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파커J.파머 (Paker J. Palmer)
※ 역자: 홍윤주
※ 출판사: 한문화
※ 작성자: 왕지상
※ 작성일자: 2008년5월 28일 ~ 2008년 6월 5일

1. 저자 소개
1) 이름: Paker J.Palmer
2) 출생 / 출생지 : 1939년 출생 / 미국 Chicago
3) 직업 : 교육지도자, 사회운동가, 작가
4) 그에게 느낀 점:
      그의 저서를 통해 전해주는 가르침은 그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깊이 깨달은 지혜를 누구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녹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전에 이희석 팀장님으로부터 일부 자기계발 서적의 문제점으로 꼽히는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 사람을 현혹시키는 미사여구만을 내세우는 저자들이 본받아야 할 점이다.
      또한, 이 책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달아가는 과정들 (특히, ‘어둠으로의 여행’과 ‘길이 닫힐 때’, ‘우울증’ 등)을 통해
   나에게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지만, 진정한 삶을 찾고 발견하라는 메시지를 얘기하고 있다.  또 하나, 그를
   직접 느낄 수 있을 만한 것은 ‘가르칠 수 있는 용기’라는 책의 내용이다. 타인은 그에게 탁월한 테크닉을 바탕으로 가르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반면에 그는 이렇게 표현한다. ‘그것은 죽어가는 사람의 필사적인 행동이었다!’라고…. 애원의 손짓을
   한 것은 정말 애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작은 반응에도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꼈다고…. 이 말은 그가 진심으로 학생들
   과의 열띤 토론과 진정한 가르침과 배움을 원했었기에 필사의 치열함과 애원, 감사함이 베어 나오지 않았을까?

2. 독후감
  ※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는 팀장님의 강독회를 통해서였다. 사실 나는 바랬었다. 이 책을 읽으면 정말 손쉽게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기를…. 지금 생각하면 정말 말도 안되는 것을 원했었다. 하지만, 이 책으로 인해 ‘내 자신이 어떤 사람
인지?”에 대한 관심과 생각이 생겼고, 진정한 삶을 살기 위해 진정한 ‘나의 모습’을 찾기를 갈망하게 되었다. 그 중 지금까지의 큰 성과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은 내 자신을 조금 더 얘기해 줄 수 있는 ‘내가 좋아하는 단어’와 ‘내 미래 명장면’을 작성했다는 것이다. 진심을 다하여…. 그리고 틈틈이 나에 대한 힌트 같은 생각과 기질이 발견되거나 떠오를 때 마다 기록해두려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비록 원활하지는 않지만….

      아직 내 자신! 이 책의 저자와 같이 확고히 ‘나의 길’이 무엇인지 ‘나의 소명’이 무엇인지 모른다. 지금하고 있는 일을 할 때
그 본질이 나에게 맞는 일인지조차 모른다. 하지만, 나는 ‘열정적인 사람들’을 만나면 기분이 좋고, ‘MBA’라는 단어를 발견하면
모든 관심이 쏠리고, 지금하고 있는 일을 좀 더 잘하고 싶고, 책도 많이 보고 싶다. 무엇보다 내 자신이 완벽/완전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며, 그것으로 인해 나의 마음은 조금 더 여유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곧 나는 나의 소명에 맞는 ‘사명
서’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이 책은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다. 

    곧 나는 나의 내면의 기쁨과 세상의 요구가 만나는 그 곳에 서 있을 것이다.

01. 1장 ‘인생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라’를 읽고 나서….
※ 나는 내 삶의 목소리에 어떻게 귀 기울여야 하는가? 조용히 있는 것만으로 내 삶은 나에게 언질을 줄 것인가? 아닐 것이다.
    이 책의 저자와 같이 고요함 안에서 치열하게 자신을 관찰하고 발견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무심히 나오는 버릇, 실수
    를 통해 나오는 행동들, 그리고 매 순간순간의 내 마음과 강점의 흐름을 관찰하고 기록하자.
    그것이 나를 발견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치열하고 이 고요한 열정을 지속하자. 찾으려 노력하면 발견할 것이다.
※[15 읽다가….]소명은 노력이 아닌 자신의 본질을 따르는 것.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의 차이.
※[16 읽다가….]자기자신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치를 찾게 되는 것이 자기 발명!
※[21 읽다가….]몰입! 타인의 말을 들을 때 나의 생각을 버리자! 그 다음에 하자.
※[22 읽다가….]자기자신을 찾기 위해서는 삶에 몰입해야 한다.

02. 2장 ‘이제 나 자신이 되다’를 읽고 나서….
  ※ 왜? 저자는 자신을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그 소명이 말하는 대로 살면 그것은 인류의 진리가 된다는 것일까? 그 것은
      본성을 따르는 것이니까? 더 이상 분리되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며, 자신이 만들어 놓은 감옥에서 지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니까. 나는 이 삶에 어떤 소명을 가지고 있을까? 지금 내가 손꼽는 ‘좋아하는 단어’와 ‘미래 명장면’ 은 진정한
      나의 재능의 힌트일까?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 책의 저자처럼 명쾌하게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요하고도 지속적인 열정을 가지고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자. 지금 당장 온전한 삶을 치열하고도 진심
     으로 살겠다고 결심하자.
※[32 읽다가….]두려움: 눈치, 체면, 진급 등의 사회적 지위, 사회적 기준 타인의 인정과 평가 등등, 학교, Level
※[46 읽다가….]다시 읽으며 또 한 번 배우게 된 것들!!! 너가 원하는 너의 참자아가 원하는 너의 소명을 발견하면 너가
    지금  어떤 자리에 있든 너는 그 모습 그대로 살 수 있는 시야를 얻게 될 것이다.
