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다수의 스포가 포함된 리뷰입니다.

저도 감상 전 스포를 증오하는 바, 아직 보지 못하신 분 중

스포를 싫어하시는 분들은 읽지 않는 게 마음 건강에 좋을 것입니다.

 

 

 

0. 조승우 파워

이루지 못할 꿈을 노래하는 돈키호테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를 관람했습니다. 작년에도 봤기에 올해는 볼 생각이 없었으나 배울 게 많은 반듯한 동생에게 선물하기 위해 골라 보니 이만큼 적당한 공연을 찾을 수가 없었죠. 문제는 '과연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티켓 파워 조승우씨가 출연하거든요. <지킬 앤 하이드>, <헤드윅>과 함께 그의 3대 작품(근거 없는 제 생각^^) 중 하나라 예매하기 무지하게 어렵습니다. 예전에 <헤드윅>은 티켓 오픈 3분 만에 매진, <지킬 앤 하이드>는 동료들의 도움을 구했는데도 2층 구석 자리밖에 구할 수가 없었죠.

 

작년 조돈키를 볼 때는 휴가를 내서 사람이 덜 몰릴 평일 낮공연을 봤습니다. 이번에는 주말임에도 작년보다 조금 수월한 편이었죠. 티켓 오픈한지 약 1시간 정도 지났는데 1 VIP석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좋은 좌석은 수두룩하게 나가있더군요.

 

그런 인기는 조승우씨만의 파워는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좋은 작품이 받쳐주어야 배우도 살겠지요. 원작인 고전 소설도 그렇겠지만, <맨 오브 라만차>는 이상적 꿈과 현실적 갈등으로 대비한 아리아와 스토리가 적절하고 배우들의 뜨거운 연기로 유쾌한 재미와 뭉클한 감동을 받습니다.

 

 

[돈키호테의 조승우씨, 사진출처:구글]

 

1. 돈키호테의 무대

극장에 들어서면 음침한 동굴과 같은 지하 감옥이 맞이해요. 시작 전 이 무대로 죄수 분장한 배우들이 하나 둘 나와 분위기를 잡습니다. 무대를 가리는 막이 없어 자리에 앉으면 9미터에 달하는 단순하게 웅장한 동굴 지하 감옥에 시선이 이끌리죠. 푸른 조명까지 비추고 있으니 을씨년스러웠습니다.

 

연출가 데이비드 스완은 무대 디자이너 서숙진씨에게 '깊게 파인 우물 같은 공간'을 요구했다고 해요. 좁고도 답답한 느낌이 들도록 만드는 게 중요한 포인트였습니다. 초연 때는 너무 어두워 세심하게 만든 돌 조각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고 하네요. 극이 거듭될수록 조금씩 밝아져 화강암스럽게 만든 벽이 보입니다.

 

벽 중앙에는 공간 변화에 맞추어 마치 큰 TV와 같은 역할을 해요. 벽이 내려가며 여관이나 빨랫터, , 집 등에 맞춘 배경이 나타납니다. 오프닝 장면에서 세르반테스가 감옥으로 내려오는 데, 밖에서 안으로 강렬한 빛이 비춰요. 해당 신은 조명 효과 하나 만으로 '세상과의 단절' 이라는 상징을 보여줍니다.

 

 

[돈키호테의 무대, 출처: 구글]

 

2. 극 속의 또 다른 극, 극중극

출전을 알리는 듯한 팡파레로 시작하는 서곡이 참 좋습니다. 뮤지컬 서곡은 세 가지로 나뉘어지는 듯 해요. <모차르트> 처럼 독립적인 곡을 사용하거나, 테마 아리아의 멜로디를 변주한 <캣츠>같은 작품도 있습니다. <맨 오브 라만차>는 대표 넘버들을 이야기 흐름처럼 보여주죠. 종류가 어떻든 작품과 동떨어진 느낌을 주지는 않아요.

 

이 작품의 극중극 형식은 큰 특징입니다. 행정가로 근무하던 세르반테스(조승우씨)는 교회에 세금을 징수하려다 '신성모독'으로 감옥에 잡혀 오죠. 죄수들만의 모의재판에서 현실을 모르는 시인, 이상주의자라는 죄목으로 기소당합니다. 이에 '이상 없는 삶은 의미가 없다'는 변론을 또 다른 극으로 보여주죠.

 

작년보다 업그레이드 연기를 펼치는 조승우씨에게 놀랐습니다.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는 넘버 <맨 오브 라만차(작품 제목과 동일한 아리아)>는 세르반테스가 극을 펼치기 위해 돈키호테로 변장하며 부르는 아리아죠. 모험 나가는 방랑 기사의 당찬 포부를 담았기에 신나며 호방합니다.

