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5월에서 6월까지 일곱 번째 대한민국 오페라페스티벌이 열렸어요. 국립오페라단을 비롯 우리나라 굵직한 단체 6개가 참가했습니다. 강화자씨가 창단한 베세토오페라단은 <리골레토>를 가지고 나왔어요. 오페라 작곡계 대스타인 베르디의 작품은 작곡 시기별로 초기, 중기, 말기로 나뉩니다.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자주 공연되는 <라 트라비아타>, <일 트로바토레>, <리골레토>는 중기 3대 걸작으로 손꼽힙니다.

 

작품보다 'La donna e mobile(여자의 마음)'라는 아리아가 더 유명할 거 같아요. 잘 모르겠다고요? 방송이나 CF에 워낙 많이 나오는 멜로디라 들어보시면 금방 아실 겁니다. 베르디는 이 곡이 들으면 흥얼거리게 만들 중독성이 짙다는 걸 알았나 봐요. 가수들에게 아무 데서나 부르지 말라고 엄포 하는 등 초연 직전까지 새나가는 걸 철저히 비밀로 붙이고자 노력했다고 합니다.

 

빅토르 위고의 희곡 <환락의 왕>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프랑스 궁정의 향락과 사치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고 해요. 하지만, 이탈리아 북부를 지배하던 오스트리아는 우호국 프랑스에 비판적인 이 작품을 그냥 놔두지 않았어요. 특히 리골레토가 주인이나 다름없던 공작을 시해하려는 내용이 혁명적이라며 문제시 됐습니다. 결국 검열로 무대는 이탈리아 만토바 궁정으로, 제목은 <저주>에서 <리골레토>로 바뀌게 되죠.

 

 

 

[오페라 리골레토의 대표 아리아, 'La donna e mobile' by Pavarotti]

 

 

2.

곱추 리골레토는 궁정 광대로서 호색한 만토바 공작을 부추겨 궁정 귀족들의 부인이나 딸을 농락시키게 만들면서 쾌감과 만족을 느낍니다. 드물게 바리톤이 주인공이죠. 오마르 카마타라는 외국 배우가 맡았는데 중후하고 형광등처럼 넓게 아우르는 음색이 돋보였습니다.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을 꽉 채우는 듯 느껴지더군요.

 

능청스러운 바람둥이 만토바 공작을 맡은 테너 소츄의 소리는 극 초반부 가늘게 들려 오케스트라에 자주 묻혔는데, 지날수록 안정적인 고음이 뻗어 나왔습니다. 그의 대표 아리아 'La donna e mobile'를 부를 때는 최고 컨디션이었던 거 같았어요. 아마 이 곡을 위한 전략이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리골레토의 딸로서 질다 역을 맡은 소프라노 스테파니 마리아 오트의 음색은 편안하게 들렸어요. 기교가 많은 극고음에서도 맑고 고우며 오케스트라 연주를 뚫고 청중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줍니다. 사랑을 위해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순수함과 누구의 뜻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까지 겸비한 모습을 잘 보여주죠.

 

 

 

[빅토르 위고의 <환락의 왕> 표지]

 

 

 

3.

어디선가 들어본 아리아들이 많아 지루하지 않고 즐거웠습니다. 멜로디는 대체로 아름답지만, 아리아와 레치타티보를 아우르는 스토리는 비극으로 흐르고 있어 안타까워요. 만토바 공작의 'Questa o quella (이 여자나 저 여자나)'의 전주곡 역시 많이 들어봤습니다. 얼마 전 마지막 방송을 했던 <더 콘서트>에서 오페라 유명 아리아를 소개하는 코너의 전주곡으로 쓰여 더욱 익숙했죠. 여성에 대한 만토바 공작의 생각을 알 수 있습니다.

 

감명 깊게 들었던 아리아는 질다가 가난한 대학생으로 알고 있는 만토바 공작이 떠난 후 부르는 곡, 'Caro nome cheil mio cor (사랑스러운 그 이름이 나의 마음을 세차게 두드렸네)' 입니다. 첫사랑에 대한 설렘과 앞으로의 기대가 한껏 묻어있어요. 특히 고음에서 장식음이 연이어 나오는 하이라이트에서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습니다.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널리 알려진 '밤의 여왕의 아리아' 착한 버전인가 싶었죠.

 

들뜬 분위기였던 1막에서 작품 속으로 이끄는 리골레토의 'Pari siamo (우리는 모두 같은 처지)'는 바리톤 특유의 힘으로 권력자 만토바 공작의 비유에 맞추어 사는 자신을 비웃는 귀족들에게 퍼붓는 곡입니다. 그들 역시 공작에게 잘 보이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기 때문이죠. 자신들의 딸이나 부인마저 농락하도록 부추기는 리골레토가 싫었고 질투 났을 뿐입니다. 처지에 대한 한탄과 씁쓸함이 묘하게 어울립니다.

 

 

 

[사랑에 빠진 질다의 아리아, 'Caro nome (그리운 그 이름)'

 

 

 

4.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을 외국배우로 썼는데 그 정도 기량은 우리나라 사람들로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오페라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일반 대중이 고품질 공연을 좀 더 싼 가격에 접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우리나라 성악가들이 무대에 더 많이 올라갈 수 있는 기회제공도 할 수 있겠죠.

 

성악을 취미로 배우는 저 역시 파바로티나 안나 네트렙코, 요나스 카우프만 등 잘 알려진 사람들만 알 뿐 오늘 출연한 분들은 모릅니다. 그럴봐에야 페스티벌이 아닌 각 공연단의 전략적 무대에 초점을 맞추어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죠. 하지만 이건 공연 준비 이면까지 속속들이 모르는 일반 청중인 제 개인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왕과 귀족들, 부유층에 대한 신랄한 풍자가 많이 표현되지 않아 아쉬웠어요. 지금 시대의 관객에게도 뭔가 콕 집어 말할 요소가 많은데 오페라 아리아를 들려주기에 바빠 보였습니다. 특히 질다가 죽을 때의 리골레토 감정 표현은 '아버지로서 과연 저 정도뿐일까' 싶게 어중간했어요. 넋이 나가거나 미쳐버릴 듯 한데 말이죠.

 

만토바 공작에게 농락당한 소중한 마음이 짓 밝힌 데에 대한 분노 표출이 약했습니다. 더 나가 딸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탓하기도 할 텐데...... 아쉬웠습니다. 그만큼 이 극은 왕이나 귀족이 아닌 일반 시민의 마음을 리골레토가 얼마나 대변해줄 수 있느냐에 성공이 달린 듯 합니다.

 

 

 

[빅토르 위고도 찬사를 보낸 4중창, 'Bella figlia dell'amore (아름다운 아가씨여)']

by 왕마담 2016.06.21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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