 도심과 야경을 구경하고 알베르게에 들어왔다가 다시 저녁먹으러 나가는데 다시 마주친 그 분과 저녁식사를 하게 됐다. 그러면서 많은 정보를 얻게 되었다. 정말 따뜻하게 살아있는 정보들...

 

그렇게 그 분과 이틀을 같이 걸었다. 정말 혼자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그 분과 같이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으면서 Bar에서는 대체로 무엇을 먹고 저녁은 어떻게 먹는지 하루에 얼마나 걷는지 알베르게를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 등등 많은 부분을 그냥 체험적으로 배운거 같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렇게 같이 걸으면서 함께 걷는 것 자체로 위안을 받을 수는 없었다. 또한 그 분도 누군가와 함께 걷는 것에 꽤 신경쓰이는 듯 보였다. 3일째 되는 날은 Fronista라는 마을이었는데 여기서부터는 그 분과 그리고 스페인 친구 한 분과 헤어져 드디어 혼자 걷게 되었다.

                                             [순례길의 처음, 어리버리한 나를 이끌어준 친구들]

 

그런데, 그렇게 일행과 떨어져 혼자 걷는 것이 썩 즐겁지 만은 않았다. 왠지 모를 쓸쓸함과 외로움 게다가 처음 걷는 길들의 낯설음과 추위가 가슴 속을 헤집는다. 그런 내 마음때문이었는지 다음 마을인 Carrion de los condes 라는 마을에서 레스토랑을 찾다가 못 찾고 Bar에서 딱딱한 하몽이 들어간 보카디요스를 먹다가 덜컥 체해버렸다. 하몽 냄새를 맡는 순간 비위가 상했으나 배고픔에 꾸역꾸역 반 이상을 먹었는데 그게 잘못되었는지 속이 영 좋지 못했다.

 

그런 상태에서 다음날 거의 30Km를 걷고, 또 그 다음날인 크리스마스 이브날에는 약 50Km를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걸었다. 이틀 동안 먹은 것이라고는 과일과 슈퍼에서 샀던 빵 그리고 스파게티가 전부였던 듯 싶다. 소화제를 먹어도 그리 쉽게 좋아지지는 않았다. 크리스마스날에는 Leon 이라는 큰 도시까지 걸어가면서 그 전날 너무 무리한 탓도 있거니와 배도 고파 그리 큰 힘이 나지 않았다. 천천히 걷는데 왠지 등 뒤에서 식은 땀이 나는 듯 싶었다. 그래도 Leon까지 약 20Km를 꼬박 걸어야 했다. 중간에 만나는 마을마다 Bar나 레스토랑 모두 문이 닫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날 먹은 하몽 보카디요스]

 

그날 걸으면서 몸도 안좋아 이런저런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특히 내가 자주 체하는 것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떤 순간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이렇게 자주 체하는 이유는 그 무언가를 마음에 들지 않아 받아들이지 않아'서 일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지난 시간 자주 체했던 때를 생각해본다. '갑자기 추워졌을 때',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비위가 상했을 때' 등에서 음식을 먹으면 거의 체했다. 그리고 음식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이기도 하지만, 음식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날씨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등 내가 처해있는 어떠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체하는 경우가 많았다.

 

'산티아고 가는 길'의 첫 인상은 실망 그 자체였다. 순례자를 위한 숙소인 알베르게는 쾌쾌했고 게다가 비성수기인 겨울이라 문닫혀 있는 알베르게가 너무 많아 열려있는 알베르게 찾는 것이 하루의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스페인 사람들에게 ''는 많고 많았던 순례자 중 한명일 뿐이었고 추운 겨울에 나선 길은 그저 끝없는 평원일 뿐이었다. Bar는 툭하면 문닫혀 있었고 레스토랑은 한국에서처럼 손쉽게 찾을 수 없었다. 편의점은 전혀 없었고 슈퍼는 큰 도시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다. 게다가 2시부터 5시까지는 특유의 문화인 시에스타로 편안하게 뭔가를 할 수 있는 것을 찾기가 어려웠고 어렵게 찾은 레스토랑에서의 저녁식사는 빠르면 밤 7 30분에서 8시 이후부터나 먹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너무나 불편했다.

                                              [걷다가 길에서 점심 식사 전 찰칵 한장]

 

'내가 여기서 뭐 하는 짓인가?' 싶기도 했고 과연 끝까지 걸을 수 있을까 싶었다. 그냥 집에 가서 편안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더 빨리 더 멀리가고 싶었다. 매일 30Km 정도 혹은 그 이상을 걸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처음 만났던 그 친구들을 만나야만 평안해질 거 같았다. 잃어버린 그 무언가를 다시 찾은 것과 같은 그 평안함을. 어쩌면 나는 손에 잡히지 않는 무언가의 목적을 찾고만 있었던 듯 싶었다. 그럴 때 체했다. 그리고 점점 더 체증은 심해졌다. 심해질 수 밖에 없었다. 목적지까지 갈 때 동안 나는 꾹꾹 참아야 했으니까. 먹는 것을 참고 쉬는 것을 참고 때론 걷는 것을 참고 과정의 즐거움을 참고 기쁨을 참고 슬퍼함을 참고 표현하기를 참고 힘겨워함을 참고 ... 어쩌면 소화됨까지 내 고집처럼 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길을 받아들여야 함을 느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모르겠으나 그저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어딘가의 삶이 아닌 지금 '산티아고 가는 길' 위에 서있는 내 자신을 받아들이고 여기를 걷고 있는 내 의지를 받아들이고 길 자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불편함을 받아들이고 지금 내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을 인정해야 함을 느꼈다. 그렇게 결심한 순간 기분 때문일지는 모르겠지만 속이 조금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더 빨리 걷지 않아도 되는 것을 느꼈다. 햇살 좋은 길 위에서 걷는 거 자체에 기분 좋아해도 된다는 것을 느꼈다. 노래를 불러도 되고 소리를 질러도 되고 잠시 쉬어도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해도 되고 지나가는 차에 손을 흔들어도 되었다.

무슨 자격이 있어야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여유 있게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을 수 특정한 사람들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길 위를 걷는 것은 그 어떤 사람이어도 괜찮았다. 나도...... 그 순간 뭐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아직 체증이 있는 게 분명했지만, 그냥 여유가 생겼다. 체증과 함께 웃음이 났다. ‘체증이 있어. 근데? 그래서 뭘? 그거 어차피 내려갈 거 아니야? 왜 그거 때문에 그렇게 힘들게 참고 걸어야 하지?’ 라는 내 가슴 속의 어떠한 울림과 질문이 퍼졌다. 길 위에서 행복하다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그 다음날 약도 먹지않고 체증이 내려갔다.
받아 들였을 때 편해졌다. 그리고 여유가 생겼다
.
그제서야 나는 정말 '산티아고 가는 길' 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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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마담 2012.02.06 08: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