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남지 않은 순례길은 점점 더 힘겨워졌다. 끝이 보이는 아쉬움 때문인지 홀로 걷는 외로움 때문인지 비가 왔다 추웠다가 다시 더워지는 오락가락하는 날씨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몸이 지치는 만큼 내 마음도 지치는 듯 약해지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 동안 애써 둘러쳐 세운 마음의 울타리가 걷는 내내 조금씩 걷혀버려서 일 수도 있겠다. 자꾸 옛 생각에 콧잔등이 시큰해지니 그것이 맞는 듯싶었다그렇게 30 Km를 걸어 도착한 곳은 Azua라는 마을이었다. 순례자 숙소인 알베르게는 꽤 넓었다. 묶을 순례자는 나를 포함한 총 4명뿐, 샤워하고 나오니 그들 역시 어딘가로 나갔고 나 혼자 멀뚱하게 남게 됐다.

 

피곤해서 저녁도 먹지 않고 침대에 누웠다. 창문 밖 저 멀리 해가 지고 있는 모습에 유난히 눈을 떼지 못하고 있자니, 어느덧 김광석의 노래가 귓가에 들린다. ‘서른 즈음에를 지나 혼자 남은 밤을 거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이 나를 휘감는다. 저 멀리 꺼져가는 태양을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보기 위해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마을의 울타리 밖으로 가고 있는데 어둠은 어느덧 내 뒤를 바짝 쫓고 있다조급해졌다. 무거워질 대로 무거워진 발걸음을 억지로 빨리 하는데 왈칵 눈물이 나온다. 뛰어야 잡을 거 같았다. 하지만 뛸수록 왠지 더 멀어져 가는 거 같아 어느새 눈물이 울음으로 바뀌었다. 어쩌다 생긴 장난감을 잃어버려 아까움에 눈물짓다 서러움이 복받쳐 대성통곡으로 변해버린 어린 아이가 된 꼴이었다.

 

비가 왔다. 학교를 안 갔다. 늦잠을 잤다. 학교를 안 갔다. 귀찮아서 학교를 안 갔다. 등굣길에 재미로 학교를 안 갔다. 선생님께 혼날 생각에 학교를 안 갔다. 친구들과 의기투합하니 학교를 안 갔다. 누군가에게 뽐내고 싶어 학교를 안 갔다. 담배 피다가 학교를 안 갔다. 밤새 놀아 학교를 안 갔다. 어머니가 들어오지 않았다. 학교를 안 갔다. 짜증이 났다. 학교를 안 갔다. 그냥 학교를 안 갔다.

 

별 관심 없던 수업시간, 슬쩍 학교를 나와 여기저기 방황했다. 만화방을 가고 오락실에 가고 당구장에 가고 뒷산에 가 술 마시고 담배를 폈다. 자유롭고 홀가분하다고 느낀 기분은 딱 30분이었다. ‘학교 안가결정한 후로부터. 그리고는 이내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것을 잊기 위해 더욱 더 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았다. 다른 사람이 그러하듯. 그게 전부였다. 나의 고등학교 생활은. 졸업이라도 한 것은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참 의미 없다고 느낀 시간의 연속이었다왜 그리도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를 포기했을까? 그렇게라도 해서 누군가에게 관심 받고 싶었던 것 같다. 삶을 포기한 척 무관심한 행동 뒤로 늘 누군가로부터 관심에 굶주렸던 거 같다. 되돌이킬 수 없을 답만 찾던 왜 나만…’이라는 불만은 어느새 삶에 대한 묵묵한 체념이 되어버렸던 듯 싶었다. 그렇게 쳐진 어깨와 무거운 발걸음으로 다시 집에 들어설 때면 늘 내 뒤로 해가 졌던 것 같다.

 

산티아고를 얼마 남겨 놓지 않은 그 날의 울음 중 하나는, 이제는 또 그렇게 될까 두려워진 경험이 되어버린 그때의 아쉬움, 그 하나였으리라. 한시라도 빨리 찾지 않으면 영영 잃어버릴 거 같은 소중한 그 무엇을 종내 잃어버린 서러움의 마음이었으리라. 누군가를 탓하고 싶지만 결국 내 잘못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때늦은 절박한 뉘우침이었으리라. 결국 잡지 못할 것임을 깨닫고 이내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야 할 것을 아는 짙은 안타까움의 그 시간들은 내게 너무나도 아쉬운 기억이 돼버렸다.

 

 

 

 

 

by 왕마담 2012.09.11 09:38
| 1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