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전쯤 땅끝 마을 해남의 미황사라는 절에서 템플 스테이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한 번 해보고 싶었고 당시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도 풀 겸 여름 휴가를 그곳으로 갔었지요. 혼자 여행을 떠나 본 것 역시 그때가 처음이나 다름없었으니 2 3일 동안의 체험 모두가 신기하고도 낯설었습니다.

 

그 중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게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는데 바로 차의 맛입니다. 하루 해가 지는 절에서 스님과 차를 마시며 대화하는 다담시간이 있었지요. 처음에는 회사에서 마시는 티백의 녹차 정도로 생각했기에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 인스턴트 녹차는 참 맛없게 느껴졌었거든요. 그래도 스님과의 대화에는 호기심이 일었나 봅니다. 그러나, 방에 앉아 스님이 정성껏 우려낸황차(녹차의 가공방법과 같으나 민황을 첨가한다)’를 입에 댄 순간 혀 끝에 맴도는 은은하며 따뜻한 맛에 놀랐습니다. 결국 자던 와중 한 밤에 화장실에 가야 할 정도로 많이 마셨지요. 스님의 좋은 말씀은 보너스가 됐습니다.

 

하도 맛있게 마셨던지 스님께서는 차가 가장 맛있을 때를 알려주시더군요. 문짝이 떨어져나갈 정도의 비바람과 몸은 한기를 좀 느낄 정도의 날씨 속에 누각 같은 곳에서 마시는 차 맛은 그야말로 일품이라고 하더군요. 거짓말같이 다음날 아침 미황사가 있는 달마산에는 폭풍우가 찾아왔습니다.

 

그 날 아침 주지스님과 자하루(미황사의 누각)에서 담화시간을 갖게 되었는데 역시 차가 함께 했지요. 창문이 흔들리고 문짝은 덜컥거릴 비바람이 휘몰아치고 한기로 인해 몸이 한껏 움츠러드는 순간 손안에 사기로 만들어진 찻잔이 들려집니다.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기 전 손안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뭔지 모를 안도감을 주더군요. 잎이었을 때의 향 그대로를 간직한 그윽함과 함께 목을 타고 넘어오는 따뜻한 한 모금은 은은하게 온몸을 덥혀줍니다. 마치 어렸을 때 뛰어 놀다가 비바람이 몰아칠 때 작지만 그나마 비를 피할 수 있던 공간에서 느끼던 안도의 마음 그것인 듯 합니다. 과장 아주 조금 보태어 그 한 모금에 행복함이 멀리 있지 않다고 느껴졌지요. 그제서야 어제, 스님이 말씀주신 차 맛이 가장 맛있을 때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습니다.

 

감기 몸살을 핑계로 2주 정도 온갖 나태함과 무기력함에 빠져있었습니다. 혹시 귀찮은 일이 생길까 봐서 노심초사 신경 쓴 듯 합니다. 그냥 쉬고 싶었거든요. 빼빼로 같은 빗줄기가 휴일을 뒤덮고 있을 때 마음 한 켠에 있던 그 때의 기억을 길잡이 삼아 좋아하는 카페로 좋아하는 책과 읽어야 할 책을 두 권 그리고 좋아하는 음악을 갖고 나왔습니다. 막상 밖에 나와보니 바람도 꽤 심하게 부네요. 어느덧 귀찮았던 마음보다이때다싶은 마음이 점차 커졌습니다. 손안에 들린 것은 황차나 녹차가 아닌 커피였지만 역시 맛있네요.

 

너무 편안한 것만을 바래왔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떨림도 울림도 없는 무기력한 일상이 찾아왔네요. 일부러 고난을 택할 필요는 없지만 원하는 삶을 위해 치열함을 내어 지금의 무기력함을 극복해야겠습니다. 조금 더 강건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품었습니다. 따뜻한 차 한잔의 여유와 같은 한 주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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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감사한 마음으로, 지상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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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마담 2012.11.1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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