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다수의 스포가 포함된 리뷰입니다.

저도 감상 전 스포를 증오하는 바, 아직 보지 못하신 분 중

스포를 싫어하시는 분들은 읽지 않는 게 마음 건강에 좋을 것입니다.

 

 

 

 

1. 간만 연극 나들이는 '수현재컴퍼니'

 

오래 간만에 연극을 관람했습니다. TV에서도 방영했던 적이 있던 <경숙이, 경숙아버지>였어요. 연극 무대는 사실 몇 년 전에 봤던 <라이어 라이어> 이후 처음입니다. 대학로 근방에 있는 극장들이 오래된 곳이 많은 수현재씨어터에 들어서자 깔끔한 공연장이 마음에 들었어요.

 

수현재씨어터는 익숙한 배우 조재현씨가 대표로 있는 수현재컴퍼니의 극장 이름입니다. 창립 1주년을 맞아 기념작으로 무대에 올렸어요. 극단 골목길의 예술감독으로 있는 박근형님이 연출을 맡았어요. 2006(초연)부터 지금까지 했으니 이 작품에 무한한 애정을 쏟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2007년에는 대표였던 조재현씨가 직접 주인공인 경숙아버지 역할을 맡았어요. 또한, 2009 KBS 4부작 드라마로 방영됐습니다. 1월말이었으니 아마도 구정 연휴에 했던 듯 하네요. 당시 경숙아버지 역할은 정보석씨가 꺽꺽이 아저씨로는 지금은 뮤지컬 스타가 된 정성화씨가 출연했다고 하니 기회가 되면 꼭 보고 싶습니다.

 

 

[TV 포스터]

 

 

 

2. 첫인상, 깔끔 그리고 애정

 

시작을 정시에 했어요. 먼저 봤던 <라이어 라이어>나 소극장 뮤지컬에서는 관객들에게 주의 사항을 친근하게 말합니다. 당연히 관객들과 소통을 위한 너스레가 좀 있을 줄 알았습니다만, 곧바로 작품 속으로 들어 갔습니다. 예상치 못해서 인지 무척 깔끔한 느낌이었어요. 인상 깊었습니다.

 

경숙이(주인영)씨의 독백으로 시작하죠. 주인영씨 역시 초연부터 지금까지 경숙이 역을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단번에 몰입하게 되도록 만드는 연기 속에서 그 내공의 만만치 않음을 느꼈어요. 곧 경숙아베(김영필씨)와 경숙어메(권지숙씨)의 앙상블 연기가 시작되면서 시작한지 5분도 안되어 관객을 집중시킵니다.

 

이제 보니 주인영씨 외에 주연배우 모두가 초연부터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네요. 프로그램 북에 나온 몇몇의 인터뷰를 보면 제작이나 연출가 외 배우 역시 작품에 쏟는 애정이 깊다는 걸 느낍니다. 연극을 봤기에 저 역시 그런 애정이 생긴 걸 느끼기에 알 수 있는 듯 해요.

 

 

 

 

3. 이런 아버지, 어때요?

 

주인공인 경숙아베의 캐릭터는 낯설었습니다. 영화 <국제시장>의 슈퍼맨같은 아버지나 <7번방의 선물>에서 보여진 자식 무한 사랑을 쏟는 아버지, TV 예능프로그램인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가족에게 헌신하는 아버지 등, 요즘 바라는 아버지 상에 반하기 때문입니다.

 

육이오 전쟁을 앞두고 본인만 피난을 떠나고, 형님으로 모신 사람이 부인에게 관심이 있는 걸 보고 돈을 얻어내 떠나고, 부인이 있는 집에 애인을 데려와 같이 살고, 다시 떠나 줄곧 돌아오지 않다가 경숙이 졸업때 홀연히 나타나는 등 시종일관 자신이 원하는 대로만 살아가는 경숙아베의 삶에 놀랐죠.

 

내심 '곧 경숙아베의 캐릭터가 극적으로 변하는 뭔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까?' 기대했습니다. 지금까지 보아온 작품에서는 대개 그런 반전을 통해 가족의 화합을 이끌어냈거든요. 연극의 주요 스토리가 50%이상 지나갈 때까지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자 포기했습니다. 그러자 뭐랄까 찡한 마음이 들었어요.

 

 

[연극 하이라이트]

 

 

4. 가족은 가족다워야 한다고?, '다워야'의 의미

 

이 작품 속에 들어 있는 가족의 의미때문이었을 듯 합니다. 아직도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면 바로 행복할 거라 말하는 이들이 있어요. 저는 그리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편안하고 안락할 수 있는 가정도 있지만 어느 곳보다 잔인하고 외롭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죠.

 

어릴 때 생긴 트라우마는 가족들 때문에 생기기도 합니다. 특히 부모님이죠. 또한 아비와 어미의 입장에서 자식처럼 이쁘지만 귀찮을 수도 있는 애증의 존재는 없을 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것들은 모두 사회적인 통속인 부모던 자식이던 '다워야 한다'는 도덕이 발생시킨 스트레스에 기인하지는 않을까요?

 

<경숙이, 경숙아버지> 속의 경숙아베는 얽매이지 않습니다. 그런 지아버지와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도 가정을 꾸려 나가는 경숙어메와 경숙이는 생각보다 건강하게 보여졌어요. 경숙아베가 데려온 애인이 경숙어메와 한 가족이 되어가는 모습을 볼 때는 영화 <가족의 탄생>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5. 재미와 감동 모두를 잡는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

 

, 어려운 깊은 속 뜻을 생각해보지 않아도 연극적 재미는 충분히 살아 있어요. 경숙아베는 말할 것도 없고, 작품 흐름을 좌지우지 하는 경숙이, 경숙어메에게 순정을 바치는 꺽꺽이 아저씨, 경숙아베 애인으로 표독하지만 정이 있는 자야 등 톡톡 튀는 캐릭터들의 개성을 살려주는 연기는 무대 속에 제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했습니다.

 

작품 마지막 장면인 경숙의 대학교 졸업식, 소식이 뚝 끊어져 있던 아버지가 나타나죠. 발에 맞는지 모르겠지만 졸업 선물이라며 구두 하나를 주고 또 떠납니다. 경숙이가 물어요. '아베여 어데 갑니꺼, 어델 그리 갑니꺼' 경숙아베가 말하죠. '경숙아! 인생은 알 수 없이 모진기다. 그걸 알아야 니가 어메가 되고 부모가 되는기다'라고.

 

그 장면에서 눈물이 어찌나 나던지 모르겠습니다. 겪어본 적 없는 이야기지만, 그 속에 담긴 정서를 느낄 수 있다는 의미인 듯 해요. 이야기가 주는 힘을 고스란히 느꼈습니다. 연극을 보고 나오는 길, 경숙아베는 아마 위로를 던져 주는 게 아닐까 싶었어요. '그냥 니 모습 그대로 살아라' 라는.

 

by 왕마담 2015.04.17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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