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다수의 스포가 포함된 리뷰입니다.

저도 감상 전 스포를 증오하는 바, 아직 보지 못하신 분 중

스포를 싫어하시는 분들은 읽지 않는 게 마음 건강에 좋을 것입니다.

 

 

 

0. Overview

1) 라이선스 작품을 뛰어 넘는 창작 뮤지컬을 확인할 수 있다

2) 시나리오뿐만 아니라 무대 연출까지 꽉 찬 작품이다

3) 어벤져스적인 히어로가 아닌 인간적 영웅을 만날 수 있다

 

1. 어벤져스 히어로 대신 인간적 영웅

 

입소문이 착한 뮤지컬 영웅을 관람했습니다. 예전에도 '볼까?' 싶었다가 접었던 작품이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에서 '감동적'이라는 말이 많아 벼르던 공연이었습니다. 안중근 의사역으로 정성화씨가 다시 나온다는 말을 듣고 티켓 오픈하자마자 예매했어요.

 

공교롭게 이날 회사에서는 IMAX 3D <어벤져스2>를 전관했습니다. 이미 몇 달 전부터 손꼽아 기다리는 공연 중 하나였기 때문에 찍힐 걸 각오하고 영화 극장이 아닌 뮤지컬 극장으로 향했죠. 한 시간 전에 도착하기 한가해서 포토존 등을 구경하기 좋았습니다만, 해외 라이선스 작품에 비해 단촐해서 살짝 실망했습니다.

 

프로그램북을 사서 작품 배경과 안중근 의사 업적 등을 살폈어요. 제작한 에이콤인터내셔널은 이전에 <명성황후>를 만든 회사입니다. 연출 역시 <명성황후>를 맡았던 윤호진 연출가네요. 그의 메시지를 보니 역사적 현장인 하얼빈에서 2 7일과 8일에 공연됐다고 합니다.

 

 

[영웅 in 뮤지컬 영웅]

 

 

2. 라이선스를 뛰어 넘는 창작 뮤지컬

 

뮤지컬이 워낙 비싸 사실 입증된 해외 라이선스 공연이 아니면 지갑이 잘 열리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검증되지 않은 창작 작품의 VIP석 구입은 어려운 일이죠. 입소문이 많이 나기는 했지만, 작품의 흐름이나 셋팅에 신경쓰지 않고 덩치만 키운 건 아닌가 싶었습니다.

 

초연은 안중근 의사 서거 100주년 기념에 막이 올랐어요. 뜻 깊게도 이런 사항을 치밀하게 계획한 제작자, 연출가, 작곡가, 작가 등의 노심초사가 어떠했을지 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하얼빈 공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올랐지만 모든 장면을 재검토하여 수정하고 보완했다고 하네요.

 

큰 기대는 관람에 몰입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무엇을 감상하든 설렘은 전날까지, 당일은 기대하지 않는 게 즐겁게 볼 수 있는 Tip 입니다. 막이 오르고 익숙한 리듬과 멜로디의 <Overture>와 절실한 결의를 다지는 <단지동맹> Scene 만으로 기대 심리를 낮추려는 노력이 무색하도록 몰입되더군요.

 

 

[공연 장면. 출처: 에이콤]

 

 

 

3. 꽉 찬 무대 연출

 

무대 연출이 서먹하거나 단촐하면 집중이 자꾸 흐트러집니다. 숲 속에서 이루어지는 <단지동맹>은 관객이 숲에 들어온 듯 만들며 이 작품에 공들인 연출이 짐작되도록 하네요. 이토와 일본 군이 나오는 장면에서는 단순하지만 붉은 색의 배경을 써서 강렬한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노래없이 음악과 3D 영상의 배경과 철제물로 형상화한 도시 그리고 아크로바틱한 안무가 함께 어우러진 <추격> 신 연출은 긴장감 넘쳐요. <미스 사이공>에서 주인공 크리스를 비롯한 미군이 배트남에서 탈출하는 <사이공 함락> 장면이 기억에 남는데 견주어도 전혀 손색 없습니다.

 

뮤지컬 <영웅>의 랜드마크인 열차가 나올 땐 저도 모르게 입이 벌어지더군요. 입체적인 프레젠테이션과 접목하여 눈보라 휘몰아치는 만주벌판을 질주하는 기차 모습은 압도적입니다. 암전과 영상 효과로 비춰지는 객실 내에서 설희는 <내 마음 왜 이럴까>를 부르는데, 이때부터 작품은 비장한 감동이 질주하죠.