※[51 읽다가….]나의 경우 ‘NMC’를 그만두고 다시 ‘Ubi’로 왔던 경험과 일치한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어려운 일을 함에도
    예전에 느끼던 두려움을 걷어 낼 수 있었다. 아니, 그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또한, 그 두려움에 영향받지
    않으며 일을 함으로 일의 결과가 아닌 과정을 볼 수 있었으며, 나의 시야는 고객과 당사의 이해 관계자들을 아우를 수 있는
    시야를 지니게 된 것 같다. 그 행위가 아직은 썩 매끄럽지 않지만^^
※[15 읽다가….]타인의 규칙! 나만의 규칙! What? 소명에 따른 나만의 규칙을 지키는 것은 전율이며 하루하루의 감동이며
    기쁨, 행복이다.

03. 3장 ‘길이 닫힐 때’를 읽고 나서….
※ 내 앞의 길이 열렸을 때와 닫혔을 때는 언제인가? 진정 그 문이 닫힌 것이고 열린 것인가? 아직 나는 확신하지 못한다.
NMC와의 문이 닫힌 것인지? Ubi와의 문을 내가 먼저 닫은 것이었고, 지금 그 문을 직접 다시 열어 통과한 것이지? 하지만, 내 자신이 진심으로 내 온 마음을 다하지 않는다면 나는 계속 의심만 하게 될 것이다. 지금 내 앞의 그것이 문이 열려있는지 닫혀있는지에 나의 에너지를 모두 손진 하지 말자. 내가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내 마음이 내 본성이 나의 소명에 귀 기울이고 관찰하며 나의 순간에 최선을 다한다면 나는 문이 닫힌 것인지 열려져 있는 것인지 나의 본성에 비추어 알 것이다.
※[79 읽다가….]일에 대해 실패의 두려움이 더 커서 먼저 내 자신이 포기해 버린 일이 있었다. 바로 ‘Ubi’에서의 일이었으며,
    결국 ‘NMC’로의 이직이었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다시 ‘Ubi’로 입사했다.
※[77~81 읽은후….]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아는 것과 지금의 내가 더 확장될 수 있는 경계를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 까? 자아
   에서 오는 한계는 어떻게 구분할까? 그것이 진정한 한계일 텐데. 이것 또한 나의 본성과 직접 대면해야 할 것이다. 단지, 매
   너리즘과 주변의 압박에 의해 느끼는 한계일지.
   그러한 경험의 종류로는 내 스스로가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문을 닫는 경우가 아닐까? 나의 경우는? 지금 스스로 생
   각할 때도 많은 문을 두드리고 있는데 그 문 모두가 나의 본성에 부합하는 것일까? 진정 그 문이 나와 부합한다면? 또는 부합
   하지 않는다면? 나는 무엇을 느낄까? 역시 직접 부딪혀 느끼고 깨달아야 한다. 그 때 느끼는 것을 …. 그러면 진정 문은 열리
   고도 닫힐 것이다.
※[84 읽다가….]”당신이 그곳의 Top 엔지니어가 되면 어떤 점이 제일 좋습니까?”, “당신이 그곳의 CEO, CIO, CTO 등의 경영
    자가 되면 어떤 점이 제일 좋습니까?”, “당신이 인정받으면?”, “당신이 MBA를 간다면?” 등으로 대입해서 답을 찾아보자!
※[96 읽다가….]장점과 한계! 나의 한계! 나는 팀원들과 즐겁게 소통하기를 원하지만, 일정한 개인 프라이버시가 지켜지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들과 즐겁게 지낼수록 서로의 예의는 점점 허물어진다. 그것은 그들의 한계가 아니고 나의 한계인가?
    내가 그들을 대하는 것에 대처하는 것을 품위 있게 대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그들이 변하는 것보다는 빠르고 효율적일 것
    이다.

04. 4장 ‘모든 길은 아래로 향한다’를 읽고 나서….
  ※ 예전 강독회에서 와우팀장님께서 나에게 물으셨다. “그 마음이 ‘삶이 내게 말을 걸 때’에서 나오는 ‘아래로 내려온 느낌’이냐고? 나는 그 당시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것은 기존의 내가 가지고 있던 미사여구로 가득한 ‘사명서’를 보다가 그 당시 내가 심사숙고 하여 작성한 ‘좋아하는 단어’와 ‘미래의 명장면’을 뽑은 직 후였다.
     하지만, 그 것 이외에도 나는 안전한 땅으로 내려와야 할 삶의 요소가 더 많다는 것을 느꼈다. 나 역시 작가가 이전에 빠져있었다는 ‘머리를 써서 일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우쭐해진 에고’, 그리고 무엇보다 ‘해야하는 것들’의 집합이다. 그 중 ‘해야하는 것들’의 검토는 상당히 많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실제 현실보다 나를 더 대단한 존재로 생각하는 ‘우쭐해진 에고’는 나를 땅으로 온전히 내려오지 못하게 한다. 예를 들자면 일을 할 때 내가 생각하는 대로 일하고 있다가도 그 일이 아닌 다른 일이 밀려들 때 간혹 참지 못하고 그 일을 부탁한 사람이 직급이 낮던 높던 상관없이 짜증을 먼저 낼 때가 있다. 차분히 일의 우선순위를 같이 의논하지 못하고….
      그렇다면, 이 ‘우쭐해진 에고’는 나에게 왜 생겼을까? 무엇보다 ‘남과의 비교’가 아닐까? 남들의 능력보다 나의 능력이 떨어진 ‘나’ 자신을 인정하기 싫어서 내 스스로가 나의 에고를 높이고 있지 않을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파커처럼 배우고 깨닫고 실천해야 한다. 빛과 어둠, 실수와 성공, 약함과 강함, 재능과 약점, 약점과 치부를 동시에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야 내가 내 자신을 인정하고 인생 전체를 받아들이고 그 삶 전체를 살 수 있을 테니까.
※[111 읽다가….]나를 웃게 만드는 것, 집으로 돌아갈 때 정말 행복한 웃음을 짓고 돌아가는가? 아니면 찌푸린 얼굴로 돌아가
    는가? 그것을 잡아라!!!

05. 5장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다’를 읽고 나서….
