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다수의 스포가 포함된 리뷰입니다.

저도 감상 전 스포를 증오하는 바, 아직 보지 못하신 분 중

스포를 싫어하시는 분들은 읽지 않는 게 마음 건강에 좋을 것입니다. 

 

 

 

뮤지컬 <모차르트> 원작가들의 또 다른 대작

 

1938년 출간된 대프니 듀 모리에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레베카(Rebecca)>를 관람했습니다. 베스트셀러로 이미 유명해진 작품을 1940년 알프레드 히치콕이 영화화하여 더욱 널리 알려졌어요. 관람 전 영화를 먼저 보지는 못했습니다. 오래 전 영화라 땡기지 않았던 게 가장 큰 이유였어요.

 

<레베카> <모차르트!> <엘리자벨>를 만든 미하엘 쿤체와 실베스터 르베이의 또 다른 작품입니다. 뉴욕 브로드웨이와 런던 웨스트엔드 대작들인 <레 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캣츠>, <위키드> 등이 지나가니 유럽 뮤지컬들이 다가오는 드 해요. <마리 앙투아네트>, <노트르담 파리> 등의 막이 올라갑니다.

 

창작된 과정이 흥미롭더군요. 쿤체와 르베이는 <모차르트!>완성을 위해 합숙을 하고 있던 중 같이 영화 <레베카>를 보게 됩니다. 다음 날 아침 이 둘은 서로 같은 아이디어를 떠올리며 심리 서스펜스를 뮤지컬로 만들려는 도전에 뛰어 들더군요. 바로 저작권을 갖고 있던 원작자의 상속자들을 설득했답니다.

 

 

[리사와 오소연씨의 <레베카>, in 2014 레베카]

 

 

초연까지 걸린 시간, 23

 

이 작품이 뮤지컬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를 상황, 이 둘은 엄청난 저작료를 지불하기로 결정하더군요. 이후 작품을 분석하고 극의 구조를 만들며 캐릭터들을 뮤지컬에 맞도록 다시 그렸답니다. 가장 공을 들인 역할은 '(I)' '댄버스 부인', 그리고 '막심'이었죠. 이후에야 이들에게 맞는 곡들을 만들어 주었다고 합니다.

 

1977년 작품 연구와 창작에 들어가 드디어 2000 9월에서야 첫 번째 버젼이 완성되었다고 하니 무려 23년이 걸렸네요. 작품을 설명하는 프리젠테이션은 성공적이었지만 영어로 첫 공연을 시작하기 위한 프로듀서를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3년 동안 수 차례 거절을 당했다고 하네요.

 

그들의 고향인 비엔나에서 독일어로 작품을 올리겠다고 마음을 바꾸고 나서야 2006년 오스트리아에서 초연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뮤지컬로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를 불안한 요소로 조마했던 이들에게 첫 공연 후의 기립 박수와 환호성이 어떻게 들렸을까요?

 

 

 

 

2013년 대한민국 초연 그 이후

 

이후 일본, 핀란드, 러시아, 헝가리, 스위스, 독일 등에서 찬사를 받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3 1 LG Art Center에서의 초연 후 국내 순회 공연을 했어요. 당시 주연 배우는 옥주현씨, 신영숙씨, 유준상씨, 류정한씨, 오만석씨, 김보경씨 등이 무대 위에서 호평을 이끌며 2013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연출상, 무대상, 조명상, 음향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올해 역시 옥주현씨와 신영숙씨, 오만석씨는 변함없이 출연했고 더하여 민영기와 엄기준씨가 막심으로 리사씨가 댄버스 부인으로 합류했어요. 제가 봤을 때는 옥주현씨(댄버스 부인), 엄기준씨(막심), 오소연씨() 였습니다. ''의 독창인 <프롤로그-어젯밤 꿈 속 맨덜리>로 공연은 시작됐어요.

