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대학교 편입을 할까 말까 고민한 게 얼마 전인데 벌써 기말고사를 봤습니다. 수강 과목 중 <행복한 글쓰기>가 있어요. 시험이 아닌 직접 글쓰기를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주제가 '내 인생의 가치관에 영향을 준 첫 경험'이었어요. 많은 경험들이 생각났습니다.

 

군대, 해외여행, 노래 배우기, 야간 대학 등의 첫 경험이 떠올랐어요. 그 중 그날 아침이 떠올랐습니다. 낯선 아침이었죠. 일요일에는 보통 늘어지는 늦잠을 자고 아침겸 점심밥을 먹고 TV PC로 다운받아 놓은 미드나 애니 혹은 영화를 보고는 했습니다.

 

일요일 아침 8시 정도의 버스 정류장은 인적 없이 저 혼자 달랑 있었어요. 넓은 양재대로에 지나 다니는 차들도 별로 없었는데 그나마 쏜살같이 지나가 이미 없던 듯 했습니다. 나만 있는 것 같은 느낌, 뭐랄까 설명하기 어렵지만 편안한 느낌이 들었어요.

 

우산보다 작던 어린 시절 비가 올 때면 골목 어귀에서 우산을 펼쳐 바닥에 놓고 그 속에 쏙 들어가 가만히 빗소리를 듣고는 했습니다. 내 방이 따로 없었는데 그렇게 있으면 아늑한 나만의 공간에 혼자 있던 것 같았지요. 그날 아침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곧 삼성동 코엑스를 오가는 마을 버스에 올라 탔습니다. 역시 그 안에도 사람들은 별로 없었죠. 이어폰을 통해 들려오는 노래들이 버스가 울퉁불퉁 노면과 맞닿아 생기는 들썩임처럼 살아 있는 듯 느껴졌습니다. 코에스의 넓은 공간은 한적하다 못해 적막한 새벽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죠.

 

전날 예매한 <다크나이트>를 보기 위해 들른 메가박스, 몇 년만에 와본 극장인지 모르겠습니다. 영화를 좋아하지만 혼자라도 극장갈 생각은 전혀 못했어요. 극장은 누군가와 같이 가야되는 곳으로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극장 앞까지 느낀 평안은 혼자 극장가는 걸 들키지 않았기 때문인 듯 해요.

 

티켓을 찾아 막상 상영관 앞에 서니 연인, 가족, 친구들, 지인들과 같이 온 사람들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눈치를 살피는 '' 역시 서있었죠. 그들이 제게 '혼자 영화 보러 왔네?', '같이 볼 사람도 없나봐?', '외톨이나 왕따아냐?'라고 흉볼 거 같았습니다. 움츠러들더라고요.

 

'그냥 집에 갈까?' 싶었는데 '여기까지 와서?'라는 마음도 같이 일었습니다. 서먹하고 낯설고 눈치가 보이지만 상영관을 들어갔어요. 먼저 앉아 있던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는 듯 하여 내 좌석을 찾아갈 때까지 몇 킬로미터를 걸은 듯 했습니다. 자리에 앉아서도 뒤와 옆에 있는 사람들이 수군대는 것처럼 보였어요.

 

좌불안석을 꾸욱 참았습니다. 영화 시작을 알리듯 상영관 내부 조명이 꺼지니 그제야 편안해졌어요. 당시까지 알지 못하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이 시작하자 조금 전까지 느꼈던 마음의 불편함 대신 신세계가 찾아왔습니다. 집중을 넘어 스크린 속으로 빨려 들어갔죠.

 

주인공이 누명을 스스로 뒤집어 쓰고 경찰을 피해 달아나는 장면에서 영화는 끝났지만 감동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3시간이 지났을 뿐이지만 극장에 혼자 왔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았어요. 극장을 나서며 함께가 아니더라도 '관심있고 재미있는 건 스스로 즐기면 되겠구나'라고 느낀 듯 합니다.

 

이후 같이 뭔가를 한다고 여기는 것들을 혼자할 때 느끼는 마음의 불편함을 만나면 이날이 생각나요. 누군가의 눈치나 서먹함에 묶여 있기보다 원하는 걸 했을 때 받을 감명이 즐겁다는 걸 알았던 첫 경험입니다. 극장을 넘어 일상의 전반을 차지 하는 가치관이 됐습니다.

 

함께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재미있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이죠. 노래와 춤을 배워볼 용기도, 음악과 무용, 영화와 공연 등 문화예술 분야를 더 알고 싶다는 흥미도 그날 시작된 듯 합니다. 여러분의 가치관에 영향을 준 첫 경험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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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감사한 마음으로, 지상 Dream

http://wangmada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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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안녕하세요. 왕지상입니다. 이 편지는 한 주 한 주를 보내면서 겪은 일들과 그 느낌을 매우 개인적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자주 만나지 못하니 이런 소식이라도 나누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수 많은 스팸 메일 중 하나를 더 추가할지 모를 우려를 뒤로 하고 보냅니다. 이런저런 회신을 주신다면 더욱 좋을 일이지요. 그러나 저러나 저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고 계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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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마담 2015.06.15 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