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1. 실상을 지배하는 허상의 서사

 

특별한 순간이 아닌 그저 일상에서도 타인에 대한 시선을 의식해 스스로 옭아맸던 적이 많습니다. 본인이 만든 허상에 사로 잡히는 경우지요. 회사에 지각을 했는데 평소보다 말씀이 별로 없으신 팀장님을 보고 '내가 늦게 와서 기분이 안 좋으신가 보다' 싶어 움츠렸는데 알고 보니 집안에 우환이 있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아닌 소설을 쓰면서 허상을 만들어 내죠. '실제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나타나 보이거나 실제와 다른 것으로 드러나 보이는 모습'을 허상이라고 합니다. 그 반대는 '실제 모양이나 상태'를 나타내는 실상이 되겠죠. <레베카>는 허상이 실상을 지배하는 서스펜스의 서사로 다가옵니다.

 

작품이 갖고 있는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에 매료됐던 뮤지컬을 재작년에 이어 또 관람했어요. 차지연씨 팬으로서 그녀의 댄버스 부인을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같은 캐릭터를 맡았던 옥주현씨는 동성애적인 집착으로 보였는데, 어머니 같은 보호자로서의 애착에 더 가까운 해석을 한 듯 했어요.

 

 

 

[차지연 배우의 영원한 생명]

 

 

2. 레베카의 완성, 댄버스 부인

 

말 나온 김에 조연인 듯 주연, 주연인 듯 조연인 댄버스 부인을 먼저 얘기하지 않을 수 없네요. 레베카가 어릴 때부터 돌보아 온 보모 이상의 캐릭터로서 그녀를 위해 존재합니다. 맨덜리 저택 곳곳에 있는 그녀의 흔적을 소중히 간직하며 새로운 안주인 '나'를 내쫓으려 하죠.

 

그녀의 아리아는 2시간 넘는 런닝 타임 동안 총 4곡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나마 '레베카'라 넘버는 Part 1 2로 나뉘어 있고, 다른 한 곡은 주인공인 ''와 함께 부르는 '미세스 드윈터는 나야'라는 곡이니 엄격하게 말하면 2곡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영원한 생명' '레베카'는 작품을 대표하는 프로덕션 넘버로서 모든 캐릭터를 압도하고 분위기를 지배합니다. 집사지만 주인공 막심 드 윈터(엄기준씨) ''(김보경씨)보다 큰 영향력과 카리스마를 보여주며 레베카와 맨덜리에 애착이 강한 스토커 캐릭터를 보여줍니다.

 

2016년 댄버스 부인에는 자우림의 리드보컬 김윤아씨가 캐스팅 됐었는데, 아쉽게도 후두염에 걸려 성대 이상 때문에 하차했어요. 대신 <보이스 오브 코리아> 시즌1에 출연했던 장은아씨가 합류했습니다. 신영숙씨는 2013년 초연과 작년 그리고 올해까지 연속으로 캐스팅되는 저력을 보여줍니다.

 

 

[덴버스 부인의 차지연배우,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3. 우려 속에서 만들어진 뮤지컬

 

요즘 뮤지컬 흐름은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 사이를 창작 작품 혹은 런던 아닌 유럽과 다른 대륙 작품들이 비집고 들어오죠. 오스트리아 삼총사 <모차르트>, <엘리자벳>, <레베카>와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아마데우스> 거기에 더해 일본의 <데스노트>, <오케피> 등이 우리나라 무대에서 공연되고 있습니다.

 

런던, 뉴욕 작품들과의 차이는 쇼(show)적인 부분보다 이야기에 집중한다는 점이죠. <레베카>처럼 음악, 스토리와 함께 뮤지컬 3대 요소인 춤이 없다시피 한 작품도 드물 거 같아요. 가면 무도회에 초대받은 ''의 친구(실제 전 고용인)인 반 호퍼 부인(한지연씨)의 유쾌한 'I'm an American woman' 정도 입니다.

 

극작가 미하엘 쿤체와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의 제안에 원작자 대프니 듀 모리에(Daphne Du Maurier)의 아들은 판권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어요. 제작 제안 당시 1970년대였으니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1971)>, <그리스(1972)>, <코러스 라인(1975)> 등 안무가 중요한 작품들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1940년 히치콕 감독에게 유일한 오스카 상까지 안긴 영화와도 비교됐겠죠. 많은 게 가능한 영화가 아닌 보여줄 게 많아야 될 뮤지컬 요소들로 억지로 만들어 원작이 망가지는 걸 피하고자 했을 거 같습니다. 하지만, 쿤체와 르베이가 함께 만든 <엘리자벳(1992)>을 통해 가능성을 인정받아 만들게 되죠.

 

 

 

[옥주현씨와 김보경씨가 부르는 <레베카: 긴 버전>]

 

 

4. 분위기에 한 몫 톡톡히 하는 특수효과

 

이니셜 'R'이 위쪽으로 커다랗게 쓰여지고 가려진 무대는 인상적입니다. 위압감을 주죠. 원목으로 만들어진 수납장 혹은 장식장을 표현하는 듯 보이는 막은 고딕스럽습니다. 파도소리와 함께 장의 문이 닫히는 리얼한 영상을 보여주며 오릅니다. 이렇듯 뮤지컬 <레베카>는 춤 대신 영상 효과를 지능적으로 쓰고 있어요.

