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에 다녀왔던 스페인의 순례길(산티아고 가는 길) 중 어떤 마을]

 

 

 

뭘 잘못 먹었는지 아침 출근길 아랫배가 슬금슬금 아팠습니다. 사무실에 갈 때까지 참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어요. 신경이 온통 거기로만 쓰였지만, 중간에 화장실 들리면 지각할 게 뻔해 일단 지하철을 탔습니다. 버틸만큼 버텨보자 싶었죠.

 

도착하자마자 얼굴비쳐 출근도장 찍고 바로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걸음을 재촉하는데 앞에 다른 직원분이 한 두 걸음 빨리 나오네요. '어? 화장실 가는 건 아니겠지?' 했는데, 그쪽으로 가네요? '큰 거는 아니겠지?' 불안한 마음에 잰걸음으로 앞질러 가고 싶었지만, 치사해 보였습니다.

 

양변기 4개 중 1개가 비어 있는데 그곳으로 들어가더군요. 한 숨이 나왔어요. 요즘 무얼하든 이렇게 한 걸음 늦는 일이 많이 생깁니다. 출근할 때 지하철역까지 걸어다니지만, 늦었다 싶으면 마을버스를 타고 가요. 횡단보도 건너기 전 눈 앞에서 타려는 버스가 지나가는 경우 닭 쫓던 개가 이런 기분일까 싶습니다.

 

멀리 보이는 안내 모니터에 지하철 들어오는 게 보여 승강장에 뛰어가면 눈 앞에서 문이 닫히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 열차는 여유롭죠. 고작 3분 뒤에 온 다음 차는 승객들로 이미 가득합니다. 사람들에 이리저리 채이고 내려 비교적 큰 길거리를 걸어갈 때도 이상하게 가는 방향으로 다른 사람이 사선으로 걸어 오며 아슬아슬하게 마주치는 일도 생깁니다. 마치 씨실과 날실처럼.

 

지각해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급한 마음에 '문닫힘' 버튼을 부서져라 누르죠. 문이 거의 닫히기 직전 다시 열리네요? 그 사람도 미안했지만 늦어서 급했는지 겸연쩍게 탑니다. 더하여 하필 제가 서는 12층 바로 아래 11층에서 내리는 건 대체 무슨 일인지..... 그 사람 뒤통수를 원망의 눈초리로 쳐다보며 버튼을 아예 짓누릅니다.

 

회사에 아주 조금 일찍 도착했어도 화장실, 갈 수 있었을 겁니다. 그 분과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지 않고 또 멈추지 않았다면 그 만큼 일찍 올라올 수 있었죠. 혹은 횡단보도를 기다릴 때 지나간 마을 버스를 탔다면 지하철도 놓치지 않았을 겁니다.

 

집에서 한 걸음만 빨리 나왔어도 여유로운 아침이었을 테죠. 잠을 털지 못해 이리저리 뒹굴렀던 잠깐의 게으름에 모든 게 연결된 그 한 걸음을 잃었습니다. 매 순간 '재수없다'며 운없는 사람 취급하고 치미는 짜증과 정체없는 분노로 혼자 울그락불그락 감정에 취해버렸어요.

 

이미 어쩔 수 없을 때는 안달복달하기보다 유유자적한 느긋한 마음을 갖고 싶습니다.

혹은 일찍 일어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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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감사한 마음으로, 지상 Dream

http://www.wangmada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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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안녕하세요이 편지는 한 주 한 주를 보내면서 겪은 일들과 그 느낌을 매우 개인적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자주 만나지 못하니 이런 소식이라도 나누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수 많은 스팸 메일 중 하나를 더 추가할지 모를 우려를 뒤로 하고 보냅니다. 이런저런 회신을 주신다면 더욱 좋을 일이지요. 그러나 저러나 저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고 계시는지요?

 

 

by 왕마담 2018.05.07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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