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관련 회사에 다니면서 사회인 야구단을 창설했다.
거기에 더해 친구 회사에서 관련 물품들을 모두 지원해준 것이다.
호기심 반 그리고 물욕 반에 야구 경험도 없지만 지원했다.

그제 일요일 처음으로 연습을 했다. 제대로 된 캐치볼 한 번 하지 않았던 내게
공이 날라오는 것을 잡는 것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거기에 더해 함께 연습하던
사람들의 뜨거운 열기의 땀은 열정을 전달해주기에 충분했다.

'외야수'가 나의 포지션이다. 이날의 연습은 각 포지션 별 수비 연습이 있었다.
외야수들은 주로 플라이성 타구들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뛰면서
코치가 던져주는 공을 잡는다. 던져준다고는 하지만 배트로 친 공을 가정하고
던지기 때문에 거의 전력질주를 하면서 잡아야 한다.

세가지 코스로 나누어 연습을 했는데
처음에는 오른편에서 앞으로 쭈욱 달려나가다가 표시선을 지나면 좌측으로 비스듬히 꺽어지며
전력질주를 한다. 그러다가 코치가 '볼'이라고 외치면 고개를 돌려 코치가 던지는 공을 보고
잡아내는 것이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거듭할 수록 잘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때 글러브를
낀 왼손으로 공을 잡다보니 자연스레 어깨를 뒤트을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이 나에게는 무리가
됬는지 거의 마지막 공을 잡을 때쯤해서 왼쪽 어깨가 잠시 빠졌었다. 금방 원래 위치로 다시
어깨가 맞춰지기는 했지만 아팠다. 그렇지만, 아무말하지 않았다.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아무말하지 않은 것은
많은 사람들의 즐거워하는 연습에 찬물을 끼얹기가 싫었다.
무엇보다도 내 친구에게 신경쓰이게 하기가 싫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것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비난 받을 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또한, 연습의 관성에 의해 하던데로 계속 했다. 이것은 매너리즘과 비슷한 것 같다.

두 번째 연습은 똑같은 연습인데 이번에는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위치가 바뀌었다.
위치가 바뀌니 이번에는 어깨를 뒤틀지 않고 팔을 옆으로 피기만 하면 타구를
잡을 수 있어 편했다.

마지막 연습은 직선으로 쭈욱 달려가면서 코치가 '볼'을 외치면 고개만 뒤돌아 타구를
잡는 것인데 꽤 어려워 보였다. 나는 왼쪽 어깨가 신경쓰이기는 했지만, 곧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그냥 연습에 합류했다. 두 세번을 자꾸 놓치니 오기가 났다. 이번에는
꼭 잡아야지라는 생각과 함께 앞으로 전력질주를 했다. '볼'이라는 코치의 외침을 듣자마자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볼'의 위치를 파악하고 왼쪽 어깨를 들었다. 그리고는 글러브를
돌리기 위해 어깨를 돌리면서 점프를 뛰는 순간 '볼'은 시야에서 없어지고 나는
어깨를 감싸쥐며 내려올 수 밖에 없었다.

어깨가 완전히 빠져버렸다.
첫 번째는 바로 어깨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실내 연습장을 돌아 나오면서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 어깨를 걱정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나 때문에 신경쓰게 될까봐 함께 연습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했다.
아파서이기도 했지만 그런 이유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연습장을 나오면서
숨쉬기가 조금 벅찰 정도의 고통을 참으면서 더 아픈 것은 마음껏 몸을 쓰지 못하는
마음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연습한 동료들의 걱정의 눈길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
나는 예전 멜깁슨이 주연한 영화에서 보면 빠진 어깨를 벽에 대고 밀어넣는 장면처럼
벽에 대고 밀었다. 그렇지만, 영화처럼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한 명 두 명 더 늘어나는
사람들이 신경쓰여 마음이 더 바빠져 친구에게 어깨를 밀어달라고 말하려는 순간
거짓말처럼 어깨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제서야 다리가 풀리듯 마음이 안정됐다.

안정된 마음이 드는 순간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 역시 함께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전혀 아무 문제없이 잘 받고 잘 치고 잘 던지는데 나만 왜 안되는지
부끄럽고 내 자신을 자책하는 마음이 들었다. 많은 신경을 써주는 친구에게 미안했다.

나 때문에 연습분위기가 다운될 것 같아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그런 조급한 마음과 함께
'하고 싶다'는 욕망이 아픔을 참고 타자 연습까지 했다. 이 밑도 끝도 없는 낙천성은 뭘까?
이걸 과연 낙천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니다. 이건 낙천성이 아니고 미련함일 것이다.
낙천성이란 본인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거기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을 구하는 것일텐데
그 때의 그 마음은 그저 '잘되겠지~', '괜찮겠지~'라는 미련한 마음 뿐이었다.

생각해보면 살면서 많은 순간 '잘되겠지~', '괜찮겠지~' 등의 미련한 마음으로 대했던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 중 대표적인 경우는 바로 영어공부다. 학원만 다니면
'잘되겠지~', '그래도 나는 학원이라도 다니니까~' 등의 마음으로 다 될 줄 알았던
미련함은 결국 지금 Reading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영어공부뿐만
이겠는가? 일상 생활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많은 부분에서 '에이~ 뭐 잘 되겠지~'의
미련한 마음으로 대했던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일할 때도 곧잘 써먹고 있다. 내가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일들에 대해서는 거의 나타난다.

이 미련한 낙천성은 아마도 내 자신을 속이는 마음이다. '잘 되겠지~'라는 마음 한
구석에는 의문이 숨어있다. 뭐 때문에 잘 되겠다고 믿는 것인가? 라는 성찰적 질문이
포함되어 있는데 일상의 귀찮음 혹은 매너리즘에 의해 그 질문들을 애써 무시하고
무작정 행동으로 일관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 생각없는 행동은 위험하다.
일요일 이후 오늘까지 나는 불편한 어깨때문에 그 전에 잘 지켜오던 일상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이것은 아픔과 불편함에 의한 또 하나의 타협이기도 하다.
어깨 수술까지 고려하게 된 그날의 아무 생각없던 행동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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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일상 생활은 조금 불편할 뿐입니다. 
        점차 많이 나아지고 있습니다.
        알이 조금 심하게 배겼다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곧 병원에서 자세히 진찰 받고 적절한 치료를 행할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치 마시옵서소.^^

by 왕마담 2010.08.10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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