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많이 들어보았던 말러 교향곡 연주회를 관람했습니다. 아니 감상했다고 하는 게 맞겠지요. 정명훈 예술감독이 훌쩍 떠난 서울시향을 이스라엘 출신 엘리아후 인발이 지휘했습니다. 요 근래 KBS교향악단의 연주회를 잇달아 감상했었는데, 그들은 어떤 맛일지 궁금했습니다.

 

후기 낭만주의 20세기 음악 사이에서 자신의 색을 뚜렷하게 나타냈던 작곡가 말러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지만, 음악은 손쉽게 듣지 못했어요. 거리감이 느껴졌습니다. 익숙한 바로크나 고전/낭만주의가 아닌 20세기 클래식 음악을 다룬 <나머지는 소음이다>를 어렵게 읽었지만, 그에 대한 호기심이 터졌어요.

 

이 두 가지 관심이 3 18일 서울시향의 말러 교향곡 7번 연주를 맨 앞자리에서 관람하도록 부추겼습니다. 뮤지컬이나 오페라를 보러 갈 때도 마찬가지이지만, 클래식 음악 공연 감상 전에 예습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하려고 해요. 그래야 더 재미있으니까요. 핵심은 음악을 많이 들어보는 겁니다.

 

 

꽤 익숙해졌다고 생각한 모차르트나 베토벤 혹은 차이코프스키 등의 음악과는 달리 쉽게 친해지지 않더군요. 클래식 음반 전문 매장이며 강의도 하는 풍월당에서 때마침 말러 교향곡 7번 강의가 있어 들었습니다. 아무 정보도 없으면 어렵게 느껴졌을 이유가 충분하더군요.

 

 

 

[Claudio Abbado와 Lucerne Festival Orchestra의 말러 교향곡 7번]

 

 

 

 

말러의 삶과 7번 교향곡이 탄생하게 된 요인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니 그제야 친근해졌습니다. 하지만, 유튜브에서 들을 때 신나는 5악장 외 1~4악장은 집중이 쉽지 않았어요. 그의 중기 시대에 작곡된 이 곡은 특이하게 Nachtmusik(밤의 음악)이라 부르는 2, 4악장부터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이듬해 1, 3, 5악장이 작곡되죠.

 

당시 말러는 빈 궁정 오페라 극장의 지휘자로 재직 중이었습니다. 취임하자마자 청소부터 극장의 음향 체크까지 일일이 신경쓸 정도로 워커홀릭이었지요. 그가 작곡에만 전념한 시기는 풍족한 월급으로 구입한 뵈터제 호수 근방에 있는 알프스 마이어니히 마을의 별장에서 보내는 여름 휴가였습니다.

 

규칙적으로 일어나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뒷산에 있는 또 하나의 작은 오두막에서 보냈다고 합니다. 이후 산책과 수영 등으로 자신의 건강도 챙기며 호젓한 휴가를 보낸 듯 해요. 음악적 영감을 위해 가끔 스위스나 주변 나라로 여행을 떠나며 오롯이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 들었지요.

 

7번 교향곡은 1904 6번 교향곡의 마무리가 잘 되지 않아 떠난 여행에서 받은 영감을 따랐다고 해요. 2, 4번을 먼저 만들어 '밤의 음악'이라 칭하고 비극적인 교향곡으로 유명한 6번 또한 마무리짓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혹은 말러의 의도였을까요? 6번과 7번 교향곡은 서로 맞닿아 있습니다.

 

교향곡 6번은 불길한 운명에 저항하지만 굴복하고 마는 비참한 분위기를 담고 있어요. 마지막 악장에서 어둠 속 깊숙이 내동댕이쳐 지듯 마무리되죠. 운명의 타격이라 칭하는 큰 북의 울림이 세 번 있습니다. 여러 해설을 보면 운명에 저항하는 이에게 내려지는 치명타라는 표현을 써요.

 

 

 

[구스타프 말러]

 

 

 

말러 교향곡 7번의 시작은 여기부터입니다. 그 칠흙 같은 어둠을 간직한 밤부터 시작하는 거죠. 6번을 마무리할 때 즈음 이미 약간의 빛마저 모두 삼켜버린 듯 깜깜하지만, 그래도 살아야 하는 이의 운명을 얘기하는 듯 합니다. 그래서 좋아졌어요. 음악보다 먼저 그의 세계관에 이끌렸습니다.

