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플라멩코 그리고 영화라는 삼박자

 

지난 연휴 기간, 플라멩코의 퍼스트 레이디라 불리는 사라 바라스 공연을 갔습니다. 프로그램 북을 한 권 샀어요. 그 안에는 수줍게 들어 있던 영화 포스터가 한 장 들어 있었는데 바로 <백설공주의 마지막 키스>였습니다. 스페인과 플라멩코, 영화에 푹 빠져 있는 제게는 삼박자가 두루 갖추어진 영화였었지요.

 

영화를 보기 위해서 약간의 노력이 필요했어요. 예술영화? 혹은 독립영화? 여서인지 시중의 일반 상영관에서 하지 않고 독립 영화관같은 곳에서 하더라고요. 메가박스는 ArtNine 이라는 곳, CGV는 압구정점에서 했습니다. 저는 기왕에 예술 영화를 전문으로 상영하는 ArtNine에서 봤어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스페인에서는 2012년 개봉했었네요. 파블로 베르헤르 연출작으로 BFI 런던, 토론토 영화제 초정 상영 및 산 세바스찬과 볼더 영화제 등에서 많은 수상을 자랑합니다. 무성의 흑백 영화라는 특징 덕분에 2011년에 봤던 <아티스트>가 자연스레 떠올랐습니다.

 

 

[No Te Puedo Encontrar, Sivia Perez Cruz in OST]

 

밖으로 나온 백설공주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현실로 던져진 백설 공주 이야기'라고 할까요? 음악과 극적인 장면의 연출, 전혀 낯설지 않은 의상 등으로 동화적 분위기를 표현하지만 이야기는 냉혹한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어둡기는 하나 곳곳에 위트 넘치는 구성이 있어 어떤 할아버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듯 하네요 .

 

주인공 카르멘의 일상은 남 부러울 거 없을 듯 한 환경이었지만, 예기치 않은 아버지의 사고와 난산 끝에 자신이 태어나면서 어머니가 죽게되고, 성찬식에서는 할머니마저 돌아가시는 불운과 불행의 연속입니다. 전까지 하얀색 드레스의 모습이었으나, 장례식에 참석하며 검은색으로 염색한 옷이 앞으로의 어두운 환경을 암시하지요.

 

캐릭터 중의 화룡정점은 바로 계모입니다. 카르멘, 즉 백설공주를 둘러싼 모든 악행의 주된 인물이지요. 마리벨 베르두가 연기한 엔카르나라는 역은 사치와 허영 게다가 사디스트 적인 욕구에 허우적되는 등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욕망을 이루기 위한 화신으로 그려집니다.

 

착하디 착한 난쟁이들도 현실적으로 그려졌습니다. 기억에 남는 한 명은 카르멘의 능력에 질투를 느끼며 헤코지하는 난쟁이이지요. 어떤 상황의 어떤 목적이던지 모두가 ''를 좋아할 리 없는 공동체를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글을 모르는 카르멘에게 종신 계약서를 내미는 투우 매니저까지 등장하지요.

 

쭈욱 보고 있노라면 감독이 작정하고 시궁창 같은 현실로 밀어 넣고 있다고 느낍니다. '현실 속에 동화는 없다'는 말을 계속 이어갑니다. 그럼에도 세빌리아로 돌아와 거대한 투우장에서 황소와 맞닥뜨리며 점차 기억을 찾아가는 카르멘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희열이 느껴졌습니다.

 

 

[운명의 행운을 기다리는 백설공주는 없다. 투우장의 황소와 맞서는 카르멘]

 

영화적 재미의 가득함

 

특유의 플라멩코 박자를 담은 빨마스(박스) OST 배경으로 삼아 어린 시절의 기억 주마등처럼 장면과 장면이 연이어져 가는 모습 그리고 황소와의 긴박한 대결 장면, 열광하는 관중들, 자기 잘못에 지레 찔려하는 계모 등 화려하지 않고 심플하지만, 흑백의 무성 영화 임에도 손에 잡힐 듯 그려내었습니다.

 

1920년대의 스페인을 빛과 어둠의 스타일로 새롭게 그려내었습니다. 이 영화는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스페인의 아카데미로 불리는 고야상에서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여우주연상을 비롯하여 10개 부문을 휩쓸었지요. 이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입니다.

 

낯설 수 있는 플라멩코의 음악을 오케스트라와 팝 적인 부분이 가미되며 전혀 어렵지 않게 들리는 OST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고 한 소녀의 기구하며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에 어울리는 애절함과 흥겨움, 박진감을 동시에 표현해 주는 듯 했어요.

 

 

[예고편]

 

백설공주? 아니 카르멘

 

'그래~ 이제 카르멘이 복수를 하고 행복해질 차례겠지' 싶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독사과를 베어물고 잠들어 버리는 백설공주, 그리고 그것마저 돈벌이 수단으로 삼은 매니저, 모두 떠나고 단 한 명의 난쟁이만이 돌보고 있는 현실. 마지막 키스를 받고 환하게 깨어나는 대신 흐르는 눈물 한 방울.

 

백마를 탄 왕자도 없고, 말하는 마법의 거울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할머니의 무한한 사랑, 아버지와의 화해와 정, 난쟁이들의 친절, 무엇보다 '언젠가~' 를 기다리는 대신 칼을 빼들고 투우장에 서 운명의 황소와 마주하는 주인공, 그녀는 백설공주가 아닌 정열적이고 자유분방했던 카르멘이었습니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일상의 그런 소소할 수 있는 순간들과 기구한 삶을 꿋꿋하게 헤쳐나가는 용기와 열정이야 말로 인생의 진정한 동화라는 것이지요. 현실의 동화는 투우사가 되어 미쳐 날뛰는 황소 앞에 섰습니다. 경기장에서 도망갈 곳은 어디에도 없지요. 무엇을 택할지는 각자의 몫인게죠.

 

 

[할머니와 플라멩코를 추는 어린 시절의 카르멘, 가장 즐거웠던 장면]

 

 

 

[영화에 삽입된 또 하나의 플라멩코 곡, Zapateando]

[Zapateando는 플라멩코 춤의 발구름을 이르는 말]

by 왕마담 2014.05.10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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