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ll, Again

 

베인과 처음으로 대결하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카일의 안내로 베인을 찾아가며 특유의 한 발 빠른 잠입과 기습으로 그 수하들을 하나씩 처리하며 기대감을 바짝 높인다. 그러나 거기까지. 베인과 맞서는 순간에서야 함정인 것을 눈치챈다. 거기에 더해 자신을 웨인으로 상대하는 이와의 싸움은 처음이다. 또한 불과 몇 시간 전에는 미란다 테이트와 동침까지 했다. 배트맨을 꺾기 위한 치밀한 각본이 세워져 있었고 또한 믿던 알프레드까지 떠난 상태에서 정신적인 피곤까지 함께 갖고 있던 웨인이었다. 베인이 이길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힘의 균형이 깨져버렸어도 있는 힘을 다해 싸우는 처절할 수 밖에 없는 모습을 매우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비장한 음악도 없고 시니크하며 비꼬며 뭔가 가르쳐주는 듯한 베인의 대사와 힘겨운 배트맨의 기합소리만 함께 하여 극의 긴장감을 최고로 끌어올린 듯 하다. 그 싸움으로 꺾여버린 후 다시 갇히는 곳은 어렸을 때 그가 떨어져 두려움의 대상을 만난 오래된 우물보다 더한 절망이었다.

 

사실 원작의 줄거리를 몰랐는데(영화를 보기 전까지 일부러 피함) 그렇게 꺾일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에 높아진 기대감만큼의 충격이 찾아왔다. 베인에 의한 절망에는 희망이 있다. 이루지 못할 헛된 희망을 더 없는 고통을 안기는 원흉으로 보기 때문이다. 쓰러져 있는 웨인이 파멸로 치닫는 고담 시를 보면서 또한 탈출할 수 있을 리 없지만 그 입구가 보이는 감옥이 바로 그것.

 

그런데, 배트맨만 떨어지지 않는다. 웨인으로서도 완벽하게 추락한다. 회사를 잃게 되며 자신과 폭스에 의해 만든 것이나 다름없는 응용과학부서 역시 뺏겨버린다. 물론 핵무기까지 그들에게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것들은 모두 웨인의 무기와 좋은 일에 사용하려던 것이다. 하지만 언제든 무기가 될 수 있었던 양면을 갖고 있다. 자신의 지문이 쓰여진 것을 분석하려는 장비를 경찰에게 주면 범죄의 무기로 사용될 수 있다는 대사를 하는 장면이 있다. 그런 상황이 발생된 것이다. 자신 외 고담을 지키는 것은 누구도 믿지 못했던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일들이다.

 

늘 고담의 범죄는 자신이 막아야 한다는 필연적 사명을 갖고 있는 웨인은 배트맨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렇기에 그는 필사적으로 지지 않으려고 한다. 자신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배트맨이 되었으니 다시 그 속으로 떨어지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다크나이트에서 실패해버린 기사직의 이양이 그를 더욱 더 고립의 수렁으로 빠뜨렸을 것이다.

 

추락하는 것은 배트맨과 웨인 뿐만 아니다. 거짓 평화 위에 세워진 고담 역시 그와 함께 혼돈 속으로 또 다시 떨어진다. 자본을 대표하는 주식시장을 손쉽게 우롱하며 갖은 자를 범죄자 취급 하는 베인의 이때 모습은 없는 자를 대표하는 혁명가인 듯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환영하는 것은 수용소를 탈출하는 범죄자들 뿐, 시민은 집 안에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범죄인들은 활개친다.

 

웨인이 레이첼의 죽음에 대한 상심으로 바깥세상 모두를 등졌을 때 알프레드가 웨인에게 잃는 것도 삶의 일부다라는 대사를 던지는데 큰 울림으로 남는다.

 

 

 

 

Rise

 

레이첼을 죽음으로 하비 덴트를 타락으로 잃은 실패를 이유로 스스로 고립되어 있던 브루스 웨인. 그를 다시 세상으로 나가게 하는 것이 흥미를 주는 것이 바로 셀리나 카일이다. 그리고 또한 블레이크와 고든 그들 세 명이 고담은 배트맨이 필요하다고 브루스 웨인을 각성시킨다. 물론 필사적으로 막는 인물도 있었으니 바로 알프레드다. 그는 항상 브루스 웨인으로서 고담에 도움을 주기를 바라지 죽음도 불사해야 하며 늘 상처를 입는 배트맨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가 휴양지 얘기를 할 때 그리고 만류를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할 때 그리고 오열할 때는 어느 슬픈 영화 못지 않게 감성을 자극한다.

 

비긴즈에서와 마찬가지로 절망에서 브루스 웨인을 움직이게 만든 것은 역시 분노였다. 비긴즈에서는 아버지를 살해했던 살인자와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죄책감, 그리고 그것을 방관하게끔 만든 범죄 자체에 대한 분노였다. 고담 시를 유린하고 있는 베인, 죽어서까지 자신 앞에 나타나 고담의 멸망을 선언하는 라스 알굴, 그리고 소중한 것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분노가 서서히 그를 일으켜 세운다.

