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3년만에 정규 앨범을 발표하고 전국 콘서트 투어를 하는 이문세의 <2015 Theatre 이문세>를 관람했습니다. 문세형의 노래를 처음 들었던 건 초등학생이었죠. 부산에 있는 친척집에 놀러 갔을 때 라디오에서 나오는 <난 아직 모르잖아요>를 뜻도 모르고 흥얼거렸습니다.

 

당시의 기억은 이제 너덜너덜해진 스케치북같은 생각이 들어요. 뎃생이 모두 지워져 버려 이제 그 흔적만 희미하게 남은 듯 합니다. 그 느낌만은 강렬하죠. 그 노래를 부른 가수가 이문세라는 사실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알게 됐습니다.  콘서트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생각 났던 건 희미한 유년 시절의 기억이죠.

 

그 시절을 듣고 싶었습니다. 크지 않은 마당에서 홀로 어디로 뻗어야 할지 모를 손을 내밀며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낯선 나무 한 그루가 연상됐던 순간 말이죠. 그래서 노래를 듣는다기 보다는 추억과 그 시절의 어떤 순간을 듣는 콘서트가 될 거 같았습니다.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2.

 

노래로 호감을 샀던 그였지만, 별밤지기로서의 목소리가 더 익숙하죠. 그 덕분인지 토크쇼 MC로서도 친숙합니다. 가수보다 엔터테인먼터가 더 어울리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방송에서 사라지고 소식듣기도 어려워졌어요. 알고 봤더니 갑상선 암에 걸려 수술과 치료를 병행하고 있었습니다.

 

''이라는 병 중에서는 그나마 가벼운 축에 들지요. 하지만, 제가 아는 변화연구소장님인 구본형선생님은 갑상선 암에서 전이되어 결국 돌아가셨습니다.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라는 영화의 실제 주인공 테너 배재철씨가 갑상선 암 수술 중 목소리를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는 이야기를 담았죠.

 

가수로서 갑상선 암 수술은 두려운 일이라 짐작됩니다. 문세형님도 똑같았겠죠새앨범 발매와 콘서트를 앞두고 여러 방송에 나온 그는 예전보다 더욱 편안해 보였습니다. 대신 자제하는 건지 몰라도 에너지는 감소된 듯 보였어요. 아픈 모습을 숨기려는 모습은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3.

 

콘서트가 열리는 LG아트센터는 다른 공연으로 몇 차례 방문했던 적이 있었죠. 가수의 공연은 처음인 듯 해요. 규모가 큰 스포츠 경기장보다 훨씬 낫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했어요. 뮤지컬도 자주 열리는 공연장이기 때문입니다. 잠실 주경기장과 같이 크면 집중이 잘 되지 않기도 하죠.

 

예상을 못했었는데 생각보다 콘서트장에 제 또래나 나이 많은 분들이 많았습니다. 절정기 시절 그의 팬들 역시 나이 들어간다는 걸 알 수 있는 듯 해요. 작년 서태지 컴백 콘서트에서도 젊은 사람들보다는 제 또래가 가장 많았었는데 뭔가 느낌이 같이 늙어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VIP석 예매 대신 3층을 예매했어요. 어차피 마이크를 사용하는 공연인데 뭐 어떠랴 싶었죠. 결과적으로 공연 역시 VIP석의 1층에서 보는 게 나은 듯 합니다. 3층은 방관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같이 노는 분위기가 어려워요. 제 옆에 계신 분은 시작부터 끝까지 팔짱끼고 시무룩했습니다. 하지만, 시니크하고 싶다면 3층은 좋은 선택이 될 거 같아요.

 

 

[옛사랑]

 

 

4.

 

신곡과 인기 많은 옛노래가 적절히 섞여 있었습니다. 특유의 입담을 선보이는 토크 역시 빠지지 않네요. 분위기 있는 유쾌함이라고 할까요? 느리고 슬픈 음악에서는 지난 추억에 물씬 빠질 수 있는 여유를 빠르고 신날 때는 같이 일어나 놀 수 있는 분위기를 선물했습니다.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를 부를 때는 분위기 있는 가로수가 내려오며 분위기를 잡아요. 곡이 끝날 때 즈음 또 하나의 가로수가 내려와서 '? 왜 이제 내려오지?' 싶었는데 곧 이유를 알았습니다. 두 가로수가 합쳐지면서 이문세씨의 얼굴이 되더라고요.

 

또 기억에 남는 아이디어가 돋보인 곡은 <이별 이야기>였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인터뷰식으로 한 소절씩 노래를 동영상으로 남겨 보여 주었어요. 콘서트 이전에 이미 만들어졌습니다원곡의 여자 가수인 고은희씨가 나와 첫 소절을 부를 때 살짝 소름이 돋았습니다.

 

 

 

 

5.

 

전혀 생각지도 않았는데 통기타 하나로 <옛사랑>을 불러 줄 때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흐르더군요. 예상치 못하게 가슴 속에서 뜨거운 울컥거림이었습니다. 이문세씨의 다른 많은 곡들이 분위기 있을 때 들으면 항상 가슴 속에서 뜨거운 무엇이 올라오는 듯 했어요.

 

<댄싱9>팀이 나와 다른 반가움이 느껴졌어요. 춤 역시 좋아해서 시즌2 갈라 콘서트 공연까지 쫓아가서 봤었습니다. 발라드 음악에 맞춘 발레와 현대 무용이 어우러진 무대는 잘 어울리더군요. 코러스도 보통 노래만 할텐데 시종일관 음악에 맞추어 춤추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마지막 앵콜곡 <붉은 노을>까지 몸을 사리지 않으며 같이 뛰고 같이 흐느끼며 노래하는 모습 속에 여전한 열정이 보였어요. 갑상선암 수술이라는 사실에 걱정했던 팬들에게 '저 아무 이상없어요.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무대에서 직접 보여주는 느낌이라 아트홀을 나와서도 코끝이 찡했고 가슴에 울림이 남았습니다.

 

 

[커튼콜이자 앵콜송(이때는 사진찍어도 된답니다^^)]

 

(첫 작성일: 2015년 4월 29일)

by 왕마담 2015.06.13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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