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심포니의 <지젤> Intro 연주가 시작되자 이미 느낌이 좋았다. 템포가 음원이나 영상으로 자주 들었던 익숙한 느낌 그대로였다. 간혹 다른 공연에서는 오케스트라 연주가 느려 공연 전반적으로 늘어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같은 작품을 몇 번 봤던지라 막이 오르자 익숙한 시골 마을이 보인다. 왼쪽에는 지젤이 사는 집이 나오고 오른쪽은 집 같은 창고가 있다. 이번 국립발레단 <지젤>은 백그라운드에 다리를 놓은 게 독특했다. 스테이지보다 약간 높이 설치되어 앞에 무용수가 있어도 출연자가 나오는 게 보였다. 그 무대연출 하나로 평면하지 않고 입체적인 느낌! 귀족들 출연할 때 멀리서 개 2마리가 함께 나올 때 무용수만큼 시선강탈.

 

곧 지젤 (김리회씨)의 문 앞에서 두드릴까 망설이는 힐라리온 (정영재씨), 내심 '어서 두드리라고... ' 응원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열 듯 그 문을 여는 건 로이스(알브레히트가 지젤에게 속인 이름)/알브레히트 (허서명씨). 이 둘의 등장만으로도 무대 위로 꿀이 뚝뚝 떨어진다.

 

 

 

[국립발레단 프레스콜 사진, 출처:국립발레단 페이스북]

 

 

 

1막에 나오는 지젤의 테마 음악은 그녀의 성격을 나타내는 듯 하다. 심장이 약해 조금 불안하지만 춤추는 걸 좋아하는 낙천적인 모습, 그대로이다. 발레 음악하면 차이콥스키가 먼저 떠오르지만, 아돌프 아당이 만든 지젤 음악 역시 좋다. 바그너로 대표되는 유도동기(라이트모티프)는 이미 아당을 비롯 동시대 작곡가인 베를리오즈 등이 쓰고 있었다.

 

알콩달콩 케미가 돋보이는 1막은 이들 사랑의 설렘을 다루어 춤과 마찬가지로 음악 역시 내내 흥겹다. 게다가 추수가 끝난 마을처럼 축제가 어우러져 마치 궁정의 파티만큼 신난다. 특히 좋아하는 음악 'Marche Des Vignerons'와 'Galop General' 이 연이어 나오고, '농부 커플', '6인무', '군무'가 함께할 때는 어깨춤이 들썩였다. 주역 무용수라는 꽃과 군무들의 나무가 만나 숲을 이루어내는 느낌이랄까? 역시 국립발레단 군무였다.

 

<안나 카레니나>에서 주역으로 김리회씨를 처음 봤었는데, 그때의 긴장된 모습은 없었다. 생기발랄한 모습에서 알브레히트의 출신을 알게 되며 절망에 빠지는 매드신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도록 이끌었다. 상심을 담은 춤과 연기는 무대 위 누구보다도 압도했다. 리회씨 모습에 잘 맞는 캐릭터를 입었다. 주고자 하는 감정이 찡하게 다가와 매드씬에서 코끝이 울렸다.

 

 

 

[Adolphe Adam Giselle Act I Galop general]

 

 

 

전에도 <지젤>을 몇 번 보기는 했지만, 미르타 (정은영씨) 역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카리스마는 있어 보이지만 춤은 그리 많이 추지 않았기 때문일까. 정은영씨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 라일락 요정으로 출연했을 때 기억나 기품있을 거라고 짐작했지만 기대 이상이었다. 2막 시작하자 어스름한 배경에 푸르스름한 달빛 조명 아래에서 보여준 춤과 연속된 우아한 턴 점프에서 카리스마 이상을 느꼈다.

