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Program#1: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명가수(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 서곡>

 

슈만에 이끌려 독일은 물론 서양 음악계의 중심으로 떠오른 브람스는 늘 그의 아내인 클라라의 곁을 멤돌며 내밀한 감정을 음악으로 표출했습니다. 19세기 중엽 낭만주의가 유럽 예술계를 휘감던 시기 스승의 아내를 사랑하지만 늘 서성이며 망설이던 슬픔과 우수가 음악에 깃들어 있지요.

 

베토벤과 같은 고전주의 시대 음악의 구성과 질서를 중히 여기던 전통주의자 브람스와는 달리 개인의 정열과 자아 등 작곡가의 개성을 표출하던 신독일악파의 대표는 바그너입니다. 공교롭게도 작년 연말 KBS교향악단 701회의 정기연주회 프로그램은 브람스와 그가 추종하던 베토벤의 작품이었죠.

 

KBS교향악단 702회 정기연주회를 관람했습니다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명가수(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 서곡>와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Violin Concerto No.1 in G minor, Op.26>이 전반부, 이어 카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Carmina burana)>를 연주했습니다.

 

 

[전통주의자 브람스(좌)와 신독일악파 바그너(우)]

 

 

서로 으르렁거렸던 브람스에 이어 바그너가 등장한 건 계획된 건지 궁금하더군요. 또한, '바그너'라는 이름 만으로 왜 '신년음악회에서 무거운 연주를 하려고 할까?' 의아했습니다. 왈츠의 아버지와 황제를 배출한 요한 슈트라우스 일가의 음악들로 꾸며지는 빈 필 하모닉 신년음악회처럼 주로 경쾌하고 흥겹게 꾸며진다고 여겼어요.

 

실제 들어보니 신났습니다. 마치 행진곡같았어요. 게다가 그의 음악답게 장중한 느낌이 얹어졌습니다.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는 바그너의 가장 짧은 악극인데도 4시간 30분을 넘어 간다고 해요. 같은 시대를 살았던 오페라 라이벌 베르디의 작품들은 3시간 미만입니다. 바그너의 유일한 미소띈 작품이죠. 주제를 담았다는 서곡만 들어봐도 짐작됩니다.

 

뉘른베르크는 독일 남동부 바이에른주(영어: 바바리아)의 상공업 도시로서 주도인 뮌헨 다음으로 큰 도시죠. 명가수를 독일어로는 마이스터징어(Meistersinger)라고 합니다. 15~16세기 활약한 장인가수라는 명칭으로 시인 겸 음악가들이죠.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하고자 노래 경연 대회에서 우승하여 마이스터징어가 되려는 일화를 다루고 있습니다.

 

웅장한 리듬과 유려한 멜로디에서 한시도 귀를 뗄 수가 없었어요. 중간부분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등의 현악기들로 긴장을 유발한 후 관악기들과 대화하며 풀어주기를 몇 번, '언제 터질까' 싶었던 응축된 기대는 오케스트라 전체가 같은 음을 동시에 연주하는 유니즌(Unison)효과에서 강력한 해방감을 줍니다.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명가수(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 서곡>]

 

 

 

2. Program#2: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Violin Concerto No.1 in G minor, Op.26>

 

당당하게 경쾌한 서곡에 이어 막스 브루흐(Max Bruch) <바이올린 협주곡 1>을 연주하기 위해 독주 바이올리니스트 닝펑(Ning Feng)이 들어왔어요. 예습겸 유튜브에서 먼저 들어봤을 때 장영주씨(사라장)과 정경화씨의 연주를 많이 들어봤습니다.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서곡>에서 연주된 현악기는 리드미컬한 느낌이 많아 신났어요.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본능적으로 몸을 꼬게 만들고 자연스레 미간이 몰렸습니다. 1악장 Allegro moderato(조금 빠르게)에서 팀파니의 조용한 리듬을 관악기가 받은 후 곧 독주 바이올리의 현 울림은 가슴을 할퀴는 듯 했어요.

 

인상 깊은 연주 역시 1악장이었습니다. 팀파니 리듬이 함께하는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가 독주 바이올린을 휘감다가 여러 현악기들의 긴장감이 잦아들 때 즈음 솔로 바이올린 홀로 애달프게 연주하는 부분이었죠. 세 악장 중 가장 짧은 1악장에 이어 Adagio(천천히) 2악장으로 쉼없이 들어가니, 섬세한 연주가 반기네요.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중 가장 좋아하는 부분의 악보]

 

 

브람스가 <바이올린 협주곡>을 만들 때 조언자 역할을 했던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하임은 브루흐의 작품에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첫 번째 버젼으로 코블렌츠에서 초연한 후 만족치 못했던 그는 요하임에게 조언 받은 후 개정하여 브레멘에서 그를 독주 바이올리니스트로 세우며 두 번째 버젼을 초연하죠.

 

멘델스존과 슈만의 음악적 지평으로 쫓으려는 열망을 지녔으나, 그들과 같은 천재가 아니라는 열등감에 시달렸다는 브루흐입니다. 그의 작품 중 이 바이올린 협주곡 외 인기 많은 작품은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없다시피 하죠. 그가 자신에게 느꼈을 실망 속에 더 크게 염원했을 갈망이 느껴지는 2악장이었습니다.

 

Allegro energico(빠르고 매우 힘차게) 3악장은 특유의 동기를 오케스트라가 먼저 넓게 연주하며 기대감을 높여주네요. 이윽고 독주 바이올린이 그 동기를 부여잡고 빠르게 전개합니다. 대화하듯 그 동기를 가지고 노는 연주가 2악장에서 느낀 애잔함을 날리고 흥겹습니다.

