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프롤로그

<청소년을 위한 서양음악사>라는 책을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많은 책들이 어렵게 쓰여 있어 눈높이를 낮추었더니 무척 재미있게 봤어요. 바로크 시대부터 20세기의 서양음악사의 흐름을 개념적으로 정의한 것은 물론이고 유명 작곡가들과 대표 곡들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설명되었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체계적으로 접하고 싶은 마음에 읽게 됐어요. 소개된 음악은 유튜브에 접속하여 해당 음악을 검색하여 들으면서 읽게 되니 글이 살아 있는 듯 풍성하게 들렸습니다. 유명한 곡들이라 대부분 어디선가는 한 번 정도는 들어 봤던 음악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 중 가장 감명 깊었던 작곡가는 모차르트와 베토벤이었습니다. 이름을 많이 들어 익숙하지만 제대로 아는 건 드물더라고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음악을 듣다 보니 곡마다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특히, 베토벤의 교향곡 9 <합창>은 출근길에 울컥할 정도로 감정이 들끓는 걸 느꼈어요.

 

 

 

 

1. 베토벤을 만나다

그 즈음 정명훈 지휘자의 연주회 소식을 봤어요. 오케스트라에 관심이 많아진 요즘 그와 서울시향의 공연 소식은 음악에 대한 기대감을 충분히 높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타이틀이 베토벤 스페셜이라니. 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꽂혔습니다. 한 가지 아쉬웠던 건 <운명>이나 <합창>과 같이 익숙한 교향곡이 아니었죠.

 

베토벤이 표제에 <전원 교향곡>이라 칭했던 6번과 제목이 없는 7번 교향곡이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전 악장을 모두 들어 보는 관람도 처음이네요. 전에 감상했던 클래식은 인기 많은 곡의 악장 하나 정도만 감상했었습니다. 1808년 만든 6번 전원 교향곡(Beethoven, Symphonie No.6 'Pastorale' op.68)은 총 5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공연 시 1, 2악장이 끝날 때는 잠시 쉬었지만 3~5악장까지는 쉼 없이 내 달렸습니다. 1악장 도입부는 들어봤던 듯한 착각이 느껴져 익숙했어요. 'Allegro ma non troppo', '전원에 도착했을 때의 유쾌한 기분'이라는 제목을 갖고 있습니다. 부드럽고 따뜻하여 자칫 잠을 부를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하죠.

 

 

[베토벤 6번 교향곡 (전원 교향곡) 1악장, 김대진 지휘자와 예술의전당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2. 전원 교향곡

2악장 Andante molto moto '시냇가에서'라 불립니다. 후반부 플룻과 클라리넷, 오보에가 독주로 새소리를 표현하는 연주에 인상이 풀렸어요. 3악장 Allegro '농부들의 즐거운 모임'에서 흥겨움을, 4악장 Allegro '폭풍'에서는 당장에라도 폭풍우가 내릴 듯한 기세를 음악으로 표현합니다.

 

긴장감 넘치는 표현에 바이올린과 비올라, 베이스 등의 현악기 연주자들 손이 빨라 집니다. 숨어 있던 타악기들까지 오케스트라 연주에 합류하여 리듬을 높이며 심장 박동이 빨라지도록 만드네요. 5악장 Allegretto '폭풍이 지나간 후의 평화' 에서는 폭풍우가 지나간 후의 평온한 마음이 들도록 합니다.

 

<전원> 교향곡이 끝나자마자 우레 같은 박수 소리가 연주회장을 가득 채웠어요. 옆 자리에 있던 어떤 관객 분은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감수성이 무척 높으신 듯 합니다. 비싼 표 값을 제대로 즐기시는 거죠. 음악의 어떤 힘이 사람의 마음을 그토록 녹이는지 궁금합니다.

 

 

 

 

3. 명당

이날 제 자리는 예술의 전당 음악당 콘서트홀 C구역의 4 7번 자리였어요. 이토록 가까운 정중앙에서 관람했던 적은 무척이나 드물었죠. 비록 정명훈 지휘자 뒷모습 만을 볼 수 있지만 그의 박력 있는 힘은 충분히 느껴집니다. 연주자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모두 보였어요.

 

20여분의 인터미션 후 베토벤 교향곡 7(Beethoven, Symphony No.7 in A major op.92) 연주가 시작됩니다. 1812년 만들어진 곡이죠. <전원> 교향곡에 비해 표제도 없어 낯설었습니다. 연주회 오기 전 먼저 들어 봤더니 베토벤 특유의 무거운 분위기 보다는 춤추고 싶은 기분이 들만큼 신났어요. '~'

 

베토벤하면 <운명> <합창> 교향곡 밖에 몰라 음악회 갈까 망설이던 마음이 기쁨으로 바뀌던 순간이었습니다. 기대하던 교향곡 7번이 정명훈 지휘자와 서울시향의 열정적이고 세심하며 진지한 연주로 제 앞에서 연주되고 있다니 연주회 2부는 시작부터 음악에 마음이 동했어요.

