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

 

 

어렸을 때 살았던 송월동 우리 집 앞에는 같은 학교 다니던 코가 커서 코주부라 불리던 친구가 살았다. 제법 사는 집으로 중학생 시절 자전거까지 갖고 있었다. 학교 다녀온 후 친구들끼리 돌려 타던 기억이 난다. 그 친구는 대학생 누님이 계셨는데 때때로 다급히 찾아와 몇 권의 책을 숨겨달라고 했다. 그게 무슨 책인지도 모르고 지하실 비슷한 곳에 감췄는데 그게 당시 말하는 불온서적이었다.

 

국밥집 순애의 아들 진우는 독서 모임에서 불온 서적을 돌려 보고 사회주의 국가를 찬양하는 등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죄목으로 기소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온갖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하는 등 국가 권력의 유지를 위한 희생양이 되어 버린다. 두 달여 아들의 생사 조차 몰라 신원 불명자의 시체까지 찾아 보던 어머니 순애의 절실한 마음은 세법 전문 변호사 '송우석'에게 이어진다.

 

다른 변호사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던 세법 전문으로 원 없이 돈 벌던 송변(송우석)은 마음의 빚이 하나 있다. 사법 고시 준비하던 시절 돈 없어 밥값도 내지 못하고 도망갔던 국밥집에 다시 찾아가 그 때 내지 못한 값을 얼굴과 발로 치른다. 전반부는 이렇듯 변호사가 되어 소박한 국밥 같은 따뜻한 분위기에서 넉살 좋은 그가 선사하는 유쾌한 웃음으로 이루어진다.

 

 

[송변이 변호사에서 변호인으로 가는 연결고리 장면]

 

이 영화는 대립으로 이루어졌다. 전반부의 시종일관 소박한 웃음과 따뜻한 인간애가 느껴지는 모습과 대조적인 불합리와 공권력의 남용에 대한 분노의 후반부로 만들어졌다. 당시를 대표하는 차동영이라는 인물과 송우석이 대결구도로 만나고 부와 가난이 공존한다. 양심과 타협이 부딪히고 따뜻한 국밥집과 차디찬 수사실이 엮이어 있다. 대표하는 장면들을 하나 하나 손꼽을 수는 없지만 찾아보며 감상하는 것도 재미의 한 요소를 이룰 듯.

 

이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빛나는 장면은 송변이 국밥집 아주머니의 간절한 부탁으로 불법 감금된 구치소에 찾아가 진우를 만나는 순간이다. 한사코 면회를 거부하던 구치소에서 헌법 조항을 들이밀며 간신히 만난 진우를 만난 순간 충격에 빠진다. 개인적인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직업으로의 변호사에서 사람을 위한 양심과 원칙을 지키기 위해 살아가는 변호인을 이어주는 연결 고리가 되기 때문이다.

 

<남영동1985>는 충격적이었다. 그 이유는 고문도 프로페셔널 기술처럼 여기는 기술자 덕분이다. 사람이 어떻게 유린되어 가는지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변호인>에서는 권력을 정당화시키려는 국가 프로젝트를 이루는 요소였다. 순진한 대학생이 어떻게 대공사범이 되어 가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 시점에서 관객에게 더 분노케 하고 섬뜩하게 만든 요소는 <변호인>이 더 잘 표현한 듯 느껴졌다.

 

 

[섬뜩한 애국심을 지닌 차동영]

 

관객의 답답함을 잘 아는 듯 차동영을 증인으로 불러 마치 국가와 한 개인이 대결하는 요소를 보여주는 장면은 단연코 후반부의 백미. 할 말 없으면 모두 빨갱이로 치부해버리는 나름 애국자인 경감에게 헌법에 명시된 '국가'의 뜻을 불러주며 분노하는 송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체했던 국밥이 쑥 내려가는 시원함을 안겨주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국가와 사회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해졌다. 시스템이 만드는 인간에 대한 잔인한 공격성, 그건 사실 주변에서도 금방 찾아볼 수 있다. 나와 조금만 다르면 마치 적을 만난 듯 공격하는 곳곳에 산재해 있는 왕따 문화가 그것이지 않을까? 그 속에서 우리는 이미 양심과 원칙 대신 타협을 택하게 된다.

 

어떤 사람을 잃었는지 일깨워주려는 듯 영화는 영정 사진을 보여주는 듯 마무리된다. 뜨거워 지는 가슴은 아마도 잃어버린 게 사람이 아닌 내 안의 그 무엇일지도 모른다는 인식 때문이다. 송변이 변호인이 되었을 때 찾은 그것, 상실을 일깨우는 영화, 변호인이었다.

 

by 왕마담 2014.01.20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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