  ※ 저자가 우울증을 겪다가 진정한 자신을 발견한 기쁨이 절절이 전해져 온다. 나도 그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저자처럼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봐야 할까? 아니겠지? 내 안의 괴물은 무엇이고 나는 지금 어느 공간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을까? 해야하는 많은 일들에서 이 긴장과 압박감에서 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많은 소소한 두려움과 타인에 의해 영향 받는 나의 정체성은 나 자신을 점점 더 피곤하게 만든다. 그런 소소한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나의 정체성이 확고하다면 나는 지금의 내 모습과 많이 틀릴까? 틀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이 틀릴까? 우선 회상에서 많은 일들에도 불구하고 지금보다 내 자신을 위한 시간을 더 갖을 것 같고, 일을 함에도 지금보다 더 적극적이고 재미있게 일할 수 있을 것 같다.
     ‘두려움’과 ‘자기존재’의 불안과 ‘죽음’의 부정! 그것이다. 나 역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위 3가지에 많은 영향을 받아오고 있다. 그들을 생각하며 불안, 부정하며 얼마나 많이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가? 먼저 내 존재 자체가 완벽/완전해야 한다는 높은 땅에서 낮은 땅으로 내려오자. 그리고, 인정하자! 두려움과 죽음을…. 하지만, 그 공간이 아닌 내가 더 좋아하는 공간에서 리더십을 발휘하자. 소명이 이끄는….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내 옆에는 ‘서로 바로잡아 주기’를 실천하는 Wow team과 함께 하고 있음을 기억하자.
※[134 읽다가….]어떻게? 이르고 싶다. 왜? 지금 그냥 이대로가 ‘나’임을 믿으면 되지 않을까? 그러면 편해질텐데…. 하지만 
   시간이 가면 결국 그 유리 같은 믿음은 금방 깨질 테니까….
※[142 읽다가….]방금 전까지는 우리 회사의 팀장을 생각했는데 지금의 나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현재 나는 360° 리더로서
    내 자신의 능력을 잘 활용하지 않는 나를 알아주지 않는 회사의 시스템을 비판하며 현 회사의 리더들을 무지하게 생각하며
    나를 잘 따라오지 못하는 신입자를 귀찮아 하고 있었다.
※[153 읽다가….]현재 우리 회사의 팀장을 얘기하는 듯 하다. 그는 항상 지시할 사항이 있으면 팀원 모두를 부른다. 그리고,
    아주 사소한 일까지 목청을 높이며, 쌍소리까지 내면서 팀원들을 대한다. 예를 들자면 메일을 왜 안 읽었는지에 대해 빠른
    퇴근에 대해 팀원들은 할 일이 있다면 기꺼이 그 일이 마무리되지 않으면 야근을 본인이 직접 나서서 하는데 그런 그들에게
    채찍질을 하는 리더! 전형적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타인의 정체성을 빼앗아 채우려는 행위!
※[154 읽다가….]나 역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과 그 일에서의 역할을 나의 정체성으로 보고 있지는 않은가? 그 일을 하는
    것의 과정과 목표를 즐기지 못하고 결과에 대해 내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것은 그 일에 나의 정체성을 맡긴 것은 아닌가?
※[158 읽다가….]나는 혼란,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한다고 생각했으나, 지금까지의 관찰에 의하면 나는 뜻하지 않은 사건보
   다는 계획된 사건을 더 선호한다. 한 예를 들자면 계획되어 있는 업무에 대한 일의 어려움은 쉽게 받아들이고 개선시키려 노
   력하지만, 갑자기 떨어지는 업무! 특히, 상사의 무분별한 업무 지시에 반감을 많이 갖는다. 또 그 일을 진심으로 수행하기 까
   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현재 내가 다니는 중소기업의 업무 Process에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다. 특히, 각 팀의 업무
   분장에 대해…. 무분별하게 수행되는 팀의 업무를 분장을 통해 통일화된 조직화를 하고 싶다. 그 이유가 내가 경영자가 되려
   는 건가? 그렇다면 수많은 혼돈에서 진정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시야를 가지고 그 흐름에 맞는 질서를
   통한 조직화가 이루어져야 되지 않을까? 동전의 양면성이라 했던가? 혼란과 질서! 혼란을 혼란으로 보지 말고, 그 혼란 역시
   일부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06. 6장 ‘인생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읽고 나서….
  ※ 이번 장은 이전에 읽을 때는 나에게 다른 장에 비해 큰 감명을 주지 못했지만, 지금 다시 읽고 나서는 작가의 어느 장보다도 사계절에 삶을 비유하여 삶의 변화를 제대로 설명해준다. 먼저 가을을 통해 앞으로 다가올 ‘겨울’이라는 죽음을 기다리는 것 같지만, 사실 그 죽음이란 단지 길막힘과 문닫힘 으로 다가왔다. 또한, 쇠락과 아름다움, 어둠과 빛, 죽음과 삶이 상반되는 것이 아닌 온전함의 일원이라는 것을. 또한 완전한 투명함과 스스로를 새롭게 준비하라는 겨울과 겸손이 무엇인지 겸손이 나올 굴욕적인 사건들이 결국 나의 비옥한 토양이라는 것. 그리고 진정한 풍요를 거두는 계절인 여름! 그 내용은 짧으나 결국 삶은 끝없는 순환의 과정이라는 진리를 일깨워준다. 아직 풍요의 여름이 찾아오지 않았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 있다해도 그것 역시 자신의 삶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자신의 소명을 위해 늘 스스로를 준비하고 진정한 바닥이 어디인지 알면 곧 삶의 풍요는 자연스레 찾아오지 않을까?
※[181 읽다가….]가끔은 우리에게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없다면 어떻게 봄의 포근함을 느낄 수 있을까? 여름의 폭염이 없다
    면 가을의 시원함을 느낄 수 있을지…. 삶의 어두움들을 느끼지 못하면 밝은 빛을 느낄 수 있을까?
※[183 읽다가….]현재 내가 걱정하는 ‘해야 하지만 피하는 일’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 한복판으로 나아가 대담하게 산책하자.
