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나름 시놉시스]

 경찰 마약단속반이 장기간 잠복 근무 끝에 수사를 마무리할 수 있는 결정적 현장을
포착하고 침투하여 검거하지만, 클럽의 댄서에 의해 이미 마약은 빼돌려진다. 이 영화
스토리의 시작이다.

 전당포 주인인 무뚝뚝한 태식은 소미를 위해 사온 소시지를 속마음 들키지 않게 굳이
지폐를 동전으로 바꿔주는 장면이 나오며 그들의 공감대를 설명한다. 소미는 마약을
빼돌린 댄서의 딸로서 세상에서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태식밖에 없는 듯 하다.

 결국 그 마약의 주인과 다름없는 만석과 종석에게 잡힌 효정(소미의 엄마)은 가혹한 린치를
당하고 소미와 함께 어디론가 끌려간다. 전당포에 맡겨놓은 마약이 들어 있는 카메라 가방을
찾기위해 찾은 조직 패거리들과 마주치는 태식은 애써 충돌을 피하려 하지만,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효정의 신음소리와 소미의 비명 소리에 그들이 납치된 것을 알고 구출하기로 마음
먹는다.

 만석과 종석의 요청사항을 들어주면 풀어준다는 말을 믿은 태식은 그들이 시키는데로 하지만,
태식을 이용하여 마약 사업을 독점하려는 그들의 함정에 빠져 다른 조직의 우두머리와 함께
마약단속반에 검거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이 파놓은 함정은 마약 외에도 살인의
함정까지 파놓았는데 그 시체는 바로 소미의 엄마인 효정의 끔찍한 시체였다.

 장기와 각막까지 모두 밀매로 넘겨진 효정의 시체에 대한 얘기를 형사에게 들으며 태식은
복수와 함께 소미를 구하기 위해 경찰서를 탈출하고 만석과 종석의 뒤를 캐며 뒤쫓는다.
점차 그들에게 다가갈수록 장기밀매와 마약을 위한 아이들의 노동력 착취를 두 눈으로 확인하는
태식은 그들의 철저한 잔인함과 돈 밖에 모르는 인간성, 그리고 그 위해 쌓은 부로서 자신들만을
위해 살아가는 그들에게 잔혹한 복수를 하게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전당포 주인에게 동생의 린치를 전화 너머로 들은 만석은 소미를 미끼로
태식을 그의 아지트로 불러들이고 태식은 소미를 구하기 위해 혼자서 그들의 소굴로 뛰어든다.

['아저씨' 마음을 사로잡은 장면들]

감독의 소소한 감성적 Detail

많은 분들이 태식이 과연 자신의 목숨을 모두 걸면서 소미를 위해 복수와 구출을 하게 될만한
감성의 공유가 되지 않은 점을 손꼽는다. 하지만, 또한 많은 분들이 얘기하는 태식의 더 빠른 응징을
보여주기 위한 플롯으로 설명되는데, 동의한다.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는 이미 필름에서 보여주지 않는
장면에서 그들의 친밀함은 이미 형성된 것으로 보여주는데 그 도구가 바로 '소세지'와 'MP3P', '우유'
'다크나이트'카드 등으로 보여 주고 있는 듯 한다.

태식의 첫 등장에서 고민하는 것은 소시지를 살까 말까가 아니고 어떤 것을 살지 고르는 장면이 나온다.
만약 그 자신을 위해서라면 극의 흐름으로 보아 아무거나 대충 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소미를
위해 사려고 그는 고민했었고, 소미에게 그런 자신의 마음을 들키지 않도록 MP3P를 받고 건네준 천원
짜리 지폐를 다시 동전으로 바꾸어 주면서 일부러 소시지의 위치를 살짝 변경하여 소미에게 보여준다.

소미 역시 세상에서 자신이 유일하게 소통하는 사람으로는 태식을 손꼽고 있는데 그녀의 엄마인 효정이
술에 취해있거나 마약을 하면 늘 태식의 전당포에 놀러와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애써 잊어버린
듯 하다. 그런 그가 자신이 곤경에 처했을 때 모른 척 했던 모습을 보고서도 '다크나이트' 카드를 주면서
그래도 태식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면서 가슴을 치는 모습으로 그들의 공감을 보여주고 있다.

경쟁의 철학에 오염된 세상

 만석과 종석에게 지시받아 물건을 찾는 지하철 보관함에는 '고장'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아이들이
물건을 찾는 오락기 역시 '고장'이라는 표시가 되어 있다. '수리중'도 있고 '만지지 마시오' 등의 경고
표시도 있으며, 아예 아무 표시가 없어도 되는데 왜 하필 '고장'일까? 또한 그 '고장'이라고 표시되어 있는
보관함을 만지는 사람은 세상과 소외된 태식이며 세상에서 버림받은 아이들이다. 고장이 나면 예전에는
다시 고쳐서 사용했지만, 요즘에는 다시 새로 산다. 고장난 것을 다시 고쳐쓰기에는 시간과 정성이 든다.
돈이 조금 더 들더라도 이제 우리는 고장난 것을 고쳐서 사용하기 보다는 새로운 것을 산다.

