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사 모든 죄를 짊어진 이미지의 매즈 미켈슨, 그를 처음 봤던 영화는 <007 카지노 로얄>이다. 테러 조직의 돈을 대신 관리해주는 자금책으로 본드를 납치하여 남자에게 섬뜩해 보이는 고문을 하며 압박했지만 오히려 제거당하는 역할을 맡았다. 특히, 피눈물을 흘리며 카지노에서 뻥카를 쳤던 역할로 날카로우며 성마른 성격 그 자체를 보여주는 듯하여 기억에 남았다. 사실 그가 연기를 잘하는 배우인지 <007 카지노 로얄>에서는 몰랐다. 연기보다는 액션 자체와 새로운 본드였던 다니엘 크레이그가 워낙 강렬했으니까. 이번 <더 헌트>에서는 놀랍도록 자연스러운 연기를 봤다. 누명에 대한 억울함 그것으로 인한 단절의 시련과 상처를 가까스로 억누르며 자신의 결백함을 절박하게 외치는 역할, 내면의 복잡함을 제대로 보여준다. 그가 <루카스>고 루카스가 <>였다. 이 영화를 통해 그는 2012 65회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절친한 사람들 사이에서 진실되고 순수한 친구이고 공동체 속에서 그 헌신에 대해 사랑받는 아이들 유치원 교사인 <루카스>, 그는 이미 갓 이혼하고 고향으로 보이는 소박한 마을로 내려와 적응하며 살고 있다. 이 마을이 그의 고향으로 보였던 이유는 절친한 친구들의 존재이다. 이미 나이 들어서도 발가벗고 놀 정도로 죽마고우이다. 그 중에서도 루카스와 테오의 우정은 좀 더 각별해보인다. 극중 루카스는 테오에게 전처와의 관계가 원만하다고 둘러대나 실룩거리는 눈으로 인해 티나는 거짓말은 테오에게 바로 걸린다.

 

        

                                                    [클라라 역의 <아니카 베데르코프>]

 

영화 초반부 사냥하는 장면이 나온다. 북유럽에서의 사냥은 개인의 취미뿐만 아니라 친구들의 우정과 마을의 화합을 함께 이어가기 위해서다. 이 때 루카스 역시 사슴 한 마리를 사냥한다. 마을 친구들과 함께 술 마시며 뒷풀이하는 장면은 우정 어린 모습들이 여러 차례 그려진다. 여자 친구와의 아기자기한 시작도 함께 보여지는데 마을에서의 생활은 행복하게 적응해가는 듯 보여진다. 술 취한 테오를 집에까지 업고 가며 루카스와의 우정을 자랑하는 모습은 마치 앞으로 보여줄 진짜 사냥을 위한 안배와 같아 위태롭게 보인다.

 

테오의 딸 클라라는 마치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잭 니콜슨과 같이 선을 밟지 않는다. 마치 깨끗하고 순수함만을 간직하는 상징처럼 보여진다. 교사로서 독특하다 여기지는 클라라에게 좀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루카스. 부드럽고 다정한 면모에게 반해 자신의 이상향으로 여기며 다가오는 클라라에게 주의를 주며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게 된다. 클라라는 의도와 다른 상황이 발생했으니 감정적 선을 밟게 된다.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밟은 선을 지우듯 루카스 선생님을 지워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거짓말로 나오게 되는데 전날 그녀의 오빠에게 본 남성의 성기 사진을 마치 당한 듯 원장 선생님에게 말해버린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진짜 사냥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관객은 클라라가 거짓말을 했고 루카스는 진실하다는 점을 명백하게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아이의 입에서 나온 거짓말의 맹신으로 치닫는 마을 사람들을 비평하기 힘들다. 특히, 유치원장에게 초빙된 아동(심리)전문가는 클라라가 (아마 거짓말이었기에) 진실을 말하기 망설이는 모습을 상처 때문으로 짐작하며 듣고 싶어하는 답을 위해 유도 질문을 던진다. 또한, 클라라가 진실이 아니라고 말했는데도 '무의식이 기억을 차단했다'는 말로 자신의 믿음을 더욱 견고히 한다. 결국 걷잡을 수 없는 맹신의 늪으로 빠져든다. 법의 무죄판결도 소용없다. 가족과 같이 여겼던 강아지가 죽고 마을에 하나 밖에 없는 마트에서는 내쫓기며 린치까지 당한다. 절친했던 친구들의 불신과 등돌림은 형벌과 다름없다. 어느덧 따뜻했던 마을은 차디찬 감옥과 같이 변했다. 마치 클라라와 같이 잘못 그어진 선 하나를 지워버리려는 듯 보여진다.

 

        

                                                     [성당에서의 루카스]

 

마을 사람들 모두가 모인 크리스마스 전야제에 자신을 위한 변론에 스스로 나서는 루카스. 이 장면은 최고의 클라이막스다. 그가 거짓말을 하는지 진실을 말하는지 아는 사람은 오직 테오뿐. 고장 나기도 했지만 애써 고쳐놓고 잘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성당에 그냥 간다. 기도가 올려지는 순간 순간마다 얼굴을 돌려 뒤에 있는 친구를 쳐다보는 루카스. 그 눈동자에는 진실된 친구의 마음을 몰라주는 원망이 가득 담겼다. 찬송가가 울리는 순간 결국 테오의 얼굴에 자신의 눈을 증거로 내어 보이며 "내 눈을 봐. 내 눈을 보라고. 뭐가 보여? 뭐가 보이기나 해? 없어.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 그만 괴롭혀." 울부짖는 모습에 눈시울이 불거질 수 밖에 없다. (거짓말을 했다면 눈가가 실룩거릴 테니까)

 

10개월 후 루카스의 아들인 마커스가 사냥 허가증을 발급받게 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 브룬의 저택에 친구들이 모였다. 이 때 계단을 올라와 방으로 향하기 위한 클라라 앞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선들이 가로 막는다. 그 앞에서 루카스 역시 촘촘하게 엮여진 상황에 부딪힌다. 클라라를 도와주기에는 그 역시 상처 하나를 극복해야 하나 그 어려운 순간을 루카스는 해낸다. 사건의 당사자들 간의 화해가 이루어진다. 사냥하며 마치는 신에서 루카스는 사슴을 잡을 수 있지만 총을 쏘지 않는다. 순간 그를 향한 마지막 총성은 맹목적 맹신에 사로 잡힌 집단의 이성에 대한 물음으로 마친다.

 

이 영화를 만든 토마스 빈터베르그(감독)와 매즈 미켈슨 모두 덴마크 출신이다. 특히, 빈터베르그 감독은 <셀레브레이션(1998)>이라는 영화를 통해 기성 세대의 가치관을 맹렬히 꼬집었던 연출을 하여 주목을 받았다. 이후 몇 편의 영화를 더 만들기는 했으나 큰 주목을 받지 못하며 긴 슬럼프를 거쳐 <더 헌트(2012)>라는 영화로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는다.

 

        

 

참고: 씨네21 889호, 895호

저작자 표시
신고
by 왕마담 2013.03.29 2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