   내 삶을 더 잘 느낄 것이다. 그리고, 정말 잘 살았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3. 초서
1. 인생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라
[14]”스스로에게 물어보기를. 내가 한 일들이 곧 내 인생인지….”
[15]원인은 나의 내면에서 밖으로 뻗어나간 삶이 아니라 바깥 세계에서 안으로 밀려들어온 삶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 마음에  귀 기울이기보다 영웅들의 인생을 흉내 내는 ‘고상한’길을 찾았던 것이다.
[15]당신이 인생에서 무엇을 이루고자 하기 전에, 인생이 당신을 통해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에 귀 기울여라.
[16]세상에는 극단적으로 단순한 도덕주의자들이 있다. 그들은 도덕적인 삶이란 베스트셀러 처세서의 차례를 뒤적여 목록을
      만들고, 그 목록을 일일이 체크해 가며 교양 있게 행동하려고 노력하는 것쯤으로 여긴다.
[18]마음에도 없는 소명을 추구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폭력이다.
[19]소명의 참된 의미는 ‘보케이션vocation’이라는 단어 안에 숨겨져 있다. 소명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라틴어로 ‘목소리
       (voice)’이다. 소명은 내가 추구해야 할 목표를 의미하지 않는다. 소명은 내가 들어야 할 내면의 부름의 소리이다. 내가
       살아가면서 이루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말하기에 앞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말해 주는 내 인생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야만 한다. 나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일러주는 진리와 가치에 귀 기울여야만 한다.
[19]사람은 누구나 일상에서 의식하는 ‘나(에고)’와는 다른 인생을 가지고 있다. 타고난 그릇으로서의 ‘나’로 살아가고자 하는
       인생 말이다. 나의 에고가 보호 마스크와 이기적으로 꾸며낸 이야기로써 나를 정의하려는 방식과 나의 참자아의 실체 사
       이에는 바다를 사이에 둔 것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다.
[21]사람에게도 식물처럼 어떤 특정한 경험의 방향으로 스스로를 끌어당기고 도움이 되지 않는 다른 것들을 멀리하려는 지향
      성이 있다.
[21]인생으로 하여금 내가 듣고 싶어하는 말, 남들에게 기꺼이 해 주고 싶은 말을 하게 해야 한다면, 또한 내가 듣기 싫은 말,
      남들에게 결코 하고 싶지 않은 말도 하게 해야만 한다!
[21]내 인생에는 능력과 미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책임과 한계도 있으며, 실수와 어두운 그림자도 있다. ‘완전함’을 추구하는
      데서 종종 무시하게 되는 것이 있다. 자신 있고 자랑스러운 면 뿐만 아니라 싫어하는 것, 또는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는 것
      까지 포용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나 자신에게 물어 보아라, 내가 저지른 실수들을.”
[22]실수들! 그 순간들 속에 숨겨진 진실! 진정한 나를 찾는 중요한 열쇠!
[22]진실의 실험! 실험에서는 나쁜 결과도 성공만큼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어떻게 나의
      진실과 소명을 깨달을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랬다간 내가 훨씬 더 긴 책을 써야 했을 수도 있지만!
[22]영혼은 고요하게 그를 받아들이며 신뢰할 만한 상황에서만 자신의 진실을 말한다.
[23]내가 하는 말이 침묵 속에서 나의 영혼으로부터 들은 그 말 그대로이기를 소망한다.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침묵의 소
      리를 들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우리 인생의 의미를 헤아리도록 도와 주는 것은 언제나 침묵이다. 또한 말로는 결코 건드
      릴 수조차 없는 깊은 의미를 깨닫게 해 주는 것도 역시 침묵이다.

2. 이제 나 자신이 되다
[26]소명은 의지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듣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소명이란 성취해야 할 어떤 목표가 아니라 이미 주어져
       있는 선물이다.
[29]지쳐가는 모습의 단편, 내게 기대되는 이상적인 모습과 실제 모습 사이의 차이 때문에 죄의식을 만들어 내면서 그 격차를
      좁히기 위해 몸부림치느라 지쳐갔다.
[30]’소명’의 의미, 소명이란 성취해야 할 어떤 목표가 아니라 주어지는 선물이다. 소명의 발견이란 얻기 힘든 상을 바라고 타
     투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가지고 있는 참자아의 보물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31]’성향’과 ‘기질’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엇에 얼굴을 찡그리고 기분 나빠하는
     지, 어떻게 몸을 움직이는지, 어떤 행동을 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리게 되었고, 그건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32]우리의 자아를 알아 주기보다는 어떤 틀 안에 끼워 맞추려는 사람들의 기대 말이다. 사회적인 기준에 맞추어 살아가도록
     교육받는다. 사회적 압력에 짓눌려 자기 본래의 형상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망가질 때도 있다. 또한 우리 자신 역시 두려움
     에 내몰린 나머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참자아를 배반하는 일이 너무나 많다.
[39]진정한 소명은 자아(self)와 봉사(service)를 하나로 결합한다. 프레더릭 뷰크너(Frederic Buechner)는 소명을 ‘마음 깊은
      곳에서의 기쁨과 세상의 절실한 요구가 만나는 지점’ 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뷰크너의 정의는 소명이란 자아에서 시작하
      여 세상의 요구를 향해 나아간다는 것이다. 세상이 원하는 바가 아니라 인간 자아의 본성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44~46]교수가 아닌 커뮤니티 조직자가 되었다. 도덕적으로는 도시의 위기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지만, 그 일을
      하면서도 가르치는 일이 나의 소명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은 점차 커져만 갔다. 마음은 가르치는 일에 가 있었지만 에고로
      묶인 나의 도덕관념은 내가 도시 구제에 종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부 학생들을 커뮤니티 조직에 참여시켰다. 내가 하
      던 커뮤니티 일을 교육이라는 눈으로 다시 바라봄으로써 나는 조직자로서 계속 가르치는 일을 해 왔음을 깨달았다. 목사가
      되든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되든, 아니면 시인이나 정치가가 되어서도 나는 가르치는 일을 할 것이다.
