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에 갔던 스페인 순례길은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어깨에 멘 배낭의 무게와 하루 종일 걷는 고단함에 적응됐습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겨울인데 정오를 지날 즈음에는 등짝에 땀이 흥건하여 무척 더웠어요. 그늘 하나 없는 메세타 평원을 걸을 때는 고역이었습니다. '이 길을 왜 오려고 했을까 후회되기도 했죠'.

 

몇 주 전 신촌과 홍대 그리고 여의도 일대에 설치된 우리 회사 장비 약 100여대를 일일이 찾아 다니는 점검이 필요했습니다. 이른 아침에는 제법 쌀쌀했지만, 오후에는 뜨거운 햇빛이 힘겹게 느껴졌어요. 빌딩숲으로 이루어진 여의도는 카페에 들어가지 않는 한 걸어 다니며 그늘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순례길에 차츰 적응 되자 알베르게(순례자 숙소)를 나서는 시간이 점차 빨라졌어요. 컴컴한 이른 아침의 쌀쌀한 고즈넉함, 걷는 길 위에서 서서히 맞이 하는 아침 햇살의 따뜻함이 참 좋았습니다. 근방에 카페라도 하나 있어 '카페 콘 라체(카페라떼)'에 간식이라도 하나 하면 온 몸 구석구석, 여유로움이 깃들죠.

 

아침 7 30분까지 신촌에 가려면 늦어도 6시 정도에는 집을 나서야 합니다. 그 시간은 운동할 시간인데 일하러 나가려니, 아깝고 귀찮았어요. 미적대다 보니 늦어 지하철역까지 걸어가기에는 늦어 택시를 탔습니다. 이른 아침 풍경을 감상하기는커녕 조급해지고 일하기 싫은 마음을 다독이기에 바빴어요.

 

다음 마을 숙소를 정하고 걷지만, 힘에 부치면 그 전에 쉴 때도 많았습니다. 쉬엄쉬엄 걸어가며 길 위에 있는 순간을 즐기고 싶었어요. 음악을 들으며 혼자 걸을 때, 순례자 숙소에서 만난 친구들과 같이 걸을 때, 화창하거나 흐리며 비오는 등 낯선 순간의 경직됨을 벗어나면 모든 게 즐길 거리였습니다.

 

시스템이 특정 지역 근방에 모여 있을 때는 많이 걷지 않아도 여러 대를 손 볼 수 있었죠. 점차 그런 지역은 없어지고 지하철 한 두 정거장 사이 정도 떨어졌습니다. 걷기에는 부담스럽고 택시를 타자니 민망했어요. 걷다 보니 금방 지치더군요. 눈 부시게 내리쬐는 햇빛이 힘들었습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해지던 차, 하루 15~20Km까지 걷던 순례길도 즐거운 마음으로 걸었는데, 1Km 떨어진 곳에 걸어가는 게 이리도 힘든가 싶었죠. 느끼는 데에도 준비되는 듯 ''는 오늘 일하는 마음으로 잘도 셋팅되어 있었습니다. 최대한 최소의 노력을 기울이고 싶은 마음 말이죠.

 

길 위에 서있다는 사실에 '순례길' '작업길'에 대한 차이가 있는 걸까요? 스페인 북부 마을이던 서울 도심 한 복판이던 모두 사람이 걸어 다닙니다. 그 길의 차이를 만드는 건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내 마음의 차이, 가장 큰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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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감사한 마음으로, 지상 Dream

http://wangmada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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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안녕하세요. 왕지상입니다. 이 편지는 한 주 한 주를 보내면서 겪은 일들과 그 느낌을 매우 개인적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자주 만나지 못하니 이런 소식이라도 나누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수 많은 스팸 메일 중 하나를 더 추가할지 모를 우려를 뒤로 하고 보냅니다. 이런저런 회신을 주신다면 더욱 좋을 일이지요. 그러나 저러나 저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고 계시는지요?

 

by 왕마담 2015.10.05 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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