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한 달 동안 스페인 산티아고 가는 길인 순례길을 걷고 마드리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관광보다 순례길을 걷기 위한 여행이기에 비행기 시간과 마드리드 관광을 합쳐 5~6일 정도를 빼고는 부르고스에서 산티아고까지 24~25일 동안 500Km를 조금 넘게 걷는 여행길이었습니다. 걷는 도중 좀 큰 도시 혹은 마을이었던 레옹, 시에라, 산티아고에서 하루를 더 할애해 매일 평균 25Km정도를 걸었습니다. 물론 더 걷거나 덜 걸은 날이 많지요.

 

그 중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고원인 메세타 평원을 한 밤 중까지 헤매다 어렵게 도착한 마을에서 알베르게 (순례자 숙소)와 호텔, 호스텔 (모텔) 등 잠잘 곳이 모두 문이 닫혀 돈을 가지고도 노숙할 뻔 했던 것이 가장 먼저 기억에 떠오릅니다. 결과적으로는 난방도 되지 않는 한 겨울의 문 닫힌 호스텔에 어렵사리 들어가 잠을 잤지요. 그래도 곤히 잘 잠들었습니다. 그 날 걸은 거리는 약 50Km 정도로 아침 9시부터 밤 10시 정도까지 걸었던 듯싶습니다. '내가 왜 여기에서 이런 짓을 하고 있나?' 라는 생각밖에 나지 않았던 크리스마스 이브 밤이었는데 지금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추억이 되어버렸네요.

 

뜻하지 않게 찾아온 어려움을 어찌 견뎌내니 그 다음부터 순례길를 걷는 것 자체에 여유가 생겼습니다. 길 위에서 행복하다는 말이 그제서야 실감이 나더군요. 걸으면서 아름답고 신기한 풍광을 만나거나 이국적인 모습에 감탄하고, 지루해질 때쯤에는 음악을 들으며 노래를 따라 불렀지요. 사람 하나 없는 순례길 이었으니 뭐... 제 노래를 듣고 도망갈 사람도 없었습니다. 신나면 춤 (춤보다는 몸짓에 가까운……)도 춰보고 소리를 질러보고 그냥 웃어도 보고 어떤 기억을 꺼내 혹은 생각나 살짝(?) 눈물 짓기도 하고... 정말 자유롭다고 느낀 순간들이었습니다.

메세타 평원 (부르고스에서 레옹 사이의 고원지대)을 지나면서는 하루 이틀의 차이로 먼저 걷거나 뒤늦게 걷는 사람들을 만나는 순간들이 많아졌습니다. 유쾌한 스페인 친구들, 반가운 한국 사람들, 제가 좋아하는 누님이 살고 있는 곳과 같은 나라에서 온 브라질 친구 (그래서 브라질 여행 때 꼭 연락해서 만나기를 약속했지요), 수다스럽고 정신 없던 영국인 친구 (결국 핸드폰을 잃어버렸답니다) 등을 만났지요. 처음 만나는 부담스러움과 반가움이 공존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또한 헤어질 때는 혼자라는 자유로움과 외로움을 함께 맛보았습니다.

 

시간이 차츰 지날수록 어느덧 걷고 숙소를 찾아 머물고 먹고 싸고 자는 것이 일상이 되어 갔습니다. 일주일 정도 지나면서 특히 크리스마스 이브가 지나면서는 육체적 고통은 견딜 수 있는 사소한 불편함으로 변해갔고 어깨에 맨 짐은 짊어질 만한 무게로 느껴졌습니다. 하루의 기쁨이 걷는 것 보다는 목적지로 정한 마을에 도착하여 따뜻한 물로 샤워 후 마시는 맥주와 맛있는 정찬과 와인을 즐길 수 있는 스페인 저녁식사로 바뀌어 갔습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찍어놓은 사진을 보면서 다시 그 여행을 생각하니 뜻하지 않게 찾아온 기억에 남을 만한 순간들 외에 일상이 되어버린 순례길 위에서 무심하게 걸어버린 시간과 순간들이 참으로 아쉬움으로 다가왔습니다. 그저 '걸었던' 순간 만으로 기억 남는 여행의 일상이 더없이 말입니다. 왜 그 때 좀 더 감탄하고 감동하지 못했을까? 왜 순례자 친구들과 더 신나게 놀지 못했을까? ...... 그리도 그냥 무심히 걸었을까? 다시 순례길로 돌아가면 더욱 더 잘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시 그곳에 갈 기회가 쉽지만은 않을 듯싶습니다.

 

삶을 여행에 빗대는 것을 많이 읽고 보았습니다. 정말 삶이 여행길과 같거나 비슷하다면 그 길의 끝에 생각날 가장 아쉬운 것이 무엇일까?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뭔가를 성취했을 때의 기억들, 순간순간 생각날 아찔한 기억들, 아름다운 순간들, 고맙고 사랑하는 사람들, 행복하다고 느낀 순간들..... 과 함께 분명 '왜 그 때......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라는 아쉬움의 그 어떤 순간의 기억이 떠오를 것입니다.

 

무심히 걷기에만 바빴던 일상을 다시금 생각나게 했습니다. 그 일상이 바로 내 모든 삶의 순간인

데 말이지요. 어떻게 걷고 계시는지요? 잘 걷고 계시지요? 혹은 비틀대고 계시나요? 어쩌면 멈

춰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계속 멈추지 않으실 것이라 믿습니다. 아래의 사진처럼 말입니다.

 

늘 감사한 마음으로, 지상 Dream.
http://wannet.tistory.com/

by 왕마담 2012.01.16 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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