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예매, 땡 잡다

 

오월 황금 연휴의 시작을 오래도록 기다렸던 공연 <여자는 다 그래(Cosi fan tutte)>와 함께 시작했습니다. 이 오페라는 'Un'aura amorosa'라는 테너의 감미로운 아리아를 성악 레슨곡으로 배우면서 알게 되었어요. 반주가 많지 않았던 점이 독특했고, 수시로 나오는 고음 A(라) 덕분에 쌩목이 괴롭웠던 기억입니다. 부를 때마다 억지로 내니까 항상 선생님한테 힘빼라고 혼났던 곡이었죠.

 

그 아리아가 담긴 오페라는 어떨지 궁금하던 차 롯데 콘서트홀에서 기획공연이 있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얼른 예매했죠. 오페라 콘서트라는 형식이라 무대연출과 의상 등은 빠지고 오케스트라와 성악가들로 노래와 음악 위주로 공연될 것으로 보였습니다. 굳이 정면에서 보지 않아도 될 듯해서 사이드 좌석을 찜했는데, 완전 오판이었어요. 왜냐하면 오페라에 버금가는 콘서트였기 때문입니다.

 

출연진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공연장 평판만 믿고 예매했었는데, 좋아하는 성악가 임선혜씨가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쾌재를 불렀어요. '땡 잡았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좌석을 옮겨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어요. 실제 공연 당일에도 1막을 본 후 인터미션 때 부랴부랴 좌석을 옮기기 위해 물어보니 차액을 모두 지불해야 한다는 말에 낙심했습니다. 이미 종반부로 넘어가는 시점이라 돈을 더 지불하고 옮기기에는 아까웠어요.

 

 

 

 

[오페라 <여자는 다 그래(Cosi fan tutte)> 서곡(Overture)]

 

 

 

 

 

모차르트 시대 같은, 오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액을 모두 지불하고 옮길까 고민할 정도로 즐겁고 유쾌했습니다. 얼떨결에 사전정보 하나없이 그저 좋아서 예매한 공연은 세계 최고의 고음악 오케스트라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이를 이끄는 '르네 야콥스'는 바로크와 고전 성악 음악에 있어 정점에 서있다고 해요. 특히 그들의 주무기가 바로 모차르트 오페라였으니 임자 제대로 만났습니다.

 

요즘에는 오페라를 볼 때 성악가의 노래 뿐 아니라 오케스트라 음악이 주는 감흥에 흠뻑 빠져들고 있어요. 모차르트 시대에 쓰인 악기의 구성으로 연주되는 곡들의 흥미로움은 그 자체로 즐거웠습니다. 다른 오케스트라와 달리 이들은 지휘자뿐만 아니라 성악가들에게도 감성을 공유하려는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어요. 가수들이 노래할 때 호흡을 맞추려는 노력과 아이컨택을 수시로 하고 관객들을 살피며 공연장의 열기 속으로 빠져드는 모습 속에서 연주에 감명되어갔습니다. 때로는 노래 배경에 흐르는 반주에 더 집중되기도 했습니다.

 

포르테 피아노를 가운데로 배치된 오케스트라는 사이 좋아 보였어요. 음향에 대한 효과뿐 아니라 이 피아노는 성악가들이 연기하는데 중요한 도구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배치가 탁월했어요. 중심에서 각 악기들과의 조화뿐 아니라 배우들과 지휘자 사이에서도 좋은 매개자 역할을 했습니다. 이들은 올해 2월 독일 프라이부르크를 시작으로 유럽과 아시아 투어를 동일 프로그램으로 투어중이었어요. 그래서였을까요? 호흡이 착착 달라 붙더군요.

 

 

 

 

 

[데스피나역으로 열연한 임선혜씨, 캐릭터 임자 제대로 만났다]

 

 

 

 

 

콘서트 오페라? 아니 오페라

 

아리아와 중창, 합창 노래 만을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무대 연출에 오페라 식으로 꾸미지만 않았을 뿐이지 모든게 오페라였어요. 레치타티보에 이은 연기가 어찌나 자연스럽고 능청스러운지 공연의 스토리 자체가 다가왔습니다. 피오르딜리지와 도라벨라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확인하려는 굴리엘모와 페르난도, 이들을 부추기는 알폰소와 데스피나는 캐릭터 그대로 무대 위에서 모차르트의 음악과 로렌초 다 폰테의 희극을 소화하고 표현해내고 있죠.

 

바리톤 크리스티안 센이 연기한 굴리엘모의 능청스러운 모습에서 폭소와 웃음을 시종일관 자아냅니다. 테너 마크 밀호푀가 페란도로서 부르는 Un'aura amorosa, 어찌나 김미롭던지.... 그 순간에도 선생님이 항상 주문하는 힘을 빼고 부르면 나도 저리 부를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또 다른 사랑에 참 쉽게도 넘어가는 욕망에 충실한 도라벨라 역의 메조 소프라노 소피 함센의 힘있는 소리는 공연장을 가득 매웠고, 여성스런 소프라노 로빈 요한센이 분한 피오르딜리지의 소리는 아름다웠습니다.

