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리뷰로 남기고 싶은 공연이었습니다. 음원이나 유튜브 등을 통해 안나 네트렙코의 소리를 들었을 때 공연 리뷰 사이트, 혹은 잡지 등에서 들리던 호평 일색이 호들갑 같았어요. '소프라노 치고는 묵직하구나' 그 이상으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작년 첫 내한 공연 왔을 때 고민하다가 예매를 취소한 건 비싼 티켓값이 원인이었죠. 그만큼의 감명을 받을 수 있을까 고민됐습니다. 하지만, 직접 공연을 보고 오신 분들이 한결같이 칭찬하는 걸 들으면서 '볼 걸 그랬나' 싶어 아쉬웠어요.

 

예상 외로 두 번째 공연을 일찍 오는 그녀의 소식을 듣자 티켓 오픈일만 기다려 예매했어요. 도저히 1층을 감당할 수 없는 가격이라 2층 가운데를 잡았는데도 다른 공연의 VIP석 이상 가격이라 부담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래도 티켓파워 답게 좋은 자리는 금방 메워져가더군요.

 

 

 

 

[Anna Netrebko-Macbeth-"Nel di della vittoria... Ambizioso spirto... Vieni! T'affretta" in Waldbuhne]

 

 

 

 

 

웅장하게 서정적이고 행진곡스러워 흥분되는 오페라 <나부코> 서곡 연주로 시작했습니다. 이 작품의 유명한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익숙한 주요 멜로디가 서곡에 섞여 들릴 때는 이미 흥분됐어요. 본격적인 공연을 위한 예열이 충분했습니다. 그녀가 부를 첫 곡은 <맥베스>의 '야망에 넘쳐서... 일어서라 지옥의 사자들이여(Nel di della vittoria ... Ambizioso spirto .... vieni, t'affretta!)' 였습니다.

 

먼저 연주가 시작되고 작품처럼 무대에 등장한 그녀를 보자 반가움에 환호 하고 싶었죠. 관중도 비슷한 마음이었던지 환호가 잇따랐습니다. 곧 레치타티보를 읊조리자 공간에 긴장이 서렸어요. 나오던 박수가 쏙 들어갔죠. 밑단과 상단이 옅으며 반짝이는 분홍색, 중간에는 불타오르는 빨간색이 섞인 드레스를 입은 안나 네트렙코는 레이디 맥베스가 되어 치솟는 욕망을 마음껏 드러냈습니다.

 

곡과 표현 자체가 드라마틱했습니다. 오페라 무대에 선 듯 연기마저 깃든 노래를 들으니 간만에 등에 소름이 살짝 돋았습니다. 음원과 영상 만으로는 느낄 수 없던 그녀의 매력이 전해진 탓이었죠. 벨칸토 오페라의 아름다운 소리보다는 인물의 성격을 녹여낸 소리를 봤습니다. 종지 부근 고음으로 갈 때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더군요. 노래가 끝나자 저도 모르게 입에서 'Brava'가 터졌습니다.

 

 

 

 

[프로그램 리스트]

 

 

 

공연은 안나 네트렙코와 남편 테너 유시프 에이바조프가 함께 했어요. 그는 사실 잘 알지 못합니다. 안나의 남편으로서 묻어 가고, 그녀를 도와주고 서포트해주는 역할일 거라 짐작했어요. 기대 자체를 하지 않았습니다. 공연 당일 프로그램북에서도 그가 부를 예정이었던 <라보엠> 중 '그대의 찬 손(Chegelida manina)'이 빠져 컨디션 마저 좋지 않을 거라 예상했죠.

 

뒤이어 나온 그의 솔로 아리아는 <루이자 밀러>의 '고요한 별 밝은 밤에(Oh! Fede negar potessi ... Quando le sere al placido)' 였어요. 처음 들어보는 곡으로 '그대의 찬 손' 만큼 드라마틱한 하이C는 없습니다. 하지만, 고음이 충분하고 앞에 부른 매우 셌던 안나의 아리아를 부드럽게 아우르는 역할을 해주더군요. 망치같은 그녀의 소리와 대조적으로 부드러운 창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낮은 기대에 대한 선물이었습니다.