[46]나 자신의 한계와 능력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채, 에고와 도덕관념에 나를 맡겨 내 영혼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끌
      려 간 것이다.
[51]’맙소사,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이것인가? 이건 내가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야, 남에게 그 이유를 설명할 수도 없고 나 자신
     도 이해가 잘 안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만 하는 일이지’.
[53]나의 불만이 어느 정도 사실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러한 불만은 내가 학교에서 도망친 것에 대한 그럴듯한 구실일 뿐이었
      다. 내가 도망친 진짜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성공하지 못할까봐 두려웠고 충족시키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54]장점이든 단점이든 이런 모습이 바로 나의 본성이며, 나의 한계와 재능이다.
[54]학자로서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는 나로 하여금 학교를 떠나 자유롭게 다른 종류의 교육에 종사하도록 하는
      에너지가 있었다.
[56]어둠이란 내 모습을 원하는 대로가 아닌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었다.
[57]사람들과 상황에 대해 우리가 만들어 낸 부정적인 예측을 모두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그런 예측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의
      두려움을 감추는데 쓰인다. 내 움직임을 합리화했다. 내게나 교육기관들 양쪽 모두에 대해 명백한 거짓이었다.
[58]그들의 재능이 내게는 없으며 그렇다고 나를 탓할 일도 아니다. 그것은 그저 내가 누구인지, 세상과 올바르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진실이자, 진정한 소명을 향한 생태학적 진실이다.
[61]’더 이상 분리되지 않는’삶을 살 것을 결심한다. 더 이상 내면에 깊이 간직한 진실과 상반되는 외면의 방식을 가장하며 살
      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진정한 자아를 주장하며 그것을 표출하며 살 것을 결심한다.
[62]”피곤했거든요” 그녀의 마음이, 그녀의 존재 전체가 인종차별주의자들의 규칙에 놀아나는 것에, 그녀 영혼이 주장하는 자
      아를 부인하는 것에 피곤해졌다는 의미이다.
[64]처벌의 개념, 남이 가하는 처벌보다 자기 스스로를 비하함으로써 스스로에게 내리는 처벌이 더욱 견디기 힘들다는 것을 깨
     달았다. “내가 사십 년 넘게 스스로를 가두었던 감옥에 비하면, 벽돌과 철망으로 만들어진 당신네 감옥이 뭐가 그리 대단하
     겠습니까?” 남이 주는 그 어떤 보상도 자기 스스로의 빛을 밝히며 살아가는 데서 얻어지는 보상만은 못하다. 싸움을 벌이는
     동안 그녀 안에 충만했던 자아이다.
[66]참자아를 부인하고 두려움에 마비되어 ‘내 자리에’ 그냥 머물러 있었다면, 오늘날 나는 분명 관심 분야에 봉사하는 대신 방
     황하며 괴로워하고 있을 것이다.
[67]모든 여행은 정직하게 따르기만 한다면 우리의 진정한 기쁨이 세상의 절실한 요구를 만나는 어떤 지점으로 이끌어 준다.
     그 진리는 우리 각자가 이 땅에 처음 올 때 씨 뿌려진 것이다. 그 진리를 잘 경작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인류의 진정한 소명
     이라고 나는 믿는다.

3. 길이 닫힐 때
[72]나는 일자리 이상을 원했다. 내가 원했던 것은 나의 내면적 삶과 외면적 삶의 일치였다.
[74]반면에 내 뒤에서는 수많은 길이 닫히고 있다네. 이 역시 삶이 나를 준비된 길로 이끌어 주는 또 하나의 방법이겠지.
[78]’해야 한다’가 아무런 효과도 없을 때가 있다. 사람의 인생이 자기 영혼의 성미를 거슬러 가기 때문이다. 나를 이끄는 힘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나는 무의식에 따라 행동했다. 그리고 현실은 내 존재에 대한 크고도 감당하기 힘든 단서를 제공했
     다. 등 뒤에서 길이 닫힌 것이다.
[78]본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이 말은 한계와 능력 모두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능력을 깨닫는 것도 그렇지만 직접 자기 한계
     에 뛰어들어봄으로써 우리는 자신의 본성을 더 많이 알 수 있다.
[79]영적 생활의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길이 닫히는 것에서 어떤 지침을 얻는 데도 사려 깊은 판별이 필요하다.
[80]신화는 한계에 대한 끝없는 도전에 대한 것이다. 불가능은 없다는 생각만을 고집한다면 길이 닫힐 때 일어나는 자신의 정
     체성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를 놓치고 말 것이다. 자꾸만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들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것이
     다.
[82]미국적 신화에도 불구하고 나는 원하는 모든 것이 될 수도 없었고, 할 수도 없었다. 분명 자명한 이치인데도 우리는 종종
     그것을 거부한다. 우리를 이루고 있는 본성은 우리를 생태계에 존재하는 유기체처럼 만들어 놓았다. 역할이 정해져 있으며,
     어떤 관계에서는 번성하지만 다른 관계에서는 시들어 말라죽는다.
[83]투명위원회란 대상자에게 고칠 점을 집어 주거나 조언을 하는 대신, 세 시간 동안 대상자가 자신의 내적 진실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정직하고 개방적인 질문을 던지는 절차를 말한다.
[84]”당신이 그곳의 학장이 되면 어떤 점이 제일 좋습니까?”
[86]내가 나의 본성, 관계의 본성이 아닌 어떤 일을 하려고 덤빈다면, 그 순간 나의 등 뒤에서 길이 닫힐 것이다.
[89]”베풀어야 할 게 있을 때만 베푸세요. 주는 것 자체가 보답이라고 여기는 사람만 베푸세요”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누
     군가에게 주고 있다면 나는 잘못되고 위험한 선물, 사랑처럼 보이지만 사실 사랑이 담겨 있지 않은 선물을 주는 것이다. 나
     자신을 내세우려는 필요에서 나온 선물이다. 그런 베풂에는 사랑도 믿음도 없으며, 사랑의 전달 통로는 나 말고는 없다는
     오만과 착각에서 나온 것이다.