 물건들뿐만 아니다. 세상으로 버림받고 소외된 사람들은 고장난 취급을 받는다. 같은 사람으로 취급받지
않고 어떤 눈에 보이지 않는 지위가 존재하는 듯 그려진다. 소미가 도둑질한 아이의 엄마는 소미에게 손을
대는 아이에게 세균이 묻는다며 질색을 한다. 고장이라고 쓰여있는 그러나 실제로 고장나지 않은 물품함과
오락기는 본래의 이용 가치를 잊어버린채 단지 욕심많은 사람들에게 이용당할 뿐이다. 소미와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많은 아이들 역시 탐욕스러운 이들에게 그저 이용당할 뿐이었다. 심부름과 같은 노동력의 착취부터
신체까지 버려진 물건과 같이 그저 이용당할 뿐이었다.
 
 버려진 것에는 무관심하다. 새로운 것이 늘 풍요로운 세상 속에서 한 물가서 버려진 것이던 고장나서 버려진
것이던 누군가에게 버려진 것에는 무관심하다. 경쟁의 철학에서 살아가기에 타인에게 버려진 것은 이미
패배의 심리가 묻어있다. 패배한 것은 쓸모없다. 그것은 돈이 될 경쟁력이 없기에 버려진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이미 많이 있는 보관함과 오락기는 고장난 것이 있으면 그 옆의 또다른 보관함과 오락기를 이용하면
될 뿐이다. 이제 우리는 사람들에게도 같은 철학을 적용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 반문해보아야 할 때라는 것을
영화는 잔인함으로 보여주고 있다.

 태식은 아이들을 미행하여 종석의 가구 공장과 같은 아지트를 찾는다. 그 속을 살피려 꺼져있는 램프를 다시
켜고 희미하지만 단서를 쫓기에 충분한 불빛으로 소미가 있는지 살피던 태식은 그 속에서 아이들의 노동력이 마약
생산과 밀반출을 위한 노동에 착취되는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다. 종석을 죽이려 의자에 묶어놓고 아이들의 영혼에
사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만 종석은 아이들을 돈으로 생각해본적 있는냐고 태식에게 반문한다. 아이들 한명 한명을 
경제적 단위로 생각하는 종석은 '돈'과 '경쟁'의 철학에 오염되어가는 듯한 세상을 보여주는 듯 보인다. 그런 종석을
태식은 총으로 쏘지 않고 램프를 이용한 부비트랩과 같은 장치를 이용하여 공장 전체를 폭파하여 불태워버리게 된다.

 '램프'의 불빛은 화려한 네온싸인이 밝히는 도시의 밤에서는 희미하다. 이미 '부'의 가치가 정복한 듯한 세상에서
'사람'의 가치는 램프의 불빛과 같이 희미해 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을 어기고 외면하게 되었을 때 화려한
도시 이면의 추악한 세상을 폭발하게 되는 기폭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듯 보인다.

태식의 트라우마

 소미가 태식의 집에서 밥을 먹고 엄마에게 들키지 않도록 해주어 고마움의 표시로 태식이 사온 국화를
손질하여 꽃병에 꽂아서 준다. 그 모습을 보고 화를 내는 태식의 눈에는 자신이 지키지 못했던 아내에
대한 아픈 기억때문에 차단해온 세상에서 마음을 열고 있었던 소미의 손에 있었던 국화는 그의 트라우마를
자극하게 된다.

 또한 가방을 도둑질하여 잡혀있던 소미는 태식을 보면서 아빠라고 지목하는 장면이 있다. 이 때 태식은
모른척하면서 도망가는데 자신이 누군가를 지키지못할 것이라는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왜곡된 믿음에서
비롯된 듯 하다. 그렇기에 세상과 거리를 두듯 소미에게도 어느정도의 거리를 두려하는 그의 내면을 보여주는
듯 보인다.

['아저씨' 나름 감상평]

 영화를 보고나면 Review를 쓰지 않고는 못견디게 만드는 작품들이 있다. '인셉션'이 그렇고 '아저씨'가 그렇다.
두 영화 모두 철저한 상업성을 가진 영화라 생각된다. 하지만, 그 속에는 감독이 됐던 시나리오 작가가 됐던
배우가 됐던 본인들만의 세계관이 자리잡고 있는 듯 보인다. 나는 그런 영화들을 접할 때 마다 감동하고 또한
즐겁다. 어떠한 스토리가 되었던 그 스토리는 사람들에게 던져지면 그것을 소화하는 것은 받은 사람들의 몫인
듯 보인다. 또한 던진 사람들은 담담히 소화시킨 사람들의 평을 받아들이는 것 역시 그들의 몫이다.

무엇보다 재미가 있고 또한 만든 사람들이나 보여준 사람들의 열정이 느껴져서 좋았다. 초반부 조금은 공감되지
않을지도 모를 내용의 시나리오를 관객을 믿고 그대로 보여주어 지루하지 않아 좋았다. 그리고 닮은 듯 보이지만
또한 다른 리얼 액션을 선보인 점에서 무척 놀라웠다. '본' 시리즈나 '테이큰' 같은 영화에서 보았던 액션과 닮아
있지만 또한 림로완의 손을 물면서 싸우는 처절한 표현은 태식의 분노의 처절함을 보여주는 듯 보여 감성액션이란
말에 크게 동감한다. 이제 세련된 액션 혹은 블럭버스터와 같이 영화를 포장하여 메시지를 전달하는 능력은
재미와 감동, 그리고 생각하는 바를 함께 던져주고 있는 듯 보인다.

 과연 태식은 '오늘'뿐만이 아닌 '내일'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by 왕마담 2010.08.22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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