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고 있는 <절규>의 화가 뭉크 회고전을 관람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초의 대규모 작품을 들여온 데에 높은 관심을 받고 있더군요. 관람 전날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를 봤었습니다. 나오는 데 뭉크전 입장을 위한 줄이 뱀 똬리처럼 꼬여있는 걸 보고 놀랐으며 의문이 들었어요. '이만큼 그의 작품이 대단한가?'

 

 

 

 

전까지 관람을 할까 말까 망설였습니다. 평일이라 사람은 많지 않아 좋을 거 같은데 시간 투자만큼의 뭔가를 얻을 수 있을지 고민했거든요. 미술에 대해 잘 모르는 까막눈이라 대작품들을 봐도 감동을 받지는 못합니다. 화가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고요.

 

망설여지는 감정에 이끌려 그를 검색했더니 매우 불우하다 말할 수 있는 시기를 보냈습니다. 가족 모두가 자신보다 먼저 병과 사고에 의해 죽었어요. 본인은 병약한데다 트라우마까지 있어 늘 죽음의 사신이 옆에 있다고 회고할 정도의 불안하게 살았습니다. 끌렸어요. 작품보다 그에게.

 

감정의 소용돌이를 뚫고 살아야 했던 그의 작품에 녹아 있을 인간 본연의 모습들이 어떻게 표현되었을지 궁금했습니다. 그의 전반적인 삶에 대해 조금 알았다고 해도 속속들이는 몰라 큐레이터가 설명하는 도슨트 시간에 맞춰 입장했죠. 더하여 해설 녹음기의 도움도 같이 받았습니다.

 

 

[관람 전 유일하게 알고 있던 '뭉크'의 그림, 절규]

 

 

항상 죽을 거 같은 불안에 시달렸던 사람치고는 오래 살아 유화 약 1,100여 점과 판화 약 18,000여점 및 드로잉과 수채화 4,500여 점 등의 다른 유명 화가들에 비해 많은 작품을 남겼어요. 도슨트의 해설 역시 작품 하나에 초점을 맞추기 보단 뭉크의 시대별 흐름에 맞춰 변한 화풍과 영향에 대해 들었습니다.

 

해설기는 작품 하나가 어떻게 구성되고 그렸는지에 대해 알려주어 서로 보완되어 많은 걸 배우고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스페인의 프라도와 왕립 소피아 미술관 이후 국내에서도 고흐와 알폰스 무하를 봤었는데 가장 느낌이 남았습니다. '이래서 미술관 오는 걸까?' 싶었어요.

 

이번 전시는 총 5개의 Section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뭉크의 자아상으로 시작하여 밤으로 끝나는데 시대의 흐름에 따른 화풍에 대한 변화를 쫓은 듯 했어요. 그는 '감정'을 화두로 다루는 표현주의 대표적 화가로 분류됩니다. 노르웨이에서 태어났으나 '뭉크 스캔들'로 알려진 독일에서 자신을 알리며 성공하지요.

 

 

[마돈나]

 

 

작품들을 쭉 봐보니 역시 그의 화두는 '', '죽음', '보헤미안' 그리고 '여자'로 말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거기에서 오는 고독, 불안과 이중성, 두려움, 슬픔 등을 다루었어요. 첫사랑으로 알려진 밀리 탈로는 자유분방한 보헤미안 기질로 연애하며 뭉크는 의심과 질투 등에 시달리며 여성 전체에 대한 혐오를 하게 됩니다.

 

스토커와 같았던 툴라 라르센이라는 여인으로 인해 여성 혐오는 두려움으로 치닫게 되는 듯 보였어요. 보헤미안 그룹의 리더 한스를 만나며 급진적 사상을 배우며 자신을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이때 니체의 자화상을 그린 모습도 있는 데 '신은 죽었다'는 이론에 탄복하였다고 하네요. 실제 만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작품 감상을 시작하자 마자 그의 셀카를 만날 수 있었어요. 피카소와 달리 새로운 매체를 적극 활용했던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마지막에는 그가 직접 찍은 아주 짧은 영상도 있었거든요. 자신과 주변의 영향을 주었던 인물들의 자화상을 많이 그렸습니다. 시기와 상황에 따라 표현이 달라 솔직한 표현이 흥미로웠어요.

 

 

[뱀파이어]

 

 

<병실에서의 죽음>을 보면 어렸을 때 죽은 누이를 표현했는데 그릴 때 마다의 나이로 표현했습니다. , 기억의 한 때가 아닌 자신을 따라 다니는 트라우마로 본 듯 했어요. 관련하여 <임종의 자리에서> <병상에서의 소녀>를 볼 땐 그의 아픔이 공감되는 듯 가슴이 먹먹하기도 했습니다.

 

프로젝트로 그린 <생의 프리즈> 시리즈 중 단연코 유명한 <절규> 1895년 제작한 판화 버전이었어요. 색 있는 유화는 이번 전시에 없어 좀 아쉽기도 했습니다만 그 유명한 그림을 눈 앞에서 직접 보는 것 자체로 느낌이 묘했습니다. 그가 직접 설명한 '자연을 가로 지르는 불안'에 대한 내면이 손에 잡힐 듯 했어요.

 

유명한 작품, <마돈나>는 남성의 암울한 모습을 그린 게 공감되었습니다. 우월한 섹쉬미를 가진 성녀와 초라한 뭉크 자신을 표현한 모습이었어요. <흡혈귀> <키스>라는 작품은 여성에 대한 그의 이중적 해석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사랑에 대한 열정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듯 보였어요.

 

 

[뭉크의 별이 빛나는 밤]

 

 

쭉 관람하다 보니 궁금한 게 생겼어요. 말년의 그의 그림은 <태양>과 같이 활기찬 에너지로 가득합니다. 또한 <별이 빛나는 밤>에는 외로움이 짙어 보이지만 고요해진 내면을 보는 듯 합니다. 그토록 자신을 떨게 했던 죽음과 생의 불안에 대해 걷힌 듯 보였어요.

 

과도한 음주에 의한 불안증세로 인해 약 8개월 동안 병원에서 요양을 취했다고 합니다. 병세의 호전으로 인한 그의 그림 역시 따뜻해졌다고는 하는 데 좀 더 알고 싶은 욕망이 드네요. 과연 무엇이 그의 심경에 변화를 주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이후 그를 마음을 보러 다시 한 번 보러 가야겠습니다.

 

마지막 섹션의 작품 중 <밤의 방랑자>를 볼 때 해설기에서 '결국 완전하게 사라질 것이다'라는 말이 나오더군요. 불현듯 엄습하는 생의 유한함이 느껴졌습니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멜랑콜리는 짧은 생 속에서도 불안에 떠는 인간의 나약함 때문은 아닐까요?

 

 

[뭉크의 태양]

by 왕마담 2014.09.02 09: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