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없어진 미도파 백화점 전산실이 첫 직장이었습니다. 군 제대 후 변변찮은 기술도 없었지만 어떻게든 취업하고 싶어 은사님을 졸라 겨우 들어갔어요인력 회사를 통해 취직했으나 '나도 일한다'는 마음에 1년마다 재계약해야 하는 파견직이어도 거리낄게 없었어요.

 

1년 이상 근무하니 월급이 낮고 안정적이지 못해 불안하고 답답했습니다. 당시 마음을 달래준 이들 중 하나는 메탈리카였어요. 갑갑한 마음을 통쾌하게 날려주는 강렬한 사운드에 흠뻑 빠졌죠. 그들의 음반을 B자 테이프로 모두 모았습니다. Play No.1 'Master of puppets', 'Enter sandman', 'One', 'Battery', 'Nothing else matters' 그리고 무엇보다 'Orion' 이었죠.

 

강렬한 음악 이상의 꽉 찬 느낌과 들으면 흔들거리는 머리를 유도하는 멜로디 라인, 그리고 제임스 헷필드의 거친 보컬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오후 3시 출근해서 전산실 직원이 모두 퇴근한 저녁 8시, 홀로 백화점 영업 종료에 맞추어 전산데이타 정리와 백업을 하고 나면 밤 10시가 훌쩍 넘었어요.

 

사무실을 나와 맞는 제기동의 밤거리는 낯설었습니다. 무엇이든 좀 더 의미로운 일을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맡겨지지 않는 기회와 잡기 위해 노력을 해도 늘 멀리 있는 그 녀석 때문에 마음도 쉽게 무거워졌어요. 그럴 때면 테이프에서 들려오는 메탈리카의 음악들이 허전한 퇴근길 동무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한참 지나 바쁜 일상 속에서 사라졌던 그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우리나라에 벌써 4번째 내한공연이었던 2017 1 11일 고척 스카이돔으로 향했죠. 몇 년 전 개봉했던 <메탈리카 스루 더 네버>를 보면서 '직접 라이브 들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현실이 되려고 했습니다. 전화를 받기 전까지.

 

고객사 서비스 Open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연락이었습니다. 여기저기 전화가 빗발쳤어요. 가볍게 무시했습니다. 지금이 어떤 상황인데. 그런데 곧 문자로 '대신 연구소장님과 개발팀원이 고객사 들어가니 지원 요청합니다'라는 사업부장님의 메시지는 지나칠 수가 없었어요.

 

온갖 생각들이 지나갔습니다. 그때처럼 마음이 점점 무거워졌어요. 연구소장님과 개발팀원은 이미 고객 사이트로 출발했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맡기고 빠질까 싶은 유혹은 메탈리카의 음악처럼 강했어요. 가지 않았는데 혹시 심각한 문제라면 앞으로 사태가 어떻게 커질지 짐작되었습니다.

 

화가 치밀었어요. 내일 처리해도 될 일을 굳이 그 밤에 들어오라는 고객, 그 정도 일도 무마시키지 못하고 도리어 더욱 일을 키워버리는 영업사원, 개인 사정도 챙겨주지 못하는 상사들..... 곧 펼쳐질 무대를 기대하며 분위기가 고조되다 못해 들끓는 만팔천여명이 모인 그 곳에서 외톨이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공연 시작 10분을 남기고 다시 나오는 길, 좋아했던 그들의 음악이 떠올랐어요. 아이러니한 건지 모르겠지만, 좀 더 좋은 일자리를 구하고자 절박했던 시절도 생각났습니다. 등 뒤의 스카이돔에 그때 추억이 있는 거 같았죠. 다시 가지 못할 순간들처럼. 그리고 일터에서 집에 간 시간은 새벽 4시였네요. 헤비메탈같은 일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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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감사한 마음으로, 지상 Dream

http://wangmada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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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안녕하세요. 왕지상입니다. 오래간만이지요? 편지가 뜸했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보낸다는 약속은 못할 거 같지만, 끌리는 흥미를 쫓아 열심히 놀고 있겠습니다. 가끔씩 그 소식 나눌게요. 그러나 저러나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Metallica의 가장 좋아하는 곡, <Orion>]

 

by 왕마담 2017.01.24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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