 

비긴즈에서는 두려움을 극복하여 배트맨으로 태어나는 과정을 그렸다면 오로지 배트맨이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데에 있어 그 완성은 두려움에 대한 인정에 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그를 완전히 일으켜 세우고 결국 지하 감옥을 탈출할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리고는 베인과 두 번째의 싸움을 하게 된다. 역시나 힘에서는 밀리는 모습을 보이나 첫 번째 싸움처럼 힘으로 계속 맞부딪히려는 모습이 차츰 없어진다. 아마 처음의 싸움은 자신이 죽어도 상관없다는 식의 막무가내 싸움이었다면 이번에는 질 수도 있기에 힘과 힘보다는 특유의 약점을 치고 기술로 싸우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죽음을 깨닫고부터는 웨인은 배트맨으로서 완전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 동안 고담이 다시 예전과 같이 범죄와 사회악에 물들까 불안해하여 기를 쓰고 막으려 했던 그 두려움들을 완전히 받아들이게 된다. 또 물들 수도 있고 자신은 또 질 수도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게 된다. 본격적으로 싸우기 전 블레이크에게 혹시 모르니 최대한 다리 건너편으로 많은 사람들을 탈출시키라는 말을 하는 모습에서 그런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배트맨의 누명은 베인이 벗겨준다. 그가 고든의 연설문을 낭독하는 장면이 있다. 수용소를 박살내기 위한 명분으로 고담의 평화가 하비 덴트라는 거짓된 영웅을 내세워 세워진 것을 밝히는 장면이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배트맨은 범죄자에서 희망으로 거듭난다. 배트맨의 상징적인 표시를 보자 고든과 함께 싸우기를 거부했던 부 경찰청장인 폴리가 전면전에서 앞장을 서면서 싸움을 독려한다. 결국 고담 시의 진정한 평화를 찾기 위한 싸움의 명분은 베인이 준 것이다. 그 마지막 전투는 대낮에 펼쳐진다. 어떤 기습이나 암습을 하지 않고 고담시의 경찰과 함께 전면전으로 싸운다. 웨인의 자아가 배트맨으로서 고담 시를 지키며, 고담 시 역시 거짓된 평화가 아닌 누구의 도움도 아닌 본인 자신들의 피와 힘으로 다시 일으키는 모습을 함께 보여준다.

 

이번에도 비긴즈와 비슷하게 배트맨이 처음 나오는 순간은 영화 시작 후 거의 40여분이 흐른 후다. 나타나자 마자 반가워할 새도 없이 그는 고담 시의 모든 경찰로부터 추격을 받는 고립된 모습에 피로함이 보여진다. 웨인과 배트맨 사이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끊임없이 던져진다. 하지만, 자신의 목숨과 바꾸어 도시를 구한 배트맨을 위한 시민들은 동상을 세워 그의 업적을 기념한다. 더 이상 가면 뒤 어떤 사람으로서가 아닌 배트맨 그 자체로 고담 시민에게 기억된다.

 

 

 

정말 끝인가요?

 

다크나이트 라이즈가 전작인 다크나이트와 비교될 수밖에 없는 입장이듯 베인 역시 전작의 조커와 대비될 수밖에 없다. 교묘함과 인간의 본성을 건드리고 본인이 말하듯 차를 쫓는 개와 같은 이가 조커(즉 계획 없이 몸 가는 데로 하는 자)이다. 그러나 베인은 힘과 철두철미한 계획 하에 움직인다. 거기에다가 과거사가 있다는 점만으로도 악당이기는 하나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정체불명의 조커와는 완전히 다르다. 또한 두 영화의 첫 장면의 액션신은 그런 점을 잘 반영해준다. 조커가 은행을 터는 교묘함을 보여주었다면 힘의 상징을 보여주듯 비행기 한 대를 너덜너덜하게 만들어 버는 점을 보면 두 악당 캐릭터의 성격을 잘 나타내준다.

 

탈리아가 있음으로 시나리오가 완성됐지만, 그녀로 인해 베인의 카리스마가 그 빛을 잃어버리게 되는 점은 무척이나 아쉽고 안타깝다.

 

믿음의 이야기가 배경에 깔려있다. 웨인을 움직여 배트맨이 나오도록 하는 동기가 되는 것은 블레이크와 고든의 믿음에 있다. 또한, 셀리나 카일이 혼자 고담을 탈출하지 않고 다시 돌아와 배트맨을 돕는 원인 역시 웨인의 믿음이다. 그렇듯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자신의 신념을 믿으며 움직인다. 악당인 베인과 탈리아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올바른 신념의 믿음이 고담 전체를 움직이는 결과를 나타내며 진정한 평화가 깃들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다.

 

다크나이트를 처음 보았을 때의 감동으로 몇 년을 기다린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다. ‘다크나이트를 하도 재미있게 보아서인지 기대를 많이 하고 봤는데도 기대 이상의 마지막 편이었다. 비긴즈와 다크나이트 두 전편을 제대로 마무리 지은 느낌이 든다. 한스 짐머의 각 캐릭터 별 메인 중 베인의 테마(Gotham's Reckoning)는 최고이다.

 

 

 

 

by 왕마담 2012.09.19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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