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다수의 스포가 포함된 리뷰입니다.

저도 영화 감상 전 스포를 증오하는 바, 아직 보지 못하신 분 중

스포를 싫어하시는 분들은 읽지 않는 게 마음 건강에 좋을 것입니다.

 

 

 

 

강렬했던 넘버, <나는 나는 음악>

 

공연을 봐야 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음악은 바로 <나는 나는 음악>이라는 넘버였습니다. 몇 번을 들어도 좋더라고요. 특히, '나는 장조, 나는 단조, 나는 화음, 나는 멜로디~' 라는 부분은 모차르트의 유쾌한 천재성을 그대로 나타내는 듯 보였습니다. 본인이 음악 그 자체라는 말을 하다니.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를 처음 접한 건 아마 영화 <아마데우스>를 통해서였습니다. '살리에르'라는 인물을 통해 본 모차르트는 비록 천재이지만, 자신의 재능만 믿고 여기저기 설쳐대는 악동으로 그려졌지요. 그 이미지가 어찌나 강했던지 심각한 모차르트는 잘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살리에르가 나오지 않아 생소한 느낌이 들었어요. 모차르트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사람 중 하나일텐데. 뮤지컬에서는 살리에르 만큼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부각시켜 주는 이가 있었습니다. 바로 '아마데'이죠. '볼프강'이 인간으로서의 모차르트를 말한다면, '아마데'는 음악에 대한 천재성을 대변하고 있죠.

 

 

[임태경의 <나는 나는 음악> 2012년 공연 프레스콜]

 

 

 

대사교와의 충돌, <모차르트를 찾아라>, <어떻게 이런 일이>

 

그 동안 봤던 대형 뮤지컬은 대게가 웨스트엔드나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작품들이었습니다. <레 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시카고>, <캣츠>, <지킬 앤 하이드> 등이 그렇죠. 그 외에는 국내 창작 뮤지컬인 <빨래> <당신이 잠든 사이> 등이었는데, 처음으로 유럽(영국이 아닌)의 공연을 봤습니다.

 

특별히 유럽의 느낌을 주는 건 없었습니다만, <모차르트>가 음악의 도시 오스트리아에서 만들어 졌다는 점은 상징성이 있어 보였어요.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난 그는 6살 부터 아버지 레오폴트와 누나 나네를과 함께 연주 여행을 다녔다고 합니다. 각지에서의 연주회는 호평을 받았고 음악적 체험 또한 남달랐다고 하네요.

 

대사교는 모차르트를 이용하기에 바빴던 듯 합니다. 그와의 충돌이 잦자 잘츠부르크를 떠나 빈에 정착하려는 결심을 하죠. <모차르트를 찾아라>는 대사교와의 관계를 알 수 있는 넘버입니다. 대사교의 <어떻게 이런 일이>를 들으니 모차르트를 질투하고 시기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어요.

 

 

 

 

든든한 후원자 발트슈테텐 남작부인, <황금별>

 

뮤지컬 배우 차지연씨의 입소문 그 전부터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특히 얼마 전 막을 내린 <뮤지컬 카르멘>의 호평으로 그녀에 대한 관심이 생겼어요. 이번 출연자에서 그녀의 이름을 발견했을 때 특히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왜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나올까 궁금했죠.

 

잘츠부르크를 떠날 결심을 한 모차르트와 부딪히던 아버지 레오폴트를 설득하는 곡이 바로 든든한 후원자 발트슈테텐 남작부인의 <황금별>입니다. 차지연씨의 목소리를 듣자 마자 가슴이 뜨거워지며 눈시울이 붉어졌어요. 그녀의 육성에는 뭔가의 힘이 있는 듯 느껴졌습니다.

 

성량이 좋은 것 뿐만 아니라 느낌을 주어 가슴을 울리는 힘이었어요. 옛날 이야기를 하듯 시작하는 도입부분부터 다른 넘버에 비해 유독 푹 빠졌습니다. 마치 <맨 오브 라만차> <Impossible Dream>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죠. 그제야 왜 차지연씨가 이 조연 역할을 맡았는지 이해가 갔습니다. 조연이긴 하지만 임팩트는 주연 못지 않거든요.

 

 

[신영숙의 <황금별>, 저는 차지연씨를 봤었는데 영상이 없네요~ 아숩, 신영숙씨도 대박]

 

 

불멸의 명작이 쏟아지던 빈, <나는 쉬카네더>, <여기는 빈>, <사랑하면 서로를 알 수 있어>

 

그의 개인 역사를 보면 자유롭고 활기 찬 도시 빈에서의 창작활동은 명작이 잇달아 나오던 시기였습니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대성공에 이어 <돈 조반니>는 프라하에서 초연되어 그에 못지 않은 인기를 얻게 되죠. <나는 쉬카네더> <여기는 빈>은 당시의 유쾌함을 음율로 보여주는 듯 합니다.

 

창작 뿐만 아니라 콘스탄체와의 사랑을 키우던 시기 역시 이때지요. 그녀의 부모는 모차르트와 그녀를 엮으며 돈을 뜯어 내려는 도구로 보지만, 사랑에 대한 진심을 키우던 그들은 결혼까지 하게 됩니다. 결혼식 축가로도 불리는 <사랑하면 서로를 알 수 있어>넘버가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보이네요.