 

 

 

 

[묵직해서 좋아하는 카우프만이 부르는 'Un'aura amorosa', 감미롭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부파에서 보여지는 계급이 낮은 인물인 하녀 데스피나죠. 주인인 피오르딜리지와 도라벨라에게 찾아온 괴로운 사랑을 놓치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그녀의 솔직하고 명쾌한 생각은 소프라노 임선혜씨를 통해 보여집니다. 그 캐릭터가 원래 그런건지 임선혜씨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청바지를 입고 다채로운 매력을 마음껏 뽐내며 무대를 시종일관 경쾌하게 휘젓고 다녔어요. 노래 중간중간 그녀의 새로운 무기 휘파람은 데스피나 캐릭터를 더욱 빛내주었습니다.

 

곳곳의 요소마다 원색의 차림으로 풍성한 소리를 더해준 국립합창단의 모습은 극에 잘 소화되었어요. 이 극의 소란을 일으키는 돈 알폰소를 맡은 베이스 바리톤 마르코스 핑크의 중후함은 자칫 가볍기만 할 수 있는 공연의 중심을 잡아 줍니다. 올해 일흔이 넘은 3시간이 넘는 시간을 성악가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이끌어 가던 노장 르네 야콥스(올해 일흔이 넘음, 46년생)의 집중력은 놀라웠습니다. 긴 런닝타임이 끝나고 집에 온 시간은 자정을 넘겼지만, 여전히 가슴에 남은 그 흥겨움으로 쉽사리 잠들지 못했습니다.

 

 

 

 

 

 

 

 

 

<인물별 유명 아리아>

 

1. 피오르딜리지(소프라노)

 1) Come scoglio (흔들리지 않는 바위처럼) : 애인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과 신뢰를 담은 노래

 2) E parte senti ah no! (그가 가네. 이봐요. 아 안돼!) : 레치타티보

 3) Per pieta, ben io, per dona (부디 내 사랑, 날 용서해요)

2. 도라벨라(소프라노 or 메조 소프라노)

 1) Smanie implacabili (누를 수 없는 불안) : 연인이 떠난 후 부르는 곡

 2) Il core vi dono (제 심장을 드립니다) : 변장한 굴리엘모와 함께 부르는 곡

3. 굴리엘모(바리톤)

 1) Non siate ritrosi (꺼리끼지 말아요) ; 변장한 채 유혹하는 곡

4. 페란도(테너)

 1) Un'aura amorosa (사랑의 산들바람) : 연인 도라벨라를 떠올리며 부르는 곡

 2) Ah lo veggio (아 보이는 군요) :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

5. 돈 알폰소(베이스 or 바리톤)

 1) Soave sia il vento (바람은 부드럽고) : 유명한 삼중창

6. 데스피나(소프라노)

 1) Una donna a quindici anni (여자나이 열다섯살 쯤 되면)

7. 합창단

 1) Bella vita militar! (멋진 군인의 삶)

 

 

 

 

[데스피나가 부르는 'Una donna a quindici anni(여자나이 열다섯살 쯤 되면)' by Cecilia Bartoli]

 

 

 

<공연 정보 from 롯데콘서트홀>

 

1. 관람일시와 장소 : 2017년 4월 28일(금), 롯데콘서트홀

2. 공연명/프로그램 : 콘서트 오페라 <여자는 다 그래 (Cosi fan tutte)>

3. 출연진

 1) 지휘 : 르네 야콥스

 2) 오케스트라 :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

 3) 로빈 요한센 (피오르딜리지, 소프라노)

     소피 함센 (도라벨라, 메조 소프라노)

     크리스 티안 센 (굴리엘모, 바리톤)

     마크 밀호퍼 (페란도, 테너)

     임선혜 (데스피나, 소프라노)

     마르코스 핑크 (돈 알폰소, 바리톤)

     국립합창단

6. 작품설명

모차르트 최고의 희극 오페라인 <여자는 다 그래>는 결혼을 약속한 여자들의 변심을 다루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예전 유럽 궁정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로, 결혼을 앞둔 남녀가 서로의 믿음에 대한 일종의 테스트를 하는 내용을 토대로 모차르트 특유의 유쾌하고 발랄한 음악으로 풀어가게 된다. 오는 4월 28일에는 폭넓은 프로그램을 수준 높은 연주로 세계무대를 누비는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르네 야콥스가 재미와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다. 더불어 이번 무대에는 소프라노 임선혜가 데스피나 역을 맡아 무대의 화려함을 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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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마담 2017.05.18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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