 

좀 이상하게 들려 오소연씨의 컨디션이 그리 좋지 않은 듯 했습니다. 진행될수록 점차 안정을 찾아 안심스러웠지만 프로도 긴장하는 걸 봤던 경험이었죠. 1막 전반부는 막심의 <놀라운 평범함> '' <행복을 병 속에 담는 법>의 넘버가 말하듯 사랑의 결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시각적 하이라이트 무대, 불타는 멘델리]

 

 

Story & Number

 

미국 부유층 여성 반 호퍼 부인(김희원)의 유머 코드가 들어간 호들갑이 극을 더 살렸어요. 1막 중후반이 되어 나오는 댄버스 부인은 엘파바 블랙 버젼을 보는 듯 했습니다. 캐릭터가 지닌 표독한 카리스마 그대로 보였어요. 돌아오지 않은 지 한참인 레베카의 방을 정리하며 부르는 <영원한 생명>은 선망과 집착에 대한 표현입니다.

 

음습한 멘델리 저택에서 불안을 느끼는 ''와 행복에 대한 의심으로 괴로워 하는 막심은 서로의 믿음을 <하루 또 하루>로 맹세합니다. 레베카 대신 멘델리를 차지하려는 ''에게 댄버스 부인은 <레베카1>를 통하여 이 집의 진짜 주인이 누군지 각인시켜 주려 하죠. 그건 마치 관중에게도 말하는 듯 했습니다.

 

옥주현씨의 힘이 느껴졌습니다. 절제된 행동과 눈빛, 노래에서 풍기는 감정까지 <위키드>의 엘파바 보다 더 잘 어울리는 캐릭터였어요. 댄버스 부인이 나오기 전까지는 여느 뮤지컬과 다를 바 없었지만 출연하자 마자 단번에 비교할 수 없는 유니크한 <레베카>가 됐습니다.

 

 

[엄기준과 오소연씨의 <하루 또 하루>, in 2014 레베카]

 

 

서스펜스가 느껴지는 넘버, <레베카>

 

숨겨진 진실을 암시하는 사건으로 1막이 내려간 후 2막이 시작하자 마자 발끝에서 허벅지까지 소름이 쭉 끼쳤어요. 자신을 속인 댄버스 부인에게 따지는 ''를 자살시키려는 <레베카(긴 버전)>은 마치 <오페라의 유령>의 핵심 넘버인 <The pantom of the opera> 수준이었습니다.

 

1막에 나오는 넘버 <레베카1>이 서막을 알렸다면 2막의 <레베카(긴 버전)>은 이 넘버를 완성시키는 느낌이었어요. 같은 넘버를 두 번 부르는 게 아니라 다른 넘버 두 개가 하나의 넘버로 합쳐지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더하여 단번에 바뀌는 뷰(View) 관점을 보여주는 무대 셋팅까지 완벽했습니다.

 

<미스 사이공>에서 미군이 사이공을 탈출할 때의 혼란을 표현한 무대 연출은 매우 독특해서 기억에 많이 남아 있어요. 철조망의 위치를 바꾸어 가며 안팎의 모습을 함께 보여줍니다. <레베카(긴 버전)>의 테라스 연출도 비슷했어요. 집 안에서 보여주던 모습이 테라스의 위치가 바뀌며 밖에서 안을 보게 됩니다.

 

 

 

 

무대 연출까지 세련된 유럽 스타일

 

음악에 이어 무대 연출도 놀랍습니다. 프리젠테이션을 쓴 뮤지컬을 몇 편 봤어요. 그 중 가장 유명한 장면은 아마도 <레 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이 마리우스를 데리고 도망가는 장면일 듯 합니다. 국내 초연에서 좀 어색했는데 <레베카>는 실제 무대와 함께 보여지기에 자연스럽더군요.

 

자신을 멘델리 그 자체로 보던 덴버스 부인은 본인의 정체성이나 다름 없던 레베카를 살인했다는 의심으로 공판에 간 그녀의 진실을 알게 됩니다.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던 그녀는 결국 멘델리와 함께 불타 무너집니다. 이 마지막 장면은 배우들 연기와 노래 그리고 무대 연출까지 더해 더할 나위 없었습니다.

 

''의 모습이 착하고 여리던 여성에서 점차 강인해지는 모습을 보여 줘야 했는데 덴버스 부인의 카리스마에 비해 아쉬웠어요. 그 점 외에는 올해 관람했던 뮤지컬 중 만족도가 가장 높았습니다. 옥주현씨가 부른 넘버 <레베카>를 들으면 여전히 가슴이 뛰네요.

by 왕마담 2014.10.12 1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