 

안중근 의사가 주인공인 뮤지컬 <영웅>에서도 눈발이 흩날리는 만주벌판을 달리는 열차 장면은 압도적이었죠. 몇 년 전에 봤던 <미스 사이공>에서 미군이 베트남을 탈출하는 헬기(초창기에는 실물을 썼다고 합니다) 영상 역시 또렷이 기억납니다. <레 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이 마리우스를 데리고 하수구로 도망가는 장면도 유명하죠.

 

막심 드 윈터가 숨기고픈 진실을 갖고 있는 보트 보관소 마을의 파도 치는 모습은 바다 속으로 이끕니다. 맨덜리 저택에는 큰 창문이 있는데 분위기에 따라 앙상한 나뭇가지나 빗방울 등으로 스토리의 분위기를 잘 나타내죠. 불타는 맨덜리는 투명한 막 위로 활활 타오는 영상의 불과 실제 불이 합쳐져 실제 같이 불붙은 모습과 혼란스러움을 야기합니다.

 

 

[맨덜리 저택,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5. 또 다른 주연, 맨덜리

 

결혼한 ''와 막심이 맨덜리에 도착하는 날 비오는 장면은 창문으로 빗물이 떨어지는 영상 그리고 문 바깥으로는 실제 물이 쏟아져 리얼합니다. 바다를 상징하는 파란색은 차갑고 검붉은 바로크적인 장식들과 회색과 보라색 배경은 음침하고 음모가 꿈틀거릴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네요.

 

웅장한 맨덜리 속에서 깍듯하지만 깔보는 듯한 댄버스 부인에게 주눅 든 ''를 보면서 관객임에도 조마조마합니다. 아침의 방에서 레베카가 키우던 난초를 돌보며 부르는 댄버스 부인의 첫 아리아 <영원한 생명>은 그녀에 대한 집착을 광기스럽게 표현하죠. 하이라이트 이외에는 중저음으로 어두운 분위기를 잘 나타냅니다.

 

그녀에 대한 배신감과 죄책감 그리고 피해의식으로 괴로워하는 막심 드 윈터레베카와 비교당하며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모든 곳에 깃들어 있는 그녀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리는 '', 추앙하고 떠받치는 레베카를 밀어내려는 그들과 갈등 빗는 댄버스 부인, 모두 그림자에 시달리는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죠.

 

 

 

[엄기준씨와 오소연씨가 부르는 <하루 또 하루>]

 

 

6. 절대 놓칠 수 없는 명장면

 

어찌 보면 맨덜리 저택 자체가 레베카처럼 보여요. 영화 <레베카>를 보면 곳곳에 보이는 'R'의 이니셜이 ''를 괴롭힙니다. 막심이 돌아가길 싫어한 이유 역시 레베카에 대한 추억과 기억을 떠올리기 싫었기 때문이겠죠. 아리아 '하루 또 하루' ''와 막심이 더 행복해지기 위해 서로 노력하리라는 걸 보여주는 아리아입니다.

 

댄버스 부인의 아리아인 '레베카' 1막에서 한 번(레베카1) 그리고 2막 시작하자마자 ''와 함께 부르는 버젼(레베카: 긴 버전) 두 가지가 있어요. '영원한 생명'이 그녀에 대한 집착을 나타내며 ''에게 경고하는 듯 보였다면, ‘레베카는 맹목적인 사랑의 광기가 터집니다.

 

'레베카: 긴 버젼'의 무대 연출은 절대 놓칠 수 없는 장면이죠. 내부 방안에서 절벽 외부의 초점으로 바뀌는 무대와 바닷바람이 그들을 덮치며 부르는 아리아는 언제 봐도 명장면입니다. <오페라의 유령>에서 팬텀이 배를 타고 지하동굴을 헤쳐 나가는 모습과 <미스 사이공>에서 서로 다른 공간에 있는 주인공들의 초점을 반영한 철조망 신을 합쳐놓은 거 같습니다.

 

 

[무너진 맨덜리,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7. 음악, 기본에 충실한 작품

 

주인공 이름이 왜 ''일까 생각해봤습니다. 사랑하는 막심의 자아가 붕괴되는 걸 보면서 ''는 레베카의 그림자들을 걷어내기로 결심하죠. 위협적인 댄버스 부인의 협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세스 드 윈터는 나야'를 외치며 흔적들을 지워갑니다. 주요 아리아에서 이 복선을 충실히 들려주어요.

 

'레베카: 긴버전'의 마지막 파트는 이중창으로 이루어지지만 ''의 목소리는 댄버스 부인의 힘에 눌리는 화음을 들려줍니다. 점차 성장하여 자신의 신념을 믿고 행하는 ''가 부르는 '미세스 드 윈터는 나야'의 아리아에서는 반대의 상황이 벌어집니다. 힘 빠진 댄버스 부인을 볼 수 있어요.

 

막심이 부르는 '칼날 같은 그 미소'는 스토리상 중요합니다. 레베카에 대한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이며 음모를 밝히는 단초가 되어 허상을 걷어내는 역할이죠. 그녀에게 배신당했다고 생각했을 댄버스 부인은 맨덜리를 불태우며 동일시했던 레베카를 지우듯 본인도 불길 속으로 던져버리는 마지막 넘버 '불타는 맨덜리'입니다.

 

 

[김보경씨와 출연자 합창으로 부르는 에필로그 <어젯밤 속 맨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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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1. 네이버캐스트의 뮤지컬 레베카

-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91&contents_id=102741

2. 프로그램북과 레베카 홈페이지

 - http://www.musicalrebecca.co.kr/

3. 기존에 썼던 리뷰

- http://wangnet.tistory.com/entry/레베카Rebecca

 

 

by 왕마담 2016.02.29 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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