 

거기에 윌리가 함께 하자 환상적이었다. '아~ 이래서 낭만발레의 정수라고 하는 건가?'. 특수효과 없이 춤만으로. 특히 포인트해서 고전발레와는 조금 달리 종아리마저 거의 쓰지 않고 발목만으로 움직여 표현해내는 귀신의 움직임은 그들의 연습량이 얼마나 될지 상상케했다. 그리고 발레블랑의 효시라는 윌리의 군무가 시작됐다.

 

아라베스크와 비슷한 포즈로 4명씩 양 옆에서 만날 듯 서로 다가서다가 멈추어 다시 4명씩 더해지며 춘다. 3번을 반복하고 24명의 윌리와 2명의 대표 윌리가 서로 교차해갈 때 뭔지 모를 쾌감과 감명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좋아하는 음악에 군부대의 사열처럼 칼같이 맞춘 오와 열의 합과 춤.

 

 

 

[Giselle Willis and Albrecht(Manuel Legris) last dance, 브리제]

 

 

 

윌리의 복수에 걸려든 힐라리온의 춤이 터질 때 나오는 음악 'Entree d'Hilarion' 역시 좋다. 뒤이어 나올 알브레히트의 독무에서도 부분 차용해서 사용하는 테마가 심장을 고동치게 한다. 윌리에 쫓기는 알브레히트 귀족스러운데 측은지심까지 드는 모습을 보여주는 허서명씨, 그의 가뿐하고 깔끔한 탄력적인 점프가 매력적이다.

 

이미 윌리가 힐라이온에게 강제한 음악과 비슷한 분위기가 점점 더 고조되는 와중 '앙트르샤 시스'를 하는 데 춤추다가 정말 죽을 듯 여겨졌다. 몇 번인지 세어보지 못했지만 마지막에 힘이 부친건지 헝클어진 점프에도 온 힘을 다해 추는 모습, 계산된 연기였으면... 와~! 아쉬운 건 앙트르샤 전 미르타에게 '제발 살려달라'는 애원으로 뛰어오는 '브리제'를 안했다.

 

국립발레단은 파리오페라발레단 버전인데 해당 안무가 없는 걸까? 4월 같은 작품을 올리는 유니버설발레단은 마린스키 발레단 버전이라고 한다. 그때는 추지 않을까 싶다. 올해 초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 모두 <지젤>을 첫 정기공연으로 올렸다는 소식은 흥미로웠다. 서로 2~3주의 짧은 기간을 사이로 작품이 올라가 어찌되었든 결국 비교 당하는 건 뻔한 일이기에.

 

안무가에 따른 버전이나 무대 연출은 차이가 있겠지만, 결국 무용수들이 어떤 감동을 주는냐에 따라 개인적인 선호가 갈릴 듯 하다. 먼저 막을 올린 국립발레단의 <지젤>은 마치 선전포고같았다. 뒤이을 유니버설발레단에게 '따라올테면 따라와봐'라는 느낌이다. 한 가지 분명한 건 2막보다 1막을 좋아했던 내게 이번 공연은 막의 구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스칼라 극장에서 공연된 <지젤>, Svetlana Zakharova and Roberto Bolle 출연]

 

 

 

음악 : 아돌프 아당 Adolphe Adam
원안무 : 장 코랄리 Jean Coralli, 쥘 페로 Jules Perrot
재안무 : 파트리스 바르 Patrice Bart
안무지도 : 비비안 데쿠튀르 Viviane Descoutures
무대 및 의상 : 루이사 스피나텔리 Luisa Spinatelli
조명 : 매리언 휼렛 Marion Hewlett
지휘 : 주디스 얀 Judith Yan
연주 :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Korean Symphony Orchestra
예술감독 : 강수진 Kang Sue Jin
 
지젤 : 김리회
알브레히트 : 허서명
미르타 : 정은영
힐라리온 : 정영재
패전트파드되 : 박예은B 하지석
두 윌리 : 박나리 박예은B 

 

 

[커튼콜 사진들]

 

 

[국립발레단 지젤 포스터들]

by 왕마담 2018.03.30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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