 

 

[단지동맹 in 뮤지컬 영웅]

 

 

 

4. 눈물 속의 웃음들

 

극의 주제나 주인공인 안중근 의사를 삶을 극화하였지만, 항상 무겁지만은 않았습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독립군 아지트로 사용되는 왕웨이 중국식당에서 불리는 <배고픈 청춘이여>는 흥겨웠어요. 왕웨이 동생 링링의 안중근을 향한 짝사랑은 풋풋하게 그려집니다.

 

독립군 동지들인 우덕순씨, 조도선씨, 유동하씨는 실제 인물들이죠. 극에서의 캐릭터들은 출신 지역에 따라 성격도 명확했습니다. 충청도 출신의 능청스러운 우덕순과 함경도 출신의 과묵한 명사수 조도선, 이 둘이 펼치는 <아리랑>은 폭소를 자아내면서도 거사를 앞둔 이들의 두려움을 잘 표현했어요.

 

역사적으로도 우리의 원수나 다름없는 이토는 무턱대고 밉지만은 못하도록 그렸습니다. 그가 이루고자 한 <대동아공영>이라는 침략적인 야망에 집착하는 정치인으로 그릇된 가치가 아시아를 어떻게 전쟁 속으로 빠지게 하는지를 보이죠. 안중근 의사가 사형 집행 전까지 집필한 <동양평화론>과 대비됩니다.

 

 

[배고픈 청춘이여 무대 사진. 출처: 에이콤]

 

 

5. 누가 죄인인가

 

<누가 죄인인가>가 울리는 일본 법정은 속 시원하기 그지 없었어요. 안중근 의사가 이토의 15가지 죄악을 낱낱이 밝히는 당당한 모습 속에서 슬픈 당당함을 느꼈습니다. 곧 무대는 관객을 흐느낌 속으로 밀어 넣지요. 안중근 의사의 <사형 집행 직접과 형장면>입니다.

 

간수까지 탄복하게 만든 안중근 의사에게 어머님이 보낸 수의라는 대사를 들었을 때 울컥했어요. 그 수의를 보낸 부모나 아들의 심정이 어땠을까 싶었습니다. 이 때 조마리아의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 가 나오죠. 아들을 먼저 보내야만 하는 애틋함과 당당하게 죽음을 맞도록 격려하는 마음, 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형 집행되는 장면이 작품 마지막 신이지요. <장부가>는 죽음을 앞둔 안중근 의사의 인간적인 면모를 음악으로 보여줍니다. 본인이 세운 뜻을 실현할 마지막 걸음 앞에 머뭇거리는 두려운 마음을 들을 때는 가슴이 저려오더군요.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시간 앞에 선 인간을 연기하는 정성화씨는 안중근 의사 같았습니다.

 

 

[누가 죄인인가 in 뮤지컬 영웅]

 

 

6. 완벽을 위해

 

인터뷰 기사를 보니 정성화씨는 여러 차례 연기해서 익숙했을 안중근 의사를 더 이해하기 위한 공부를 했다고 하네요. 좀 더 유연하고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이 숨어 있다고 합니다. 가상인물인 설희를 연기한 리사씨도 명성황후 시해 기록을 일부러 찾아볼 정도의 열정을 보였네요.

 

다른 작품들보다 배우들의 애정이 깃든 듯 합니다. 사실 우리 나라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가슴이 뜨거워질 수 밖에 없을 이야기지요. 그래서 감동의 여운이 더욱 길게 갑니다. 하지만 애국심 마케팅을 넘어 감동과 눈물이 함께 어우러진 뮤지컬이지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토와 설희의 애증이 푹 느껴질 정도의 흐름이 나오지 못한 점과 링링이 죽음 장면이 너무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장면은 좀 아쉬웠습니다. 당시 일본의 치 떨릴 만행이 그려지지 않고 은유스럽게 보여진 점도 수정이 되면 좋을 듯 했어요.

 

 

[누가 죄인인가 공연 사진. 출처: 에이콤]

 

7. 내가 생각하는 단 하나의 명장면

 

안중근 의사의 형 집행 장면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5분의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아직 남았던 부분의 책을 모두 읽고 담담하게 집행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이 실제 장면이 나오지 않을까 했습니다. <장부가>의 후반부, 사형을 앞둔 이의 두려운 심정을 읊조리자마자 법정에서는 마지막으로 할 말을 물어보죠.

 

이전까지 느낀 두려움과 아쉬움 온갖 감정을 모두 떨치고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장부의 포부를 나타내는 아리아가 이어집니다. 정성화씨의 아리아 속에서 뭔가로 맞은 듯 몸이 뒤쳐지는 뜨겁고 깊은 감동이 커튼콜에 이어 블루스퀘어를 나갈 때까지 이어졌어요.

 

집에 가는 길, 영웅이란 똑같은 인간이지만 결국 본인의 소명을 따르는 이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by 왕마담 2015.05.04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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