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이나 '도'를 보면 단순함을 담은 '칼'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버립니다.
거기에 더해 사람의 마음이 절절하게 담긴 칼을 보면 아름다움 그 이상의
무엇을 느낍니다. 남을 베기 위함보다는 자신의 나약함을 베기 위했던 아산
현충사의 큰 칼이 바로 그러하지요. 대부분 죽도를 사용하지만 '검도'라는
무술 혹은 운동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차승원이 연기한 이몽학의 칼은 직선적입니다. 힘이 넘칩니다. 망설임이
없습니다. 자신의 꿈을 위해 부하마저 베어버릴 정도로 거침없이 사용합
니다. 그에 비해 황정학의 칼은 허허실실해보입니다. 칼집으로 때릴지
칼로 벨지 알 수 없습니다. 남을 베기는 하나 목숨까지 끊지는 않습니다.

두 사람의 칼은 두 사람의 성격과 꿈만큼 다릅니다. 부패한 권력층이
지배하는 조정을 베어버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 이몽학이 들고
있던 칼의 꿈입니다. 거기에 비해 황정학은 모두가 살 수 있는 길을
걷고자 합니다. 급박한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그의 칼 역시 함께
살길을 찾는 꿈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공존할 수 없는 꿈은 서로
부딪히고 베고 질리고 찔립니다.

검도를 배우며 대련할 때 저는 황정학의 칼을 동경하지만, 이몽학의 칼을
닮았습니다. 외고집이고 하나에 푹 빠지면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고
내향적이라 칼을 잘 내지는 않지만 직선적으로 상대방에게 달려드는
모습입니다. 즉, 목표를 위해 달려갑니다. 목표가 없으면 힘이 빠져버리기도
하고, 방황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예전의 경직된 모습에 비하면 지금은
좀 더 여유로워 지는 것 같습니다.


극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인물 두 명이 더 있는데 이몽학이 죽인 아비의
서자 출신인 견자와 이몽학과 사랑하는 사이의 기생 백지입니다. 이 원수지간과
다름없는 두 명이 처음 만나 나누는 대화 중 견자가 자신의 출생과 이름을
대자 백지는 '그래서?'라고 대꾸합니다. 이것은 이몽학과 황정학이 서로의
길의 교차점에서 칼싸움을 시작하는 대화에서도 나옵니다. 이몽학이
반란을 일으킨 이유를 대자 황정학은 '그래서?'라고 대꾸하는 것이지요.

'그래서?'라는 물음은 핵심과 진심을 담지 못한 대화에서 던지는 질문인
듯 합니다. 내뱉은 말에 의도하는 바가 명확하지 않을 때 사용하는 것이
지요. 또한 핑계거리와 암시를 걷어내게 만듭니다. 서자출신이라 해서
꿈을 가지지 못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부패한 권력층으로 지배되고 있는
조정이라고 해서 반드시 모두를 죽여야만 원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황정학의 말처럼 모두가 죽는 길
일 것입니다. 지금 내 안의 도전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하는 콤플렉스의
조건들에 '그래서?'라는 질문을 던져 봅니다. 핵심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텅빈 궁궐 속에서 빼들은 이몽학의 꿈을 잃어 버린 칼은 힘이 없습니다.
먼저 와있던 견자와의 싸움에서 분노로 힘을 내보지만 꿈이 아닌 분노로
솟아오른 힘은 곧 그 힘을 잃어갑니다. 왜적을 막는 동료의 다급한 부름에
틈을 보인 이몽학은 견자의 칼을 받습니다. 그제서야 칼을 받은 사람도
칼을 찌른 사람도 진정한 적이 누구인지를 깨닫는 듯 합니다. 견자는
황정학의 칼과 이몽학의 칼 두자루를 들고 왜적에게 홀로 싸우러 뛰어갑
니다. 두 사람의 칼이 진정한 적을 향하고 있지만 그 꿈을 담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사라져버린 후이지요.

구름과 달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가장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는 듯한 엔딩신이 그것에 대한 대답인 듯 합니다. 몇 분되지 않는
엔딩신이지만 이것이 바로 '달'의 모습일거라 생각합니다.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 자체가 그리고 그 삶이 바로
'달'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구름'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바로
지금까지의 스토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여립, 대동계, 이몽학이라는 역사의 실제 인물과 사실을 허구로 잘 엮은 이 영화는
주인공들의 명연기와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화려한 칼싸움의 액션, 극의 빠른 흐름
사이에서 보여지는 우리나라의 멋진 풍경을 보여주는 영상이 바로 동양화 속의 여백
이라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오래간만에 참 멋진 영화를 보았습니다.

by 왕마담 2010.05.03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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