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가는 길]


요즘 나의 토요일은 좀 바쁘다.
아침에는 사무실에 나가 프로젝트 준비를 하고 오후에는 영어학원을 향한다.
그래서 저녁 7시 학원을 나오는 발걸음은 좀 지친다.
지쳐있어서인지 사람많고 화려하기로 유명한 강남역에 학원이 있기에
그 많은 사람들과 괴리감이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런 토요일 밤에 영화를 예매했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길고도 일견 유치해보이기도 했지만 왠지 끌려 검색해봤더니 평단의 화려한 수식어들이
줄줄이 붙어있었다. 어떤 영화일까 궁금했다.

막상 예매를 했지만, 학원을 가면서 예매 취소를 하려고 했다. 피곤할 듯 해서다.
학원이 끝나고 또 취소하려고 했다. 여전히 영화 시작 시간이 많이 남아서다.
그런데, 주변에 PC방이 보이지 않았다. 인터넷을 접속할 환경이 없었다.
결국 남은 시간은 카페에서 책을 읽고 영화를 보기로 마음먹었다.

영화를 혼자볼 때는 주로 조조를 이용하는데 토요일 밤에 혼자 영화보러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맨처음 영화를 혼자보러 갈 때의 그 머쓱함이 찾아왔다. 누군가 토요일 밤 청승맞게 혼자 영화보러
왔느냐며 뭐라고 할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그렇게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영화관에 앉아서 나 외에 혼자 영화보러 온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 이 느낌은 없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니 이런 나의 사소한 소심함에서 비롯됐을지 모를 감정은 사라졌다.
나도 모르게...

[영화 이야기]

영화를 보러갈 때 예고편은 되도록 보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내용을 눈치채면 재미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도 평단의 수식어들과 평점 등을 보기는 했지만 영화에 대한 내용이 조금이라도 보일라치면
잽싸게 웹을 닫았다. 한마디로 나는 이 영화에 조금의 무장도 하지 않았다.

어느 은행의 계약직원으로 일하는 해원은 뜻하지 않게 밤거리에서 폭행 사건의 목격자로 연루됐다.
대출상담을 하는 와중에 경찰서에서의 호출이 뒤따라 오지만, 해원의 표정은 대출상담을 하는
고객과 마찬가지로 귀찮음과 상대방과의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그리고 자신이 뜻하지
않는 사건에 연루되어 시간과 감정적인 손해라도 볼까봐 걱정하는 표정이 엿보인다.

휴가를 내고 무도에 내려온 해원은 복남의 환대를 받지만, 섬사람들은 썩 반갑지만은 않다.
영화의 주인공인 복남의 섬생활은 평탄하지 않다. 그런 복남은 자신의 딸과 함께 무도를 떠나
서울 생활을 꿈꾼다. 꿈꾸는 그곳의 유일한 실 하나가 바로 해원이다.

어느날 복남은 자신의 남편과 딸의 이상한 관계를 눈치채면서 결국 무도를 탈출하려고 하지만,
남편에게 잡혀 모지게 맞는다. 그 와중에 아버지를 말리는 딸을 밀쳐냈지만 돌부리에 뒷통수가
깨져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된다. 복남은 오열한다. 공권력에 호소하지만, 그 불편한 진실을
섬사람들은 모두 외면한다. 설사 친구인 해원마저...

그렇게 모든 일이 지난 듯 보이지만 눈이 부시도록 햇빛이 내리쬐는 어느날 섬의 남자들은
벌꿀을 팔기 위해 육지로 나가고 복남은 말 그대로 미친 듯이 감자를 캔다. 같이 감자를 캐던
동네 아줌마들은 한켠에서 햇빛을 피해 막걸리 한 잔씩을 들며 쉰다. 복남은 아랑곳없이 감자를
캐다가 태양과 대화를 하듯 아니 싸우듯 노려본다. 이제부터 복수를 다짐하 듯.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보편적 외면

이제 영화와 다른 이야기들에서는 '외면'의 주제가 보편적으로 보인다. '아저씨'에서는 버림받은
아이들을 외면하는 사회를 보여주고 있다면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에서는 해원과 섬사람들이
딸의 죽음을 외면하고 있다. 사실 딸의 죽음 뿐만 아니라 남편은 병적으로 무분별한 성욕을 가진
자신의 동생이 부인을 폭행하는 것, 섬사람들이 복남이 받는 가혹한 노동을 하는 것 등을 외면하고
있다. 또한 해원은 섬 무도에 내려오기 전 대출 상담을 받는 독거노인의 집세를 위한 대출금에 대해
서 외면하고 있고 경찰서에서는 어떠한 폭행 사건의 진실에 대한 진술을 외면하고 있다.

외면은 무엇일까? 외면의 사전적 의미(네이버)는 '마주치기를 꺼리어 피하거나 얼굴을 돌림'이다.
이 영화가 뜻하는 외면은 이미 알고 있는 진실을 애써 눈을 돌려 피하는 것이다. 그 진실을 마주하여 
자신이 어떠한 귀찮고 번거로운 일에 빠져들게 될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아니
내가 가장 분노할 때는 거짓되거나 오해에 빠져 진실된 마음이 왜곡될 때이다. 가슴이 터져버릴 듯한
울화가 나를 휘감는다.

복남 역시 마찬가지였던 듯 보인다. 자신의 딸이 사고로 죽은 것 역시 슬픈데 모든 섬 사람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의지하고 있던 친구와 공평해야할 공권력에게까지 외면당하자 참을 수 없는 분노로
그녀는 끔찍한 복수를 다짐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만약 남편이 진심의 사과를 하고 섬 사람들이
그 진실을 숨기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만약 그랬다면 영화가 재미없었겠지?

힘의 논리와 슬픔 속에서의 순수한 복수

몇 차례에 걸쳐 무도 섬사람들이 '역시, 섬에는 남자가 있어야 돼'라는 비슷한 대사들이 나온다.
그들이 필요할 때는 모두 힘쓰는 일이 필요할 때이다. 섬에서 남자는 두 명뿐이다.
복남의 남편인 만종과 철종이다. 그들은 일견 무심한 듯 보이지만 섬 내에서 자신들만이 가지고
있는 특권을 즐기는 듯 보였다. 그 특권은 마을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내에서 뭐든
자신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듯이 보여지는 복남에 대한 (성)폭력이다. 하지만, 그들도 공권력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진다. 모두 약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극 초중반 복남은 무도에서 가장 약한 자를 보여준다.
항상 무자비한 노동을 떠맡고 불합리하고도 폭력적인 생활 환경을 묵묵히 받아들인다.
그녀가 꿈꾸는 것은 딸과 함께 무도를 떠나 서울로 가는 것 뿐이다. 하지만 복수를 할 때
즉, 사회의 금기에서 벗어나자 마자 그녀는 섬 내에서 누구도 두려워하는 가장 강한 자가 된다.

그녀의 복수는 일견 통쾌하고 시원하게 보이지만,
딸이 죽자 그녀를 도와줄 사람은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의 복수는 슬프다.
하지만, 순진했던 그녀에게 분노는 순진했던 만큼 또한 참았던 만큼 처절했다.
그래서 복남에게 극 전반을 통해 공감했던 나는 그녀의 복수가 통쾌하면서 또한 시원했다.
그렇지만 슬펐다. 그녀의 복수는 삶의 희망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순수한 복수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by 왕마담 2010.09.05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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