 

 

[베토벤 7번 교향곡 3악장, 주빈 메타와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4. 낯설었던 7번 교향곡, 한 바이올리니스트의 감명

4악장으로 구성됐습니다. 1악장 Poco sostenuto-Vivace는 춤을 위한 무곡이라 여겨도 손색 없을 정도의 리듬을 갖고 있어 순식간에 반했어요. 이 즈음 제2 바이올린 파트에서 연주하던 바이올리니스트에 푹 빠졌습니다. 그녀(서울시향 홈페이지 검색을 해보니 아마 강혜선님일 듯합니다)는 몰입 그 이상으로 빠져 연주하는 듯 느껴졌어요.

 

표정 하나 하나 몸짓 하나 하나 현을 연주하는 활의 동작 자체 모두가 음악을 표현하는 듯 보였습니다. 1 바이올린을 비롯 주변 동료들과 눈빛을 교환하는 모습부터 지휘자를 응시하며, 때로는 허공을 지그시 바라보는 모습 자체에서 베토벤의 음악을 보여주는 듯 느꼈습니다.

 

오케스트라 연주회에서는 눈을 둘 곳이 너무 많아 어디를 봐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릴 때가 있었는데, 시선이 그녀에게 고정됐어요. 음악에 빠진다는 모습이 바로 그 모습이었을 겁니다. 경쾌하게 빠른 1악장을 지나 2악장 Allegretto 은 무거워집니다만, 지루하지 않았어요. 약간의 웅장함이 끼어들지만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서울시 교향악단, 서울시향]

 

 

5. 정명훈 지휘자와 서울시향 만이 느꼈을 감명

3악장 Presto는 2악장의 무거움을 걷어 내려는 모습으로 시작됐어요. 1악장은 춤을 위한 리듬을 위했다면 3악장은 멜로디로 들썩이게 만듭니다. 현악기를 연주하는 분들의 팔 놀림이 신기에 가까워지고 있었죠. 대미를 장식할 4악장 Allegro con brio은 빠르지만 거칠게 시작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연주가 후반부로 갈수록 연주자나 관람객 모두 감동에 겨워하는 모습이었어요. 아마도 서울시향에 불었던 부침의 영향이 컸을 거라 생각합니다.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잘잘못을 떠나 마에스트로라 불리는 정명훈씨의 능력을 인정하여야 할 시점이 아닐까 생각됐어요.

 

얼마만큼의 간극이 있는 지는 몰라도 우리나라도 빈이나 베를린 필 하모닉과 같은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단으로 갈 수 있는 기초를 만들 수 있는 시기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손쉽게 세계적 수준의 연주를 접할 수 있다면 큰 축복이겠죠. 그리고 운영에 있어서의 삐걱댐은 점차 잡아가면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베토벤 교향곡 7번 4악장, 서울시향과 임헌정]

 

 

6. 에필로그

베토벤 7번 교향곡 4악장은 마치 군 행진곡과 같이 빠르고 거칠게 요동치며 마무리됐어요. 기립박수가 이어집니다. 눈 여겨 봤던 바이올리니스트는 결국 눈물을 보이네요. 가슴이 찡해졌습니다. 터질 듯한 박수로 3번의 콜이 이어지고 곧 정명훈씨도 몰랐을 그의 행적을 쫓은 프리젠테이션이 나오더군요.

 

유학 시절 그리고 외국 유수의 오케스트라단에서 지휘했던 모습, 외국에서 인정 받는 사진 등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마지막 문구는 그를 위한 것인지 서울시향을 위한 것인지 우리를 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서울시립교향악단은 마에스트로가 필요합니다'로 끝맺어졌어요.

 

콘서트홀에 있던 모두의 가슴이 저마다의 감동으로 뜨거워진 순간이었습니다. 어쩌면 음악이란 듣는 그 순간을 넘어서도 존재하는 게 아닐까 싶었어요. , 듣게 될 순간 그리고 들은 이후의 순간 모두 음악과 연장되는 선에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베토벤의 음악도 연주자의 모습도 지휘자의 뒷모습까지 울렸던 순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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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일: 2015 8 28일 금요일

[마음을 담은 리뷰 15-01]

by 왕마담 2015.09.07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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