 

 

[당일 캐스팅: 임태경, 임정희, 차지연 등]

 

 

 

역설적인 행복 속 잉태된 불행의 시작, <얼마나 잔인한 인생인가>, <난 예술가의 아내>

 

역사적 사건의 기록에는 잘츠부르크에서의 생활하던 중 파리로의 음악 여행에서 어머니 마리아의 죽음을 맞이 합니다. 뮤지컬에서는 빈에서의 본인 공연 중 죽음을 맞이 하며 <얼마나 잔인한 인생인가>를 통해 삶, 인간 그리고 세상에 대한 회의를 느끼며 고독을 부르죠.

 

모차르트 뿐만 아닙니다. 아내 콘스탄체 역시 <난 예술가의 아내라>는 넘버를 통해 구속받는 삶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하고 자유롭겠다는 마음을 표현하죠. 가사에는 오페라 가수로 성공한 언니와 달리 연습을 하지 않아 직접 예술가가 되지 못한 반성도 포함되어 있어 인생을 즐기겠다는 말에도 애잔하게 들립니다.

 

일상을 구성하는 요소에는 분명 순간 순간 즐거운 일들도 가득차 있어요. 그것들 만을 쫓으며 살려면 어떤 직업적 대성을 이루기에는 묘연하죠. 콘스탄체 역시 오페라 가수가 될 수 있었던 듯 합니다. 레슨과 연습 대신 샴페인을 선택하며 순간의 삶을 즐겼지요. 나 역시 그런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정선아씨의 <난 예술가의 아내>]

 

 

궁핍의 만년과 고뇌, <내 운명 피하고 싶어>, <왜 나를 사랑하지 않나요>

 

<나는 나는 음악>의 넘버를 부르며 '볼프강' '아마데'를 거울의 문에서 데리고 나옵니다. 상징성인 듯 한데, 내면 속의 천재성을 끄집어 내는 거죠. 아시겠지만, '볼프강 모차르트'는 임태경씨가, '아마데 모차르트'는 아이가 연기합니다. 인간처럼 살고 싶은 역할과 천재성의 충돌을 상징으로 잘 보여주었습니다.

 

섬뜩해 보이는 장면 역시 있더군요. '아마데'의 천재성은 '볼프강'의 인간적 삶에 대해 전혀 상관하지 않습니다. 잉크가 다 떨어지자 '볼프강'의 피로 음악을 쓰는 장면은 그의 말년을 예측하여 보여주죠. 인생살이와 무관하게 음악에 빠지는 자신을 부정하지만 어쩔 수 없이 펜을 들을 수 밖에 없는 심경을 넘버 <내 운명 피하고 싶어>에서 잘 보여줍니다.

 

음악적 성공이 곧 부로 이어지는 건 아니었어요. 모차르트와 콘스탄체 모두 사치스러운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돈 마련을 위한 여러 시도가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했지요. 책을 보니 이미 고도의 천재적 성향의 완성을 보여준 모차르트 만년의 예술을 일반 시민들이 이해할리가 없었다는 걸 보니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합니다.

 

아버지 레오폴트의 죽음에 대한 소식이 그를 덥치며 점점 더 생기를 잃어갑니다. 누구보다 인정받고 싶었던 레오폴트는 모차르트에게 의미가 남다르죠. <왜 나를 사랑하지 않나요>를 들으며 너무나 자주 부모님과 자식의 사랑에 대한 표현이 달라 이해되지 않는 것을 보며 씁쓸함을 느꼈습니다.

 

 

[벌써 15년이 되었다니, 뮤지컬 포토존]

 

 

 

그리고 마지막, <모차르트! 모차르트!>

 

1971 12 5일 그의 나이 35세 마지막 작품 <레퀴엠>을 미완성으로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나죠. 천재라 불리던 한 사나이의 음악과 같은 극적인 삶을 대표하는 곡, 바로 <모차르트! 모차르트!> 입니다. 긴장감있는 전주와 함께 느리고 작게 시작하여 웅장한 느낌을 주며 마무리 되는 느낌이 작품 전체를 대표하는 듯 보였어요.

 

이번 작품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콘스탄체의 아리아는 그 동안 못했던 소비하는 삶을 이제서라도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살고 있는 제 모습을 많이 돌아보게 했어요. 재미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싶은 걱정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뜬금없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만큼 내 일상의 의무 역시 그 만큼의 애정을 쏟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천재를 닮고 싶은 것인지 그들의 자유분방한 삶을 동경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이 모차르트라는 작품은 그가 '천재인지 범재인지 상관없이 누구나 삶이란, 고뇌에 가득찬 여행이야' 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듯 합니다.

 

그러니 어느 누군가를 동경할 필요가 없지요. 지금의 삶 자체를 열심히 산다는 거 자체가 하나의 음악이 될테니까요.  우리가 되어 화음이 되고 합창이 되지 않을까요? 모차르트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은 아마도 그에게 음악적 영감의 원천이 되었을 것입니다. 삶 속에서 그것들 모두가 음악적으로 표현된 게 그의 작품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네요. 재미와 함께 깊은 생각까지 할 수 있었던 작품 모차르트였습니다.

 

 

[4회 뮤지컬 어워드 축하공연 중 <모차르트 모차르트>와 <내 운명 피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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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10일 작성된 포스팅

by 왕마담 2015.06.10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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