 

작년에는 노래할 때는 본인 목소리로 불렀는데, 이번에는 점차 노쇠한 돈키호테로 톤을 바꾸면서 대사와 노래를 부르는데 저를 포함하여 다른 관객들의 감탄을 자아냈어요. 많은 아리아 또한 돈키호테가 부르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연기합니다. 그는 점점 더 캐릭터에 푹 녹아드는 것 같습니다.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로 변장하며 시작을 알리는 <맨 오브 라만차>, 조승우씨와 이훈진씨]

 

3. 전염되는 굳건한 의지, 이룰 수 없는 꿈

풍차를 보고 괴물로 오인하고, 여관을 보고 성으로 생각하고, 주인을 성주로 보는 못 말리는 돈키호테의 얼빵함은 부엌데기 알돈자를 보고 극에 달하죠. 그녀는 여관에서 허드렛 일을 하며 가끔은 몸도 파는 여인인데 레이디 둘시네아로 보는 그의 망상은 끝판왕입니다.

 

1막에서 돈키호테가 하는 행동들은 몽상으로 보여요. 출연 캐릭터들인 알돈자(전미도씨)와 여관 주인(황만익씨), 까라스코(배준성씨) 등의 시선이 미친 할아버지 정도로 보는 듯 합니다. 산초(정상훈씨)도 그 사실을 알지만, 그저 받아들이기에 친구가 될 수 있었겠죠? 좌충우돌 개그는 달인 수준입니다.

 

허무맹랑할 수도 있는데 의미를 잃지 않은 웃음을 선물하죠. 그의 '믿는 대로 보인다'는 신념은 점차 무대는 물론 객석까지 다가옵니다. '내가 레이디라니~' 알돈자는 어처구니 없어하죠. 둘시네아가 아니라며 돈키호테에게 따지는 대사들은 ''를 말하고 있어 무대 속으로 빨려 드는 듯 몰입됐습니다.

 

이때 나오는 작품의 주제를 담은 아리아, <이룰 수 없는 꿈>은 긴가민가하는 그녀의 마음을 녹여 버립니다. 제 마음까지. 이미 붉어진 눈시울은 대성통곡이 될 뻔 했어요. 이때부터 돈키호테의 행동들은 망상이 아닌 진실로 보입니다. 그의 굳건한 의지가 전달되는 순간이죠.

 

 

[작품의 주제를 담은 아리아, <이룰 수 없는 꿈>, 정성화씨 및 합창 버젼]

 

 

4. 알론조를 구원하는 둘시네아

돈키호테 덕분에 스스로를 귀히 여기려던 알돈자는 다시 현실에 주저 앉습니다. 호의를 베풀려던 노새끌이들에게 겁탈을 당하죠. 군무로 표현되는데 작년보다 더욱 직설적입니다. 이제 꿈놀이는 그만하라며, 절규하듯 부르는 <알돈자> 속에는 믿어보려는 그것이 철저하게 파괴되고 농락당한 좌절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작품은 급속도로 긴장과 엄숙함 속에서 마지막까지 달려 나갑니다. 돈키호테마저 거울의 기사에게 반강제적으로 현실을 바라볼 수 밖에 없게 되며 다시 노인 알론조가 되어 죽음을 기다리죠. 그저 즐거운 꿈을 꾸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때 찾아오는 알돈자는 그에게 새로운 꿈이 돼죠. 입장이 바뀝니다.

 

돈키호테가 부른 <둘시네아>를 그녀 자신이 부르죠. 또한 그의 기억을 깨우기 위해 <이룰 수 없는 꿈>을 서툴게 부르는 그녀의 호소를 알론조가 받아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으리라'를 부를 땐 알고 있었는데도 희열이 느껴집니다.

 

 

[좌절한 알돈자가 부르는 아리아 <알돈자>, 김선영씨]

 

5. 재판 결과

이 작품은 CBS TV 드라마 <, 돈키호테>가 출발점이었어요. 데일 와써맨의 각본으로 연극이 만들어진 후 연출가 알버트 마르의 제안으로 작곡가 미치 리, 작사가 조 대리온과 함께 뮤지컬로 만들어집니다. 1965 11 22일 뉴욕에서 초연할 때는 일반 관객의 호응이 저조했지만, 입소문이 번져 가며 흥행하죠.

 

서곡과 주요 아리아 속에서 들리는 스페인 특유의 플라멩코 리듬과 멜로디는 음악 만으로도 돈키호테의 무대 라만차를 떠올리게 합니다. 오페라 <카르멘>처럼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 흥겹기도 하고 집시 특유의 한을 보여주는 듯싶어요.

 

극이 끝나고 세르반테스는 재판을 받기 위해 다시 계단 위를 오를 때 죄수들이 <이룰 수 없는 꿈>을 합창합니다. 이상주의자로 기소된 동굴 감옥의 모의 재판 결과였죠. 돈키호테와 둘시네아에게 받은 여운이 사라지지 않은 마음으로 공연장을 나오며, 보여주지 않는 세르반테스의 재판 결과는 어땠을까? 궁금했습니다.

 

 

[2015 <맨 오브 라만차> 출연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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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1) 네이버캐스트: 맨 오브 라만차 by 박병선씨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43&contents_id=17691

2) 2015 <맨 오브 라만차> 프로그램북

3) 무대 디자이너 서숙진씨 인터뷰 기사

    http://star.mbn.co.kr/view.php?no=865705&year=2015&refer=portal

 - 관람일: 2015년 9월 12일 토요일 디큐브 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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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담은 리뷰 15-02]

 

by 왕마담 2015.11.28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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