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습의 시간, 어언 2000년을....]

 

역시 지난 시간의 복습이 먼저 이루어졌다. 인문적 소양을 이루는 데에는 문사철 식견, 정서적 함양을 위한 예술적 감성,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인문 정신이 필요하다. 인문 정신에는 감수성, 자유, 합리성, 정직, 상상력, 비판 등 인간을 이루는 온갖 정신과 사유, 감정을 말한다. BC 8세기에 꽃 피우기 시작한 <고대 그리스 문학> 부터 AD 18세기의 <고전 주의> 한껏 뛰어왔다. 많은 작가들과 작품들이 한 번 더 되짚어질 때 '~ 그랬지~' 싶었다. 좀 부끄러웠다. 내 머리는 지우개인가?

 

추천책: <그리스 로마 에세이>

 

<고전주의>와 더불어 대립되어 얘기 들었던 바 있는 <낭만주의> 문학에 대한 수업이 진행됐다. 19세기 초반 다른 사조에 비해 짧은 기간 동안 전성기를 이루었다. 짧은 기간임에도 그 영향력과 중요성이 큰 것은 인간의 기질적 고유함인 독창성, 열정, 진정성 등을 담았던 사조이기에 당연할 것이다.

 

문학의 전개보다는 흐름의 이해와 특징을 먼저 살폈다. 개인적으로는 <고전주의>의 틀에 박혀 있는 뭔가의 답답함을 <낭만주의>의 통쾌함이 깨어줄 것 같았다. 팀장님이 준비해온 수업 구성은 달랐다. 대표적인 작가들의 삶이 얼마나 외롭고 무절제했으며 우울했는지를 먼저 배웠다. 괴테 역시 "고전주의는 건강하고 낭만주의는 병이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잠시의 토론을 하기도 했지만 감상적으로는 그 말이 맞을 수 있겠지만 정열적으로 생각하면 반대가 될 것이었다. 역시 균형이 중요하다.

 

역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쓸만큼의 작가들이었기에 그 성향 역시 한쪽으로 치우쳐진 게 당연하다. 자연스레 삶으로 표현된 것뿐이겠다. 두 성향을 왔다 갔다 할 수 있을 정도의 작가는 괴테와 위고 정도 뿐. <낭만주의> 대표 시인인 영국의 워즈워스는 낭만주의 부흥을 일으킨 개관시인이었다.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유명한 바이런 역시 마찬가지. 자기비판없이 멋에 따라 살고 반골에 방탕한 생활을 일삼는 천재들이었다.

 

 

 

 

 

수업의 핵심은 그런 자유분방한 정열을 따르자는 메시지가 아니었다. <낭만주의>의 핵심 폐단인 사회의 구속에 반하는 고립 추구 본능, 사회적 협력을 어렵게 만드는 자기중심적인 의식을 절체하고 인간 개성을 되찾고 사회적 규범과 도덕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자는 얘기가 가슴에 치고 들어왔다. 또한, <낭만주의>적인 자아실현을 인생의 최고 목표로 삼거나 윤리의 최우선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자기실현은 결국 '일하는 기쁨', '부모님과의 화해', '파트너십의 경험', '깨어있음의 인지'를 함께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와우 멤버들 중 누가 낭만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대충은 생각난다. 그런데 과연 그들만이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는 것일까? 낭만주의를 동경하는 고전주의 사람은 만들어 내지 못할까? 만들어냈다면 성향을 넘나드는 위대한 작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잘 모르겠다. 사람의 성향이 분명히 있다는 점은 알겠는데 ... 그 성향에 따라 작품이 나올 수 있다면 고전주의가 득세할 때의 낭만주의 성향 사람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자유분방한 열정만이 위대하게 다뤄질 때 질서와 규율을 중시하던 사람들은 피해의식을 가졌을까?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있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선생님이 준비해온 것들이 많아서인지 토론식의 활발한 수업 진행 방식은 아직 맞지 않는 듯 하다. 그러나 좀 아쉽다. 물론 학생인 나의 준비는 거의 없었다. 반성한다. 마음과 몸만 제 시간에 참석하는 것일 뿐. 그러나, 수업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수동적으로 느껴진다. 무거웠다. 나는 유니컨 수업을 참석하면 왠지 경직된다. 뭔가의 한 마디가 족족 쓸데 없는 소리라는 메아리로 들려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위축된 것이다. 매일 매주 매달 뭔가를 배우지만 수업 시간에는 항상 제자리인 것처럼 느껴진다. 왜지?

 

저작자 표시
신고
by 왕마담 2013.08.05 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