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모시고 병원 가는 일은 힘듭니다. 제가 아픈 것도 아닌데 집에 오면 진이 빠지네요. 당신 거동이 불편해 부축할 때 팔만 내밀면 되니 어렵지 않습니다. 정작 힘든 건 당신에게 향하는 성질 때문이죠. 일상을 근근이 살아갈 뿐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거든요.

 

아픈 게 평소 몸 관리를 안 하는 걸로 여겨져 유독 병원만 가면 사소한 일에도 어머니에게 가슴이 벌컥 잔소리가 주구장창 나옵니다. 병원 나서는 길, 쌓였던 만큼 답답한 마음은 '자꾸 말 안 들으면 요양원에 보내 버릴 거예요'라며 모진 말이 되어 나올 때도 있습니다.

 

마음 상한 당신 역시 한 승질 내면 저 역시 씩씩거리며 서로 침묵을 지키죠. 모자의 대화가 이렇듯 단순한 안부 묻기 아니면 잔소리, 그렇지 않으면 침묵입니다. 볕 좋은 날, 근처 공원으로 쉬엄 산보하거나 아파트에 친분이 있는 분들과 가까운 식당에서 먹고 싶은 걸 사 드시면 좋을 텐데......

 

당신이 젊었을 때는 집에 붙어 있을 새가 없었죠. 책임이 짜증나 더 하기 싫은 경우처럼 밖으로 돌아다녀도 눈에 밟혔는지 꾸지람 듣는 건 제 몫이었습니다기억나는 말이 한 마디 있어요. '같이 죽자' 입니다초등학생 전인데 아직도 기억나는 걸 보면 혼나기도 겁났지만 그 말은 무서웠나 봅니다.

 

들을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 앉는 거 같았어요정말 죽을까 봐. 눈물에 콧물까지 흘리며 싹싹 빌었습니다. 그때 뭘 잘못했는지도 몰랐던 거 같아요. 단지 엄마 화를 가라 앉히기 위한 눈치였던 듯 합니다. 그렇게 혼나면 당분간 말을 잘 들은 거 같으니 약효는 강력했던 거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다른 심정도 느낀 듯 합니다. '내가 없으면 엄마는 잘 살 수 있을 텐데......', '엄마 걱정거리는 나구나', '나는 짐이고 쓸모 없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던 거 같아요. 이 감정은 지금까지 쫓아 다녔습니다. 어린 시절을 대표하는 트라우마가 되었죠.

 

뚜렷한 생각을 가졌던 건 아니지만 가슴 한 켠 태어날 필요가 없는 줄 알았습니다. 존재하는 데에 늘 불안했었죠. 똑같은 짓을 당신에게 그대로 돌려 주고 싶은 심정이 들 때가 있어요. 못난 줄 알지만 응어리로 남아 있던 그것들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과거를 놓아야 할 때인데 쉽지 않습니다. 유년 시절의 온갖 것들에 용서가 필요하지만 어려워요. 잘 되지 않습니다. 선생의 말씀하신 대로, 책에 쓰인 대로 마음 하나만 바꾸면 되는 데 얼굴을 마주하면 잔소리가 먼저 나와요. 그럴 때면 배움이 뭔지 성장하려는 노력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어릴 때부터 풀리지 않는 온갖 문제, 어머니를 핑계 삼았습니다. 지아비 없이 혼자 아이를 키우던 어머니도 그랬겠지요? 지금도 어려운 시절인데 몇 십 년 전에는 어땠을까요? 아이를 키워본 적 없어 상상할 수가 없네요. 지금은 그 생각이 바뀌었을까요?

 

비록 잔소리 달고 사는 아들이지만 그 때 같이 죽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무언가 배우기 위해 태어난 사람, 그 때문에 아플 것이다'라는 어느 책자의 글귀가 생각 납니다. 그게 무언지 조금 알 거 같은 요즘입니다. 어머니에게 이 말을 하고 싶습니다. '같이 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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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감사한 마음으로, 지상 Dream

http://wangmada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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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안녕하세요. 왕지상입니다. 피곤하여 한 주 쉬었더니 끝없는 게으름에 빠져버렸네요. 일상을 소중하게 보내고자 관찰하던 눈도 침침해져 시큰둥했습니다. 또한, 편지가 소식을 나눠주는지 단순한 자기 고백은 아닌지 고민됐고 내밀한 마음을 전함으로 얼굴을 직접 볼 때 민망하지 않을까 걱정됐어요. 그럴 수 있겠지만, 내면 한 자리를 차지하는 소식 하나씩 꺼내어 살면 또 어떤가 싶었습니다. 그 마음을 쫓으렵니다. 그나저나 잘 살고 계시지요?

 

 

[불후의 명곡(조영남편)에 나왔던 송소희씨]

by 왕마담 2014.08.19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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