 

그런 적이 없었는데, 이 사람의 교향곡 전체를 한 번에 구입했어요.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와 베를린 필하모니가 녹음한 1번부터 완성되지 않은 10번 교향곡까지. 받자마자 먼저 들어본 건 역시 교향곡 7번이었습니다. 어라? 말로만 듣고 예상보다 감미롭게 들렸어요.

 

독일어로 '천천히'를 뜻하는 'Langsam'의 빠르기지만, 긴장감 넘치는 1악장 첫 파트의 주인공은 테너 호른이라는 금관악기입니다. 플루트, 클라리넷, 베이스클라리넷, 파고트(바순), 콘트라파고트의 음산한 관악기 화음을 지휘하는 서주로 시작하죠. 잠시 숨 고른 후 날카로우며 높은 주인공의 비명소리 같은 관현악기의 무거운 울림이 함께 합니다.

 

이미 2개 악장을 마무리 지어놓은 1905년에는 7번을 완성할 예정이었죠. 어쩐 일인지 여행을 통해서도 도저히 집중이 안된 그 해 여름 휴가는 허송세월 했다고 포기합니다. 호수를 건너기 위해 올라탄 보트의 노를 젓자마자 1악장의 무겁고 깊은 독특한 리듬을 발견하죠. 그 때부터 일사천리 한 달도 안되어 1, 3, 5 악장을 모두 완성해버립니다.

 

들을수록 매료되는 이 리듬을 눈 앞에서 듣자 깊이 몰입됐어요. 맨 앞자리에서 들으니 역시나 현악기가 가깝게 들리며 관악기와 타악기는 멀리 느껴집니다. 해설을 보며 들으니 깊은 밤의 긴장과 고요한 침묵을 점차 뚫고 나오는 형상의 이미지가 그려지지만, 곧 광란스러운 엔딩으로 향하죠.

 

 

 

[2악장의 관악 합주 부분 (악보보고 때려 맞춘 거라 정확치 않음!)]

 

 

 

 

렘브란트의 <야간 순찰>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했다는 첫 번째 '밤의 음악' 2악장은 다양한 밤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호른의 외로운 울림으로 시작하여 목관 악기들 각각이 모여 정점에 이르는 합주의 짧은 순간 짜릿함이 몰려들죠. 춤곡이 연상되는 경쾌함이 달빛에 물든 호수가 반겨주는 듯 합니다.

 

음악을 뚫고 자꾸 무슨 소리가 들려요. 지휘자 인발이 연주자들에게 뭐라고 합니다. 아마 템포에 대한 얘기 같아요. 지휘할 때 찰나이지만, 저렇게 말해도 괜찮은 건가요? 단 한 순간도 뭔가 놓치지 않으려는 짧은 기합 같기도 했어요. 순간 현재 서울시향의 한계는 아닐까 싶은 아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오래도록 뜻을 맞춰온 지휘자가 아니었기에 짧더라도 저렇게 뜻을 말로 해야 알아 들을 수밖에 없었던 건 아닌가 싶었죠. 어두운 암흑기를 헤쳐나가고 있는 서울시향에게 참 잘 어울리는 교향곡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주는 '죽음의 춤'이라 불리는 악장으로 넘어가고 있었어요.

 

3악장을 중심으로 1, 2 4, 5악장이 대칭을 이루는 데칼코마니스러운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앞뒤로 밤의 은근히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밤의 음악' 1 2가 있으며, 외곽으로 미치도록 요란스럽다고 느낄 수 있을 음악이 포진하고 있어요. 비올라 연주는 손으로 현을 튕기는 피치카토 연주가 많고, 두 음을 급하게 연주하는 글리산도 기법으로 기괴했습니다.

 

아직 저는 내공이 깊지 않아서인지 4악장이 왜 '밤의 음악'이라 칭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감미롭고 매끄럽습니다. 해설을 읽어보아도 '세레나데'라는 설명이 붙어 있어요. 잘 보이지는 않지만, 중앙에는 기타와 만돌린 연주가 들리고 옆에서 하프 소리가 함께 할 때는 낭만적이기까지 합니다.

