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 배우들의 포스터^^]

 

 

뮤지컬 동호회에서 <오 당신이 잠든 사이>의 넘버 중 하나 인 '닥터리의 노래'를 불러 봤어요. 배우면서 '어? 봤었는데 왜 생각이 하나도 나지 않지?' 의문스러웠습니다. 스토리와 넘버들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고 주연 인물들 중 하반신 마비를 안고 있는 '최병호'씨 외 다른 캐릭터 역시 전혀 떠오르지 않았지요.

 

'느낌이 별로였었나?' 싶었는데 재미 없으면 앞으로 보지 않을 작품으로 기억에 선명하게 남았을 것입니다. 좀 더 기억을 더듬어 보니 전에 봤던 뮤지컬 <선덕여왕> 이라는 작품의 규모와 비교했기 때문인 듯 했어요. 오케스트라도 없었고 무대 셋트 역시 변변치 않았습니다. 또한, 유명한 배우들도 없었지요.

 

비교가 가져온 실망때문이었을까요? 초대하여 같이 갔던 친구에게도 괜시리 미안한 감정을 들었다는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쓸데없이 신경을 썼는데 작품이 어찌 재미가 있었을까?

 

다시 보기로 마음 먹는 데에는 동호회에서 이 작품을 공연하기로 한 이유가 가장 컸습니다. 보고온 친구들의 평 역시 하나같이 극찬이 이어졌지요. <김종욱 찾기>, <그날들>의 장유정 연출가의 데뷔작이라는 점도 호기심을 다시 갖도록 만들었습니다.

 

예전과 달리 공연을 감상하는 마인드가 변화된 요즘 다른 작품과 비교 없이 다시 보면 어떤 느낌을 받을지도 궁금했습니다. 처음 봤을 때의 무감각했던 내 마음이 어찌 변할지 또한 흥미로웠지요.

 

대학로 예술마당 1관의 무대 셋트를 보자 예전 영등포 신한카드 CGV 아트홀에서 봤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의식도 없이 '~ 그 때와 비교하면 무대가 한층 더 조잡해졌구나' 싶었지요. 예전에는 제법 크고 깔끔한 무대였는데 비해 소극장의 엉성해 보이는 내부 인테리어에 ... 다시 실망감이 슬금슬금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습니다.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카톨릭 재단의 무료 병원이라는 무대 속 환자들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담았습니다. 602호 병실의 환자들은 각자 버린 아비와 버려진 딸의 해후, 미래를 약속한 사람과의 이별, 사랑하는 사람에게 채인 이야기, 잘 나갔던 한 때에 대한 미련 등 많은 아픔을 안고 있지요.

 

 

[커튼 콜 모습, 신나는 ... 최병호의 '홍홍홍'을 들을 수 있어요^^]

 

TV 생방송이 예정되어 많은 기부금을 기대하는 베드로 신부는 병원에 부임한지 얼마되지 않습니다. 인터뷰 전날 방송되어야 할 최병호씨가 없어진 것을 알고 난감해 하며 부르는 독백은 뮤지컬 전체를 통털어 백미입니다. 진지한 표정에 코믹한 노랫말과 춤으로 하느님에게 죄를 짖는다고 싹싹 비는 모습이 너무나 매력적이지요. 한참을 웃었습니다.

 

반면 최병호씨와 그의 딸이 해후하는 장면에서는 그야 말로 눈물 바다를 만들더군요. 예전의 신파적인 모습이 아니고 대사를 눈물 먹듯이 힘겹게 하는 장면과 침묵같은 고요에서는 가슴이 찡해져 버렸습니다. 몰입도가 어찌나 높은지 관객들의 숨소리까지 들리는 듯 했습니다. 해외 라이선스로 열리는 대형 뮤지컬에서 많이 느끼지 못했던 먹먹함을 느꼈지요. 물론 엄청 울었습니다. 엉엉~~~

 

극 전체를 유쾌하게 이끌어 가는 닥터리는 여러 배역을 소화합니다. 병원의 의사로서, 길례 할머니의 첫사랑 소년 편지 배달부,  숙자의 사랑을 배신하는 반전을 보여주는 바람둥이의 모습이지요. 역할 변신을 꾀할 때마다 관객들과의 소통을 통한 이벤트도 있으니 배려가 많은 공연 같았습니다. 참고로 손발이 오그라 든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무엇보다 젊은 나이를 잊은 채 치매 할매역을 제대로 소화해낸 김국희씨의 프로페셔널한 연기 모습은 잘 잊혀지지 않네요. 또한, 정숙자의 어린 시절 댄서의 모습에서는 열정적인 탱고를 보여주며 더욱 Active한 극을 만들어 갑니다. 이야기는 최병호씨를 찾는 미스테리한 느낌이지만, 과거와 현재를 세련되게 넘나들며 뭉클한 사연들을 보여줍니다.

 

사실 뮤지컬에 푹 빠지게 만든 작품들은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과 같은 대형 뮤지컬들 때문입니다. 여전히 아직 보지 못한 유명한 공연들은 가슴 설레며 기다리기도 하지요. 얼마 전에는 <맨 오브 라만차>를 휴가까지 쓰고 봤습니다. 

 

중소형이며 순수 창작 뮤지컬인 <오 당신이 잠든 사이>를 보며 감동을 만들어 내는 기제는 규모의 차이가 아니라는 점을 많이 느꼈습니다. 찾아보면 제가 아직 보지 못한 작은 공연들 많이 있지요. 물론 아마츄어 냄새가 물씬 풍길 수도 있지만 열정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을 감상하는 재미는 남다를 듯 합니다.

 

 

[장기 공연 하며 커튼콜도 변화 있는 듯, 예전에는 배우들이 인사하며 대표곡을 불렀다^^]

by 왕마담 2013.12.09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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