[90]그 선물이 나의 참다운 본성, 유기적인 실체 속에서 생성된 것이라면 내가 그것을 주어 버린다 해도 스스로 다시 생겨날 것
     이다. 또한 그러한 베풂의 결과는 탈진이 아니라 비옥함과 풍요로움이며 나를 새롭게 할 것이다.
[91]바로 지금 여기에
[92]능력과 한계를 지닌 우리 본성의 실체에 맞추어 살려는 노력이야말로 매우 도덕적인 삶의 방식이다.
[95]어떤 장점이 있으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약점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영혼의 구멍을 채우려는 노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 구멍에 대해 잘 알아서 거기에 빠지는 걸 피해감으로써 더 나은 교사가 될 수 있다.
[96]내 한계를 그들 탓으로 돌리는 대신 나 자신의 일부로 인정하는 것이다.
[98]열림은 우리의 능력을 보여 주고 닫힘은 우리의 한계를 보여 준다. 정체성이라는 동전이 가진 양면인 것이다.
[98]문이 닫힐 때면 나머지 세상이 열린다는 역설이다. 우리는 닫힌 문을 두드리는 걸 그만두고 돌아서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뒤쪽에 있는 다른 문에 다다른다. 문이 닫히면 방안에 들어갈 수 없지만, 그것은 곧 그 공간을 제외한 다른 현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98]내 미래는 이미 와 있었다.
[99]열리지 않음에 대한 내 걱정, 그 걱정 때문에 나는 계속 닫힌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그 걱정에 가려 숨겨진 비밀을 보지 못할 뻔했다.
[99]인생을 충만하게 살고 싶다면, 반대의 것을 인정할 중 알아야 하며, 한계와 능력 사이의 창조적 긴장 속에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본성을 왜곡시키지 않도록 한계를 인정해야 하며 타고난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자신의 재능을 믿어야 한다. 길이 닫힐 때면 불가능을 인정하고 그것이 주는 가르침을 발견해야 한다. 길이 열릴 때면 그 가능성을 인정하고 우리 인생의 가능성에 화답해야 한다.

4. 모든 길은 아래로 향한다.
[104]얼음 아래 숨겨진 인생의 강물
[111]자기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자아의 힘의 영역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다림이며 지켜보는 것이다. 귀 기울이는 것, 고통을 겪어내는 것, 그리고 그게 무엇이든 가능한대로 자기에 대한 지식을 수집하는 과정이다. 그런 다음 그 지식을 바탕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매일 매일 자기 자아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을 선택하고 그렇지 않은 것을 버림으로써 다시금 건강한 삶으로 한 걸음씩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114]’좋은’사람으로 비치는 외적인 내 모습과 당시 내가 믿고 있던 나의 ‘나쁜’모습 사이의 엄청난 격차만 절감할 뿐이었다.
[121]나는 내가 기반이 없는 땅, 안전하지 않은 높은 곳에다 발을 딛고 살고 있었음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땅으로 내려서는 것이 축복인 것도 간단하다. 미끄러져 넘어져도 그것은 대개 치명적인 것이 아니며 곧 회복할 수 있다.
[121~122]첫째, 나는 지성인으로서 생각하는 것. 둘째, 나는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서 신을 체험하기보다는 신에 대한 추상적 개념에 더 열중했다. 셋째, 높아진 나의 에고 때문이다. 우쭐해진 에고는 실제보다 나를 더 대단한 존재로 생각하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나의 왜곡된 도덕률이다. 그것이 진실하고 현실에서 가능하며 내게 참된 생명을 주는 나의 진짜 모습을 살펴보기보다는, 내가 되어야 하는 사람, 내가 되어야 하는 어떤 것의 이미지에 따라 살도록 이끌었다.
[122]그런 ‘해야 하는 것들’이 내 인생의 추진력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상에 나를 맞추지 못하자 나는 스스로를 나약하고 믿지 못할 사람으로 보게 된 것이었다.
[122]안전한 땅, 한계와 재능, 약점과 강점, 어둠과 빛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는 나의 진실, 나의 본성의 땅.
[124]참자아, 이것은 우리를 우쭐거리게 부풀리고 싶어하거나, 또 다른 형태인 자기 왜곡으로 우리를 위축시키고 싶어하는 에고가 아닌다.
[127]자아란 분리되거나 특별하거나 우월한 것이 아니라 선과 악, 어둠과 빛의 혼합체라는 걸 이해하게 된다.
[127]모든 가식과 방어력을 잃고 낮아지고 힘없는 상황, 스스로 기만당한 느낌과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는 느낌만 남은 상태에서 겸손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겸손은 우리의 삶을 완전히 낮아진 부식토에서 땅 위로 다시 자라나게 한다.
[128]”처음으로 내 모습 그대로, 세상을 바라보며 편안한 느낌을 누리고 있습니다.”
[128]나는 나 자신이 약함과 강함, 약점과 재능, 어둠과 빛을 동시에 가진 사람이라는 걸 안다. 이제 나는 완전해진다는 것이 그 중 어느 하나도 거절하지 않고 포용하는 것임을 안다.
[128]내가 나의 진실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을 때 진실 이상의 것들이 나의 일과 관계에서 유용한 것으로 다가왔다.
[129]약점과 치부, 어둠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면 그런 것 때문에 내가 흔들리는 일이 줄어든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원하는 것은 내 자아의 일부로 알아 달라는 것뿐이니까 말이다.
[129]전체를 받아들이는 인생은 살아가기에 더 힘들 수도 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나면 인생 전체를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5.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다.
[135]단지 내가 지금 이 땅에서 내 일을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당신 역시 이 땅에 살면서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다면, 어떤 종류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다.