 

바리톤 옐친 아지조프가 함께 하여 소프라노와 테너 성부와 함께 잘 어우러졌습니다. 에이바조프와 함께 <돈 카를로>의 '함께 살고 함께 죽는다(E lui ... desso ... I'infonte ... Dio che nell'alma in fondere)' 를 이중창으로 부르고, 오페라 <오텔로>에서 이아고가 악에 가득차 부르는 '나는 잔인한 하나님을 믿는다(Vanne; la tua meta gia vedo ... Credo in un dio crudel)'를 불러주어 반가웠습니다. 하지만, 오케스트라와 합이 안맞았는지 묻히는 경우가 있어 아쉬웠어요. 성량도 작은 거 같지 않은데.

 

 

 

 

[Anna Netrebko & Placido Domingo, Lippen schweigen]

 

 

 

 

1부는 베르디가 작곡한 오페라들의 아리아로 채워졌어요. 안나가 부른 솔로곡은 <맥베스>의 곡과 <아이다> 중 '이기고 돌아오라(Ritorna vincitor!)' 였고, 에이바조프와 듀엣으로 <가면 무도회>의 '여기 죄로 인하여 죽음에 이르는 무서운 이곳에(Preludio .... Teco io sto)'를 노래했습니다. 모두 세디 센 드라마틱한 곡들이었죠. 테너 에이바조프와 바리톤 아지조프 역시 센 곡들이기는 마찬가지였어요.

 

베르디의 묵직한 오페라 한 편을 보고 있는 듯 했습니다. 코리안심포니의 서곡과 전주곡 연주는 드라마틱한 아리아 사이에서 차분하게 분위기를 다독여주더군요. 1부에서 <나부코>의 서곡과 <라 트라비아타>의 전주곡을 연주했습니다. 주로 국립발레단 공연에서 그들의 연주를 많이 들었는데, 나쁘지 않았고 집중도 잘 됐습니다. 다른 분들의 리뷰에서는 1부에서 관악기의 불안함이 아쉬웠다고 하네요. 뒤로 갈수록 점차 안정되었다고 합니다.

 

2부는 푸치니 <투란도트>에 나오는 중창 '먼 옛날 이 궁전에서(Popo lo di pechino .... In questa regga)'로 시작했어요. 푸치니와 마스카니, 코르사코프 등 다양한 작곡가의 오페라 아리아로 구성됐습니다. 베르디에 비해 서정적이었어요. 특히 코르사코프의 <짜르의 신부> 중 '마르파의 아리아(Ivan sergeich, Khochesh)' 를 안나가 부를 때는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누르고 부드러운 소리마저 소화해내는 모습에 감탄이 나왔습니다.

 

 

 

 

[커튼콜]

 

 

 

 

인터미션을 쉬고 나온 안나 네트렙코는 무대 위에서 더욱 대담해졌어요. 오케스트라 뒤로 돌아 합창석을 배려하며 인사하고, 노래하기도 했습니다. 와중에도 또렷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그녀의 호평이 그냥 쌓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에이바조프와 듀엣으로 부를 때는 오히려 테너의 소리가 묻혔습니다. <메리 위도>의 '입술은 침묵하고(Lippen schweigen)'를 부를 때는 애교 섞인 모습까지 볼 수 있었죠.

 

마지막 곡으로는 <일 트로바토레>의 '평화로운 밤에(Tace la notte ... Di geloso amor sprezzato)'를 불렀는데, 테너와 바리톤의 힘이 좀 딸렸습니다. 아니면 안나의 파워를 쫓아 오지 못해 아쉬움이 두드러져 보였는지도 모르겠어요. 어느 기사를 보니 예전의 날씬한 모습을 포기했다는 말이 이해갔습니다. 지금의 에너지를 장기간 내려면 다이어트해서는 안될 거 같더군요.

 

앵콜로는 너무나 익숙한 '오 솔레미오'를 불렀습니다. 두 곡 정도는 불러주었으면 좋았을텐데 이걸로 끝, 공연 티켓값이 아깝지 않았으나 안나 네트렙코의 노래가 많지 않은 게 아쉬웠습니다. 공연 후에도 그녀의 음원으로는 도저히 그 매력을 백분 느낄 수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앞으로 그녀가 출연하는 오페라나 공연을 영상으로 볼 때에는 오늘의 라이브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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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마담 2017.10.22 14: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