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올레길 트렉킹에 대한 감흥을 담은 편지를 썼었지요? 사실 거기까지 가는 데 많은 혼란을 넘어야 했습니다. 생각보다 스페인 항공권을 취소하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죠. 남들 다 부러워하는 여행을 가지 않는다는 게 망설이게 했습니다. 이미 끊어 놓은 항공권과 미리 받아 놓은 짧지 않은 휴가도 아까웠어요.

 

'그래, 남들은 가보고 싶어도 못 가는데 가야지'라는 심정으로 준비했었습니다. 뜨거운 열정이 가득한 안달루시아 지방의 주도이며 플라멩코 박물관과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대성당이 있는 세비야, 마지막 이슬람 왕조의 절박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알함브라 궁전이 있는 그라나다, 그리고 가우디와 메시의 바르셀로나까지.

 

어찌된 일 일까요? 스페인에 대해 알아가고 여행 책을 읽어 봐도 흥이 나지 않았습니다. 혹시 작년처럼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은 걸까? 싶었어요. 꽃할배가 닦아 놓아 '스페인 여행 가요'라는 말 한마디에 대부분 '~ 좋으시겠어요, 부러워요' 라는 반응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주변에 떠벌려 놓은 게 있어 취소한다는 말도 하기 힘들더군요. 누군가에게 등 떠밀려 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언젠가 오늘 떠나지 않은 여행을 후회하게 될까 싶어 더 관심을 쏟았지만, 손에 쥐고 눈길이 가는 건 다른 책과 여행이었습니다. '오지 않은 미래의 후회에 구속되지 말고, 타인의 가치에 휘둘리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많이 떠나 보지 않아 어떤 여행을 좋아하는 지 모르지만 유명 관광지를 탐방만 하는 건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닌 듯싶습니다. 고생스러워도 뿌듯한 도보 여행이나 심신이 차분해지는 템플 스테이와 같은 체험을 선호하죠. 그렇지 않으면 도심 속 카페에서 책 읽고 영화 보고 공연 관람하는 걸 더 즐겨 합니다.

 

그냥 떠나 보는 여행도 좋지 않겠니? 라고 물을 수 있겠어요. 작년에 해봤잖아요. 체코 프라하로. 이 주 전 항공권을 끊고 책 한 권 읽고 떠난 여행, 지금 생각 남는 건 까를교와 야경 그리고 맥주 맛인데 사실 경비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준비를 더 할 걸 하는 아쉬움이 있었어요.

 

이번 스페인 항공권은 더 비쌉니다. 이 가격이면 그 동안 살까 말까 고민했던 '맥북에어', '(좋은) 헤드폰이나 이어폰', '스마트폰'을 한꺼번에 살 수 있죠. 현지 여행 비용도 아껴 다음 뜻 깊은 여행을 준비할 수 있으니 현실적으로 취소하는 건 매우 타당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소하는 데 어려움의 끝판을 느낀 건 여행이 주는 불확실에 있었어요. '알 수 없는 미지의 뭔가가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인연을 만날 수도 있는 거고, 새로운 인식의 확장이 열릴 수도, 내 자신에 대한 만족을 느낄 수도 있을 테죠.

 

그리 되려면 평소 준비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상의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 자신에 대한 불만이 쌓여 있는 상태였죠. 자기 만족이 없으면 타인과 상황에 마음을 잘 열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극복하고 싶지만 너무 비싼 수업료를 지불해야 하는 형편이었지요.

 

남들은 모두 여행을 떠나지 못해 안달인데 가지 않겠다니...... 많은 분들이 '여행, 떠날 자유를 말씀합니다만 '여행, 가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도 있어야 진정한 자유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 선택한 건지 불안한 심정을 안고는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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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감사한 마음으로, 지상 Dream

http://wangmada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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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안녕하세요. 왕지상입니다. 이 편지는 한 주 한 주를 보내면서 겪은 일들과 그 느낌을 매우 개인적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자주 만나지 못하니 이런 소식이라도 나누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수 많은 스팸 메일 중 하나를 더 추가할지 모를 우려를 뒤로 하고 보냅니다. 이런저런 회신을 주신다면 더욱 좋을 일이지요. 그러나 저러나 저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고 계시는지요?

 

by 왕마담 2014.10.23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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