[135]도덕성과 연민, 비전이 부족한 이기적인 리더들
[137]더 많은 걸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
[137]이 인간 세상의 구원은 다름 아닌 바로 인간의 마음속에, 인간의 반성하는 능력에, 인간의 겸손과 인간의 책임감에 달려 있습니다. 인간 의식의 전면적인 개혁 없이 진보란 있을 수 없습니다.
[138]어떤 환경에서나 진정한 리더는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자유롭게 해방시키는 데에 목표를 둔다. 그러면 그 마음의 힘이 세상을 해방시킬 수 있다.
[138]의식이 존재에 우선한다.
[139]우리는 “의식의 힘이 우리를 이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이야기이나 가혹한 현실은….”하는 식의 얘기를 얼마나 많이 들어 왔고 많이 말해 왔는가? 측량하고 셀 수 있는 것이 아니면 중요한 변화로 여기지 않는 체제에서 일해 본 벅이 얼마나 많은가? 전통적인 수단과 방법을 우리 능력에 대한 절대적인 구속으로 이용하면서 창의성을 죽이는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봤는가?
[139]사회의 희생자라기보다는 오히려 공모자이다. 우리의 의식을 투사함으로써 우리가 세상을 그렇게 만들어 가는 데 일조한다는 것이다.
[141]리더는 세상의 어떤 부분에,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그늘과 빛을 드리울 수 있는 힘을 지닌 사람이다. 훌륭한 리더는 리더십의 행위가 해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내면의 그늘과 빛의 상호작용을 아주 잘 파악하고 있다.
[142]리더들은 위험한 착각에 빠져 그러한 생각들을 키워 나간다. 자신의 노력은 언제나 좋은 의도에서 나온 것이며 능력도 충분한데, 문제는 자신이 인도하려는 사람들에 있다는 식의 생각 말이다.
[143]우리의 의식 깊은 곳에는 폭력과 테러라는 괴물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괴물들을 타고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세상의 테두리를 넘어 더 깊이 들어가게 되면 과학으로는 밝혀낼 수조차 없는 거대한 바다를 만나게 됩니다.
[144]어둠의 괴물들을 타고 아래로 계속 내려가면 중요한 한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 조각난 인간 삶의 표면 아래 공유되는 의식의 공동체이다. 훌륭한 리더십은 자기 내부의 어둠을 꿰뚫고 지나가 사람들과 하나가 되는 지점에까지 도달한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150]”만약 당신이 거기서 빠져 나오지 못하면 거기 묻히고 말 겁니다.”
[151]왜 사람들은 위압적이고 험난한 안으로의 여행을 떠나려 하느냐고? 왜냐하면 자기가 처한 내적인 상황에서 빠져 나올 방법이 그것 말고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차라리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유일한 탈출구는 안으로, 아래로 영적 여행길의 과정 속에 있다.
[153]첫 번째 괴물은 자기 정체성과 존재 가치에 대한 불안이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아니면 단지 그 문제를 피하기 위해 외적 활동으로 뛰어든다. 자기 정체성을 지키려는 방편의 하나로 다른 사람의 정체성을 빼앗는 환경을 만들어낸다.
[154]정체성이란 우리가 수행하는 역할이나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지배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님을 아는 것이다. 정체성은 우리가 신의 자녀라는 간단한 사실에 달려있다.
[154]두 번째 그늘은 세상은 전쟁터이며 사람에게 적대적인 곳이라는 믿음이다.
[155]경쟁이 아닌 또 다른 방법, 합의를 이루고 협동하며 공동으로 일을 추진하는 방법이 있음을 배우고 있다.
[156]세 번째 그늘은 모든 일에 대한 최후의 책임이 우리 인간의 몫이라는 믿음이다. 우리 의지를 남에게 강요하도록 하며, 관계를 지나치게 압박해서 때로는 단절에까지 이르게 한다. 종종 세상이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그 사실에 화가 난 나머지 탈진이나 우울증, 절망으로 끝나기도 한다.
[158]때로는 짐을 내려놓고 홀가분함을 누릴 수도 있다. 우리를 이끄는 거대한 공동체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만 맡기고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맡긴다.
[158]네 번째 그늘은 두려움, 특히 인생의 혼돈에 대한 두려움이다. 우리는 세상을 완벽하게 정돈하고 배열하여 다시 혼란스러움이 일어나 우리를 위협하지 못하게 하려 한다.
[158]여기서 말하는 혼란의 의미란 의견차이, 혁신, 도전과 변화를 의미한다. 가정, 학교, 종교, 기업에서 이 그늘은 규칙과 절차를 엄격하게 하여, 권한 부여가 아닌 구속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물론, 그러고 나면 우리가 가두어 놓은 혼란은 구속을 깨고 나오려고 발버둥친다.
[158]내적 여행에서 우리는 혼돈이 ‘창조성의 전조’라는 통찰력을 얻게 된다. 모든 창조신화에 있듯이 인생도 무에서 나온 것이다. 이미 창조된 것도 때때로 혼돈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159]리더가 혼돈을 두려워해서 그것을 없애려 든다면, 그 리더가 접근하는 모든 것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울 것이다. 인생의 혼란에 대한 최후의 해답은 죽음이니까 말이다.
[159]리더가 드리우는 그늘에 대한 마지막 예는, 역설적이지만 죽음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정해진 때가 되면 죽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며 살기도 한다.
[159]죽음을 부정하는 심리 내면에는 또 다른 두려움이 숨어 있다. 바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다.
[160]최고의 리더는 실패가 뻔한 일이라 해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면 위험을 무릅쓴 사람들에게 포상을 한다. 이런 리더들은 죽음이 언제나 새로운 배움의 원천이라는 걸 알고 있다.
[160]결국 모든 것에는 죽음이 다가옴을 알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죽음은 끝이 아니다. 생명이 다한 어떤 것을 죽게 함으로써 새로운 삶이 나타날 수 있는 환경을 창조할 수 있는 것이다.
[161]그늘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다. 거기서 빠져 나올 방법은 없으니 그 안으로 뛰어들어야만 한다. 서로 도와서 우리 내면의 삶을 탐험해야 한다.
