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이 보였다

 

처음 본 전막 발레가 국립발레단 <백조의 호수> 였다. 무용 공연이 주는 새로운 감명에 눈 떴고, 오데트와 오딜을 맡은 이은원씨 춤사위에 감동받았다. 두 번째 본 건 작년 내한했던 마린스키 프리모스키 공연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본점이 오는 듯 광고하고 블라디보스톡 지점이 와서 말이 많았다. 군무진 실력이 떨어졌지만, 두 객원 주역 테레쉬키나와 김기민씨는 으뜸이었다.

 

백조와 흑조 파드되는 갈라 공연 무대에 자주 올라가는 레퍼토리다. 관람할 때마다 가장 유심히 듣고 본다. 우연찮게 그 유명한 파드되가 아닌 1막 2장 엔딩신 백조 코다 음악에 빠졌다. 유튜브를 찾으니 볼쇼이 수석 무용수 자하로바의 영상이 있다. 춤마저 '이렇게 감명스러웠나?' 싶어 보고 또 봤다.

 

전에 봤던 공연에서 이 장면이 기억나지 않았다. '왜 놓쳤지?' 싶어 부랴부랴 질리언 머피 등 다른 발레리나를 찾아봤다. 또한, 키로프('마린스키'의 옛이름)와 볼쇼이 발레단 전막 영상을 보고, 영화 <블랙스완>까지 다시 접했다. 주역이 출연하는 신 외에 솔리스트와 군무진들이 펼치는 장면들이 보인다. 전에 몰랐던 <백조의 호수> 진짜 매력에 눈 떴다.

 

 

 

[<Swan Lake> white swan coda (Svetlana Zakharova)]

 

 

볼쇼이 진정한 힘, 군무

 

'가장 볼쇼이다운 무대를 보여줄 수 있어 <백조의 호수>를 선택했다' 예술감독 바지예프의 인터뷰는 인사치레로 같았다. 하지만, 지인찬스(삼성카드 다이렉트 1+1 티켓 행사)로 본 일요일과 월요일, 이틀 관람한 후 그의 말이 비로소 이해갔다.

 

막을 여는 관악기 연주를 듣자 '오늘 끝장났군' 싶다. '내가 볼쇼이야!' 라며 자신감으로 충만한 연주가 풍부하고 깊다. 금관악기의 웅장함과 현악기의 처연함이 조화롭다. 콘서트라해도 무방한 연주가 무용수 움직임에 딱딱 들어맞는다. 전속 오케스트라와 시너지가 좋으리라 예상했지만, 기대를 훌쩍 넘는다.

 

볼쇼이 발레단의 힘은 파드트루와, 디베르티스망 등을 제대로 소화하는 솔리스트들과 코르드(군무) 무용수들이다. 수석 무용수와 수준이 차이나지 않았다. 오늘 이전까지 주역인 오데트/오딜과 지크프리트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백조의 호수는 군무지!' 많은 분들에게 들은 얘기를 실감한다.

 

그들은 무대 위 공간을 빈틈없이 메운다. 예술 동작을 제식처럼 맞추어 반듯한 오와 열이 주는 군무의 아름다움에 감탄이 계속이다. 1막 2장 백조들로 이루어진 발레블랑은 몽롱함을 더한다. 2막 2장 백조들과 흑조들이 악마 로트바르트에 의해 혼란스러워지는 군무는 처연함 속에 긴장이 더해진다.

 

꽉 짜여진 군무 속에서 자유로운 로트바르트와 광대는 다채로운 움직임을 더하여 무대를 역동적으로 만든다. 지크프리트를 맡은 시몬 츄진(Semyon Chudin)은 이전에 유니버설발레단에 있었던 터라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무대가 낯설지 않아 보였다. 거기에서 오는 깊은 중심은 안정감을 더한다.

 

 

 

[볼쇼이 발레단, 출처: 구글이미지]

 

 

가장 먼저 기억날 공연

 

오데트와 오딜을 연기한 올가 스미르노바(Olga Smirnova)는 시종일관 미끈했다. 빠르던 느리던 레가토처럼 끊어짐없다. 애달픈 백조를 절제하여 연기하는 데도 뭉클하다. 1막 2장이 끝나갈 무렵 가장 기대했던 백조 코다에서 연속된 앙트르샤와 파세는 힘이 부쳤는지 탄력이 떨어졌다.

 

흑조 파드되 하이라이트 푸에떼 32회전 후반부에도 지쳤는지 늘어졌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였지만, 상대에 따라 유혹하고 음흉하며 도도함에 앙탈스러움까지 다양한 매력을 보여주었다. 어찌보면 백조에서 처연한 표정 하나의 연기는 흑조와 대비하기 위한 게 아닐까?

 

일요일(5/27)에 받은 감동은 특히 벅찼다. 첫공이고 좌석도 구석이라 월요일(5/28)에 볼 공연의 예습 정도로 생각했다. '기대' 라는 가드없이 어퍼컷을 맞은 느낌이랄까? 완벽하다고 볼 수 없지만 내게 <백조의 호수> 하면 항상 먼저 떠오를 공연이었다.

 

정작 기대했던 5/28(월요일) 공연은 '역시 잘한다' 외 감동까지 얻지 못했다. 사선 바로 앞자리는 1막 내내 카톡하고, 바로 뒤의 아이는 공연 중간 손풍기를 켜 잡음을 던졌으며, 어떤 아주머니는 뒤에서 계속 해설하는 등 관크에 대비하지 못했다. 집중하지 못한 탓 크리라.

 

오데트/오딜을 맡은 율리아 스테파노바(Yulia Stepanova)의 컨디션은 좋아 보였다. 백조 코다와 흑조 파드되도 깔끔했다. 지크프리트의 아르템 아브차렘코(Artem Ovcharenko)는 시몬보다 탄력적이었다. 하지만, 이미 전날 받은 감명으로 가슴이 모두 채워져서 담을 수 없었는지 모르겠다.

 

 

 

[올가 스미르노바와 시몬 츄딘, 사진 출처: 구글이미지]

 

 

 

<백조의 호수>, 작품이 가진 힘

 

지크프리트 왕자가 악마 로트바르트를 한 방에 물리치는 라스트신은 불만이다. 급하게 마무리하는 느낌이랄까? 그때까지 느낀 감정이 사그라진다. 볼쇼이의 해석은 마음에 쏙 들었다. 맥락이 비극으로 가고 있지 않은가. 거기에 맞는 라스트신 지크프리트의 허망한 표정과 함께 막이 닫힐 때 온갖 느낌이 고스란히 남는다.

 

공연장을 나서며 <백조의 호수> 작품이 가진 거대한 무언가를 느꼈다. 1877년 볼쇼이는 <백조의 호수>를 초연했지만 실패했다. 당시 안무가는 벤젤 라이징거였다. 이후 궁전 파트를 마리우스 프티파가, 호수신은 레프 이바노프가 맡아 새로 만든 것처럼 개작하여 1895년 마린스키 극장에서 재연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현재는 볼쇼이 예술감독이었던 유리 그리가로비치가 수정한 버전이 공연되고 있다. 작품의 큰 특징은 고전발레 충실했던 프티파와 낭만발레 요소를 덧입힌 이바노프의 서로 다른 스타일이다. 질서와 조화 그리고 발레블랑의 대비에서 오는 감명은 다른 작품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그 힘을 고스란히 보여준 볼쇼이 발레단과 오케스트라였다.

 

 

 

 

by 왕마담 2018.06.13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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