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기교를 자랑하지 않지만, 맑고 따뜻한 소리와 곡에 대한 깊은 이해가 뚜렷한 소프라노 임선혜씨의 토크콘서트를 관람했습니다. 처음에는 공연장이 생소해서 진짜 하는 건가 긴가민가했어요. 그녀의 명성과 대우를 보면 국내 정상급 공연장인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 등에서 할 법했거든요. 작년에는 LG아트센터에서 공연을 했었습니다.

 

생긴지 얼마 안되는 티엘아이아트센터, 규모는 중소형급이었어요. 아마도 공연장 기획하시는 분의 발이 넓으신 듯 합니다. 임선혜씨도 신생 극장이 살아 남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승낙했으리라 생각됐어요. 일주일에 2~3번 비행기를 타고 유럽과 한국을 오가는 스케쥴은 살인적으로 들렸습니다. 그런 와중 공연계에서 자신이 기여할 수 있는 바를 열심히 찾아 나서는 그녀가 새삼 대단해 보였어요.


아담한 콘서트하기에 좋았습니다. 공연장은 좌우가 좁고 무대에서 관객석을 볼 수 있도록 앞뒤는 긴 편이었어요. 소리는 곳곳으로 잘 전달되는 구조였습니다. 실제 임선혜씨가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아도 말하는 소리도 잘 들렸어요. 뮤지컬 배우 에녹씨의 진행으로 시작됐습니다. <팬텀>의 인연으로 만난 사이인데 진행을 처음 해본다는 분이 어찌나 잘하는지 임선혜씨도 신의 한 수였다는 표현을 쓸 정도였죠.

 

고음악계에서 인정받는 실력자답게 음악의 아버지, 어머니라는 바흐와 헨델의 곡으로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두 곡 모두 예수님과 연관된 곡이라 경건한 마음을 갖게 하는데, 임선혜씨의 따뜻한 목소리가 더하여 겸손하게 만들었어요. 그녀의 어렸던 시절과 유럽 곳곳에서 공연했던 사진으로 지나온 길과 근황을 덩달아 나누었습니다.

 

제게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그녀의 휘파람이었어요. 어떤 곡인지 잘 모르겠지만 공연 후반부에서 노래가 아닌 휘파람으로 멜로디를 타는데 놀랄만한 수준이었습니다. 흡사 어디서 음원을 틀어 놓은 듯 했어요. 노래가 끝난 후에는 오페라 <마술피리>에 나오는 '밤의 여왕의 아리아' 카덴차 부분을 휘파람으로 부는 신공까지 보여줍니다. 평소 성대가 생명인 성악가인지라 목을 아끼기 위해 음정 연습할 때 휘파람으로 한다고 하네요.

 

이야기와 노래가 함께 어울렸기에 나쁘지는 않았지만 더 많은 노래를 듣고 싶은 욕심이 들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슈만의 연가곡 중 4번째 곡인 '내 손의 반지여' 였습니다. 마치 그녀 자신이 곡의 주인공인 된 듯 표정과 손동작까지 노래가 자신이 된 듯한 찡한 감명이 깃들었어요.

 

노래를 하기 전 짧거나 긴 반주 부분에서 그녀는 마치 멜로디를 타는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혹은 허공에 멜로디가 떠다니는 게 보이는 듯 집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게다가 어떤 곡이든지 노래 속으로 들어가는 듯 보였습니다. 감정까지 모두 쏟아내는 모습은 미래의 성악 스타를 꿈꾸는 이들에게 많은 감명을 준 듯 했어요.

 

 

 

 

 

 

Q&A 시간을 마련한 임선혜씨에게 질문 4개가 들어갔는데, 그 중 3개가 성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고민이었습니다. 모두 정성껏 답을 해주었는데 그 중 하나는 마음을 콕 찔렀어요. 입시에 떨어진 상심을 나누었는데, 답변이 인상적이었습닌다. '노래가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였거든요.

 

지금의 치열한 고민들이 소중하고 성장시켜주는 밑거름은 분명하지만, 긴 노래의 삶에서 생각하면 작은 걱정거리일 수 있다는 거였죠. 또한, 노래 하나만이 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무거워진다는 겁니다. 나부터 즐거워야 듣는 이들에게 감명을 줄 수 있죠. 삶에는 노래 외에도 가치 있는 것들이 많으며, 조금 더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좀 더 좋은 결과로 이끌 수 있을 거라는 게 답변이었습니다.

 

아무리 좋아하고 푹 빠진 일이라도 그거 하나만 보고 살아간다는 건 무거운 일이긴 한 거 같아요. 그녀의 철학적 답변이 그 학생에게 도움이 되었을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오래도록 고민했던 일이었던 듯 했어요. 그걸 넘어섰기에 지금의 밝고 긍정적 에너지로 가득 찬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건 아닐까 싶었어요.

 

공연이 끝난 후 예상하지 못했던 사인회가 진행됐습니다. 좋아하는 분이라도 사인은 잘 받지 않는 편인데, 사람도 적은 공연장이라 줄 서서 기다리기 만만했어요. 사인해주는 그녀를 뵈니 한 분 한 분 모두 아이컨텍과 웃음, 짧은 덕담에 친근한 사진까지 찍어주는 모습에서 청중을 배려하고 고마워하는 모습이 진실되게 나타났습니다. 그녀의 노래가 위안을 주는 요소는 이런 모습이 본바탕이 되었기 때문이겠지요.

 

 

[Handel 오페라 Agrippina의 Poppea 아리아 Bella pur nel mio diletto]

 

 

 

<임선혜씨가 토크콘서트에서 불렀던 곡>

1. 바흐의 오라토리오 '마리아의 노래' (Quia respext)

2. 슈만의 연가곡 '여인의 사랑과 생애'

 1) 1번째 곡 한소절

 2) 4번째 곡 '내손의 반지여(Du Ring an meinem Finge)'

3. 조지 거쉰의 'The Man Iove'

4. 그 외

 1) 캐롤 메들리

 2) 앵콜곡

 3) 뮤지컬 팬텀의 '크리스틴'

 

by 왕마담 2017.02.01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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