[161]내면 활동의 가치를 끌어올려야 한다.
[162]’서로 바로잡아 주기’를 실천하는 공동체들이 많다.
[163]고쳐야 할 점에 대한 제안이나 조언은 금지되어 있다. 다만 세 시간 동안 정직하고 개방적인 질문을 통해서 당신 스스로 자신의 내적 진실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 준다.
[163]이런 형태의 공동체를 이루는 비결은 관계를 맺되 그 안에서 서로 혼자일 수 있는 권리를 보호하는 역설을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는 함께 살되, 그 방식은 영혼의 고독을 존중해야 한다.
[164]두려워 말라
[165]두려워 말라는 말은 두려움을 가져선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그리고 내면에서 리더십을 발견한 사람들은 종종 더 많은 두려움에 빠지기도 한다. 이 말이 가진 의미는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그 두려움에 빠질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165] 두려움의 공간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신뢰와 희망, 믿음이라는 이름을 가진 또 다른 공간들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 공간들 중 하나를 선택해서 거기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 공간들 중 하나에 서 있을 때도 두려움은 가까이 있고 우리 영혼은 아직도 떨고 있을지도 모른다.
[165]하지만 이제 우리는 우리를 지탱해 줄 단단한 땅 위에 서 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시작해서 더 믿을 만하고 더 희망차고 더 충실한 존재의 길로 다른 사람들을 인도할 수 있다.

6. 인생의 봄 여름 가을 겨울
[172]계절은 인생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현명한 비유이다. 우리의 인생이 끝없는 계절의 순환과 같다는 개념은 투쟁과 기쁨, 손실과 이득, 어둠과 빛을 부정하지 않으며, 우리가 그 모든 것을 포용하도록, 그리고 그 안에서 성장의 기회를 발견하도록 기운을 복 돋아준다.
[172]우리 인생을 ‘기른다(grow)’가 아니라 ‘만든다(make)’고 믿는다.
[178]쇠락과 아름다움, 어둠과 빛, 죽음과 삶은 상반되는 것들이 아니다. 이것들은 ‘숨겨진 온점함’의 역설 속에 함께 존재한다. 그 둘은 같이 있어야 건강하다.
[178]우리는 어둠 없는 빛을 원하며 가을과 겨울의 고난 없이 봄, 여름의 영광을 원한다. 인공조면은 화려하지만 품위 없고, 그 영역만 넘어가면 어둠이 기승을 부쳐 떨쳐 버리려 애쓸수록 더 큰 공포를 조장할 뿐이다.
[179]삶과 죽음, 죽음과 삶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인정하면 내가 받은 생명은 진짜이며 생기 있는 것으로 열매 맺을 것이며 완전한 것이 될 것이다.
[181]자연은 겨울에 죽어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은 스스로를 새롭게 하고 봄을 준비하기 위해 땅 밑으로 내려갔다. 우리에게 부드러운 훈계를 주는 계절
[181~182]완전한 투명함.뚜렷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겨울은 눈앞의 풍경을 깨끗이 치워 준다. 혹독하긴 하지만, 그럼으로써 우리에게 자기 자신과 서로를 더 분명히 볼 수 있는 기회, 우리 존재의 밑바닥까지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183]”이곳에서는 겨울 속으로 뛰어들어가지 않으면 겨울 때문에 미쳐버릴 겁니다.” 두려워하는 겨울의 한복판으로 대담하게 나아가 날마다 산책을 하는 것이 몸과 마음을 더욱 튼튼하게 해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183]우리가 가장 피하고 싶은 두려움 속으로 대담하게 들어서기 전까지는 그 두려움이 우리 인생을 지배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 안으로 똑바로 걸어 들어가면 우정이나 내적 훈련, 또는 영적 인도라는 따뜻한 보호장구를 껴입고 동상에 걸리지 않은 채 그들이 전해주는 가르침을 배울 수 있다.
[184]봄은 그 아름다움을 갖추기 전에 진흙과 오물에 지나지 않는 추한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184]식물의 뿌리에 양분을 공급하는 야채 등의 부산물이라는 의미를 가진 ‘부식토(humus)’라는 단어의 어원은 겸손(humility)의 어원과 같다. 이 사실은 ‘내 얼굴에 똥칠을 한’일이나 ‘내 이름에 먹칠을 한 생의 굴욕적인 사건들이 새로운 것이 자랄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을 만들었을 수도 있음을 보여 준다.
[186]자연은 그것을 몰래 감추어두지 않고 모두 아낌없이 준다. 선물을 받았을 때 그것을 계속 살아 있게 하는 방법은 움켜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절달하는 것이다.
[188~189]봄에 꿀벌들이 일하는 모습을 잘 보라. 벌들은 꽃과 자신의 운명을 희롱하며 이곳저곳을 날아다닌다. 분명, 벌들은 실리적이며 생산적이다. 하지만 그 일을 동시에 스스로 즐기고 있을 거라는 내 생각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과학적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191]인간은 마치 그것이 인생의 법칙이라도 되는 양 끊임없이 부족을 느낀다. 내가 재산을 축적하는 것은 재산이 충분하지 않고 믿기 때문이며, 다른 사람과 권력 싸움을 벌이는 것은 권력이 제한되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고, 질투심을 느끼는 것은 남이 너무 많이 사랑 받으면 내가 주목 받지 못할까봐 그런 것이다.
[192]진정한 풍요는 든든하게 쌓아놓은 음식이나 현금, 권력, 애정에 있는 게 아니라 그런 것들을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공동체 안에 속해 있을 때 찾아 온다.
[193]풍요는 공동의 행위이자 복잡한 생태계에서 이루어지는 공동 창조이다. 그 생태계 안에서 각각의 부분이 전체를 위해 기능을 발휘하며 그 대가로 전체가 이들을 지탱해 준다. 공동체가 그냥 풍요를 창출하는 게 아니라 공동체가 곧 풍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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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마담 2009.03.14 1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