 

악장 후반으로 갈수록 오케스트라는 웅장함으로, 두 개의 음을 한 번에 연주하는 독주 바이올린은 기교로 대립하죠. 20여분이 넘는 시간 동안 라이벌로서 대립과 경합이 주는 에너지틱한 시끌벅적함은 Presto(매우 빠르게)의 짧지만 임팩트 있게 어울리며 마무리 됩니다.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Violin Concerto No.1 in G minor, Op.26> with 사라장]

 

 

 

3. Program#3: 카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Carmina burana)>

 

멋진 독주 바이올린 연주를 보여준 링펑의 현란한 기법이 돋보였던 앵콜과 인터미션 후 오늘 공연의 Main 프로그램 카를 오르프(Carl Orff) <카르미나 부라나(Carmina Burana)>가 시작됐습니다. 도입부를 포함 4파트로 이루어진 총 25곡으로 구성된 칸타타(Cantata) 혹은 오라토리오(Oratorio)이죠.

 

프로그램에서 이 곡을 봤는데 작곡가도 들어본 적 없었습니다. 유튜브를 검색해서 들었어요. 도입부 첫 번째 곡 <운명의 여신이여, 세계의 여왕이여(O Fortuna)>을 듣자마자 '~ 이거~ ' 무릎을 칠 정도로 익숙합니다. 웅장한 연주와 합창에 압도되죠. 영화 <엑스칼리버>에서 원탁의 기사들이 출정할 때 쓰였다고 합니다. 상상만 해도 잘 어울렸을 듯 해요.

 

'부라나(독일 남서부 보이렌을 라틴어로 표기한 것)의 노래'라는 뜻을 가진 이 곡은 베네딕트보이렌 수도원에서 발견된 중세 시가집에서 발췌한 라틴어 가사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현대와 대중 음악가 중간을 걷던 오르프는 뷔르츠부르크의 옛 책방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는 '여신 포르투나는 나의 편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해요.

 

 

[막스 브루흐(좌)와 카를 오르프(우)]

 

 

 

특히 이목을 끄는 점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와 음주와 도박, 싸움 그리고 여색에 대한 인간적 욕망을 일반 시민이 아닌 이들이 썼다는 거죠. 신성스런 생활을 상상했던 중세시대, 풍자적 적나라함이 드러나도록 성직을 포기한 수도자나 유랑학자들, 젊은 신학도들에 의해 쓰였습니다.

 

이 곡을 상징하는 그림이 있어요. 중세 시가집에 함께 수록되었던 '운명의 수레바퀴'입니다운명으로 비유된 바퀴에 따라 '지배하다(regno)', '지배했노라(regnavi)', '왕국을 잃었다(sum since regno)', '지배할 것이다(regnavo)'라는 메시지를 담았어요.

 

운명에 대한 도입부 2곡과 1 Primo vera()는 겨울이 지난 봄에 대한 생동감과 애정이 싹트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선술집에서'라는 뜻을 가진 In Taberna 2부에서는 술집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욕망과 분노 그리고 후회 등의 갖가지 감정을, 3 Cour D'Amours(사랑의 뜰)은 남녀 간에서 정염과 사랑 감정을 담고 있어요.

 

마지막 25번째 곡은 바로 1번째 곡입니다. 희망, 평온, 즐거움, 사랑, 유혹, 욕망, 분노 등 인간의 삶이란 결국 운명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수레바퀴라는 메시지를 음악적으로 느꼈어요. 그에 반하여 피할 수 없는 운명 속에서 산다는 건, 운명이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게 합니다.

 

 

[운명의 수레바퀴가 음반 표지로 사용되었다]

 

 

 

12번째 곡인 '일찌기 내가 살았던 호수'에서는 불에 구워져 한끼 식사로 변한 고니가 지난 추억을 떠올리고 있어요. 가성을 이용한 테너의 독주곡인데 분위기 자체도 무척 독특합니다만, 역시나 인간의 삶에 대한 비유로 느껴지더군요. 테너(김세일씨) 1시간이 넘는 연주 시간 동안 그 한 곡만 부르고 끝나 불쌍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합창(서울시립소년소녀, 고양시립, 의정부시립, 서울모테트 합창단) 외에 가장 많은 독주는 바리톤(양준모씨)이었어요. 그리고 빨간 드레스가 무척 고혹적이었던 소프라노(강혜정씨)의 매혹적인 노래와 23번째 곡인 '그리운 사람이여'의 끝모를 고음의 아리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소포클레스가 쓴 <오이디푸스 왕>을 읽었을 때 그 운명적 숙명에 대해 말하기 어려운 느낌을 받았어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하며 스스로 두 눈을 찔러 장님이 되어 버리는 모습을 보며 끔찍한 결과가 기다리는 이런 비극을 왜 읽어야 할까 싶었습니다. 그와 달리 마음 속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들었죠.

 

프로그램북에 쓰여진 곡의 해석을 일일이 보며 관람했던 <카르미나 부라나>는 한 편의 오페라를 본 듯 했습니다. 곡의 성격상 운명, 숙명, 죽음 등을 떠올리게 하더군요. '어차피 운명대로'라는 수동적 체념보다 인간에 대한 연민이 느껴졌어요. 그리스 고전 비극을 읽었을 때의 느낌 같습니다. 그 큰 북의 울림, 마치 깨어있으라는 경종처럼 느껴졌습니다.

 

 

[Carmina Burana by Carl Or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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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1. 네이버캐스트: 바그너,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

 - 글쓴이: 이용숙님(음악평론가, 전문번역가)

 -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66&contents_id=5242

2. KBS교향악단 제702회 정기연주회 프로그램북

3. 블로그 <마음의 정원>

 - http://blog.daum.net/windada11/8767893

4. 정윤수님의 책 <클래식, 시대를 듣다>

 

 

by 왕마담 2016.02.15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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