 

 

 

[렘브란트의 <야간 순찰>]

 

 

 

 

 

밤의 모습에 이런 모습도 있지요. 새벽녘에 느끼는 적막의 달달한 맛입니다. 말러는 '교향곡은 세계와 같아야 한다. 모든 것을 포용해야만 한다'는 말을 했어요. 종말에 다다른 비극 교향곡 6번의 암흑 속에서 7번 밤의 세계를 견디다 보니 여기에 이르러 포용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거기에 대한 보상이라도 주려는 걸까요? 그 시기의 많은 비평가의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는 행진 팡파르의 론도 피날레 마지막 악장이 시작됩니다. 지금까지 펼쳐온 과정의 결말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고 하네요. 뜬금없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어찌나 신나던지 가장 기다려왔던 순간입니다.

 

바그너의 흥겨운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서곡>과 느낌이 흡사했어요. <말러, 그 삶과 음악>을 쓴 스티븐 존슨은 드문 실패라고 못박습니다. 당시 많은 비평가들의 덜 떨어진 평가에 상처받은 말러의 개작으로 인한 결과라고 생각하더군요. 쇤베르크 역시 위대한 작곡가 중 한 사람의 영혼을 박탈시켜버린 그들의 이해력이 모자라다고 비난했습니다.

 

음악을 잘 아는 그들의 평가는 뒤로 하고 저는 어찌나 즐겁던지 어깨가 들썩이더군요. 제 옆에 앉은 분도 그렇던지 갑자기 손으로 리듬을 지휘합니다. 그런 무의식적인 모습에 저 역시 흥이 배로 나더군요. 순간 모차르트의 <반짝반짝 작은 별> 모티브가 잠깐이지만 별똥별처럼 스쳐가는 순간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휘자 인발의 손이 멈추며 전 관현악이 종결되는 그 순간 0.1초의 여백도 없이 터져 나온 어떤 관객의 '브라보' 소리는 감명의 배음을 느낄 순간을 덜어내버렸어요. 아쉽더군요. 그렇다고 연주 전반적인 감동이 덜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말러에 대한 친근함이 좀 더 깊어지고, 음악으로 표현되는 그의 생각을 더 알고 싶은 열망이 커졌어요.

 

 

 

 

[피아니스트 Alberto Lodoletti의 모차르트의 작은 별 변주곡 K.265]

 

 

 

 

서울시향과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그날 연주가 정명훈 예술감독이 있을 때보다 별로 였나 봅니다. 음악 애호가들에게 만족을 주지 못했다고 혹평이 많이 나왔어요. 특히 기대한 만큼 실망을 준 1악장의 현악 긴장감이 많이 떨어지고, 합주가 삐걱거렸다고 합니다. 클래식 음악 동호회 사이트에도 비슷한 이야기들이 올라왔습니다.

 

그럴 수 있겠죠. 작년 연말부터 현재까지 지휘자는 물론 악장과 연주자들도 몇몇 그만둔 상황이니까 정상 일리 없습니다. 하지만, 그날의 연주에 감명 받은 다른 청중들은 기립 박수를 치시는 분들도 꽤 있었어요. 박수가 끊이지 않아 지휘자는 3~4번 다시 앙코르 콜인사를 해야 했습니다.

 

 

큰 마음 먹고 오는 분들의 흥까지 싸잡아 '이상하다'는 듯 느낄 수 있는 감상평도 보였습니다. '실망스러운 연주였는데 환호하는 사람들이 이상하다'는 것이었죠. 의견을 세우는 데 제약을 둘 필요는 없지만, 타인이 납득할 수 있는 의견을 세워야 할 듯 합니다. 그런 점에서 평론가 최은규씨의 리뷰는 설득력 있어 보였어요.

 

말러의 다음 작품은 유명한 '천인 교향곡'이죠. 7번은 6번의 비극을 껴안는 동시에 구원과 환희로 나아가는 8번 교향곡과도 맞닿아 있지요. 당분간 예전과 비교되겠지만 현재 서울시향에게 '밤의 노래와 축제'는 참 잘 어울리는 곡이 아니었을까 합니다다시 도약하기 위한 그들의 밤을 인정하고 포용해야 할 순간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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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1. 풍월당 황장원씨 강의: 말러 교향곡 제7

2. : 스티븐 존슨의 <말러, 그 삶과 음악>

3. : 알렉스 로스의 <나머지는 소음이다>

4. 최은규씨의 네이버캐스트 말러, 교향곡 제7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66&contents_id=5976

5. 최은규씨의 공연 리뷰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3/19/0200000000AKR20160319031200005.HTML?input=1195m

 

 

 

by 왕마담 2016.04.04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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