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사에 있어 흑인음악의 영향력은 절대적입니다. 백인 음악의 대표격인 클래식과 각 나라의 민요와 같은 전통 음악을 넘어 전 세계를 하나로 아우르고 있지요.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 노예들의 음악이 어떻게 대중 음악의 기반을 형성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레이찰스: 사진 출처-구글 이미지]

 

 

1. 흑인들의 애환과 음악

 

지난 시간에도 잠시 말씀 드렸지만, 미국이라는 넓은 대륙을 개척하기 위해 유럽인들은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강제로 데려와 노예로 삼아 버립니다. 오랜 시간 고통과 핍박의 세월을 견뎌야 했죠. 게다가 아프리카에서 두들기는 비트적 음악을 백인들이 좋아하지 않아 금기되기까지 합니다.

 

고달픈 삶을 달랠 필요가 있던 남부 흑인들은 비트적 음악을 멜로디 적인 성향으로 바꾸어 입으로 흥얼거리는 음악이 나오죠. 구전 전승되는 이 흥얼거림의 음악이 재즈와 블루스로 발전하게 됩니다. 흑인 노예들도 덜 구속 받았던 미국 남부 루이애나주의 뉴 올리언스에서 재즈 음악이 형성되었지요.

 

비교적 흥겨운 스타일의 재즈와 달리 '노동요'로도 불린 블루스는 당시 흑인 노예들의 애환을 담았습니다. 남부의 델타지역의 가혹한 노동 환경에서 이루어진 비참한 생활 환경 속에서 느껴진 슬픔과 고뇌 그리고 절망을 담은 음악이죠. 그래서 일까요? 블루스는 대중음악의 뿌리가 되고, 재즈는 아예 독립되어 별도의 쾌적을 보입니다.

 

 

[델타 블루스의 아버지라 불리는 Robert Johnson의 <Me and the Devil Blues>]

 

 

2. 흑인 음악의 진화

 

1) 블루스

블루스의 어원은 '청색(블루) 인디고'에서 유래됐습니다. 남부 아프리카인들의 문화 중 장례 의복을 청색으로 물들여 입었던 기원에서 시작했어요. , 슬픔과 고통 등을 표현했습니다. 또한, 미국 남부 노예 농장에서 목화를 재배할 때 부르던 '노동요'를 합쳐 <블루스>라 부르게 됐어요.

 

아프리카에서 사용된 드럼과 같은 비트적인 음악을 백인 농장주인에게 금지 당한 건 반항과 폭동을 일으킬 불상사를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대신 흑인들의 순종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유럽 스타일의 음악을 가르쳐주었다고 하네요. 블루스에도 이런 음악적 체계가 보이지만 일면 색다릅니다.

 

[블루스 노트. 출처: 네이버 캐스트]

 

 

 

블루 노트라고 하는 패턴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음계 '도레미파솔라시도'를 변형하여 미와 시는 반음을 내리고 파는 반음을 올립니다. 'b', '#', 'b'가 되지요. 하지만, 피아노로 정확하게 칠 수 없이 미묘하죠. '도시라솔파미레도'의 하행 선법을 따르기 때문에 클래식이 전통과 다른 형태를 보입니다.

 

흑인들의 마음을 표시한 게 아닐까 싶어요. 억압받는 사람의 소리였기에 '저항의 요소'를 나름대로 내재해 놓았습니다. 지배하기 보다는 당하는 민중의 느낌을 담고 있는 건 당연하죠. 대중음악의 뿌리가 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이며 블루스의 음악적 체계가 나옵니다.

 

 

[소울 음악의 대표, 오티스 레딩의 <The Dock Of The Bay>]

 

 

2) 리듬 앤 블루스(Rhythm & Blues)

 

1930년대 대공황과 세계대전으로 인해 수백만의 많은 흑인들이 시카고, 디트로이트, 뉴욕 등의 북부 도시로 이동하게 되지요. 농장에만 있던 그들이 도시의 빠른 흐름과 화려함에 매료되며, 도시적 활기로 가득 찬 블루스, <어반 블루스>로 탄생합니다. 이 음악의 대표적 도시가 시카고이죠.

 

가장 큰 변화는 일렉트릭 기타와의 조우입니다. 어쿠스틱 기타를 기반으로 흐느낌과 비슷한 조용했던 남부 블루스는 도시적 활기로 가득 찬 어반 블루스 및 빵빵한 앰프를 함께 사용하는 일렉트릭 기타와 만나며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합니다. 모던 블루스, 일렉트릭 블루스로 발전하게 되죠.

 

시카고 클럽 등지에서는 일렉트릭 기타뿐 아니라 피아노와 베이스, 드럼 등 합주가 이루어지면서 <리듬 앤 블루스(Rhythm & Blues)>가 탄생하게 됩니다. 단순하게 어쿠스틱에서 일렉트릭 기타로 악기만 바뀐 게 아닌 주법이 개발되고 블루스에 리듬이 가미되며 생기롭고 활기찬 음악으로 바뀌며 억압되어 있던 흑인 특유의 흥겨움이 녹아 들지요.

 

 

[여전히 익숙한 펑크 음악 그룹, Earth, Wind & Fire의 <September>]

 

 

 

3) 소울(Soul)과 펑크(Funk)

 

1960년대 흑인들은 미국 사회 내에서 주도권 찾기 위한 의식적 활동을 많이 펼칩니다. 흑인의 자긍심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죠. 이들은 리듬 앤 블루스를 <소울(Soul)>이라는 말로 부르기 시작합니다. 노예였던 과거가 아닌 주도적 성향을 반영하는 이름으로 바뀐 거죠. 노래에도 자기 주장이 강해지며 상승한 자신감을 반영합니다.

 

오티스 레딩, 제임스 브라운, 아레사 프랭클린 등이 소울 음악을 대표하는 이들인데 특징이 항상 열과 성을 다하는 열창 분위기를 보여주죠. 점차 아프리카 음악의 본질을 추구하려는 모양새를 보입니다. 1970년대 들어 2박자에서 16박자로 박자를 갈라서 비트로 만들죠. 이 음악을 <펑크(Funk)>로 부릅니다.

 

이전에도 <리듬 앤 블루스>에서 다시 타악기를 통한 비트가 함께 했지만 <펑크>에서는 전면적으로 부각되죠. 이때부터는 밴드를 만들어 스스로 음악을 모두 연주하며, 힙합의 발전에도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흑인 그룹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Fire)는 당시 펑크 음악을 대표하죠.

 

 

[흑인 디스코 밴드 Chic의 <Good Times>]

 

 

4) 디스코와 힙합

 

디스코 텍으로 불리는 나이트 클럽을 여럿이 가면 둥그렇게 원을 짜고 꼭 한 명씩 스포트 라이트를 받으며 춤추곤 했습니다. 흑인들의 평등 의식에 대한 문화를 볼 수 있는 거죠. <펑크>음악에서 춤을 출 수 있는 8박자로 비트를 낮추고 반복적인 리듬으로 구성된 음악이 바로 <디스코(Disco)>입니다.

 

흑인 클럽에서 발전됐으며 특히 동성애자로부터 열렬한 환대를 받았다고 하네요. 기존의 성의식을 타파한다는 상징적 의미였던 듯 합니다. 저도 들어봤던 흑인 디스코 밴드 쉭(Chic) 'Queen of Disco'로 불린 도나 섬머는 디스코의 부흥을 이끌었지요.

 

1980년대 레이건 대통령 집권 초기는 국가적 재정 파탄 상태나 다름 없었다고 합니다. 돈이 없었지요. 세금도 걷지 못하니 정부는 복지와 사회 안전 보장에 대해 예산 줄이기에 나섭니다. 주로 가난했을 흑인들이 가장 많은 피해를 봤겠지요. 그들의 불만이 문화로 표출되는 게 바로 힙합의 태생입니다.

 

대량 실업자가 양산되어 길거리에서 노숙이나 하는 이들은 자신의 몸을 부술 듯한 브레이크 댄스를 추고, 노래가 아닌 불만을 욕하듯 지껄이며 표출하는 랩 등의 반항 문화가 나타나죠. 우리나라는 1993년 김건모의 핑계나 듀스 등을 통해 흑인 음악, 힙합이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Queen of Disco'로 불리는 Donna Summer의 <Hot Stu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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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사이트

1. 네이버 캐스트: 재즈

2. 위키 백과 사전: 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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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마담 2015.07.01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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