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황스러운 마음이 먼저 들었습니다. 백팩 속에 있어야 했던 지갑을 겸하고 있는 프랭클린 플래너가 없었던 것입니다. '?~' 저녁식사를 위해 기다리고 있는 직원들이 있어 부담스럽긴 했지만 다시 한 번 찾아보아도 눈에 띄지 않습니다. 믿기 싫어서인지 호텔에 놔두고 왔는지 긴가 민가 했습니다. 동료에게 물어보았지요. '내 다이어리 봤냐?' '? 왕과장님 아까 PC방에서 뭔가 쓰고 있는 거 봤는데요' 불과 한 시간 전 고객 환경 조사차 현지 PC방을 갔었어요. 동료의 대답을 듣자마자 이런저런 것들 기록하고 관리자 PC앞에 놔두고 나온 기억이 쑤욱 밀려 들어왔습니다. 혹시나 PC방 매니저에게 부랴부랴 전화했지만 없다는 답에 힘이 쏙 빠져 털썩 주저 앉고 싶더군요.

 

그날은 방콕에서 멋진 풍광 속에서 아름다운 건축물과 조명이 유명한 Chocolate Ville이라는 곳에서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어요. 고속도로를 꽤 달려야 했기에 방콕에서 좀 떨어져 있는 듯 했습니다. 식욕은 물론이고 흥미로운 마음도 금방 없어져버리더군요.  그냥 혼자라도 호텔로 돌아가 독한 술 한잔하고 그냥 자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현지 업체 직원들의 초대였고 차도 없으니 돌아갈 방법도 없었지요. 휘황찬란한 조명 속에서도 잃어버린 플래너와 그 속에 있던 것들이 계속 생각나 멘붕에 빠져버렸습니다.

 

[고즈넉한 풍광이 아름다운 조명들과 잘 어울려 멋진 방콕의 Chocolate Ville]

 

 

4년 정도를 썼던 거 같아요. 당시 좀 비싼 가격에 바인더를 구입했고 속지 등은 매년 한 번씩 교체하여 사용했습니다. 지갑으로도 사용하여 태국 돈으로 환전한 40여 만원의 현금은 물론 신용 카드가 있었습니다. 생각날 때마다 적어 놓았던 이런저런 단상들, 쓰고 싶었던 글감들, 올해 초 정성스레 작성해 놓은 목표들, 4년에 걸쳐 써놓은 버킷 리스트와 여행가고 싶은 곳들 등 글일 뿐이지만 소중한 삶의 조각들 역시 같이 잃어버렸습니다. 무엇보다 다른 분들에게 받은 마음이 담긴 작은 엽서들과 메시지들이 함께 없어진 것은 너무 아쉽더군요. 가끔씩 꺼내 읽는 즐거움을 함께 잃어버렸기 때문이지요.

 

전날처럼 작은 지갑에 쓸 돈과 신용카드만 가지고 나올지 뭐 하러 플래너를 가지고 나왔는지 이내 자신을 탓하기 시작했습니다. 머리를 쥐어 짜고 싶었지만 제 눈치를 보는 듯한 함께 하는 사람들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그 분위기 좋은 곳에서 침울해 보이는 손님들은 우리 밖에 없었습니다. 나 때문에 축 늘어지고 가라앉은 분위기 역시 참을 수 없더군요. 미안하기까지 했습니다. 씁쓸했을 미소였겠지만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여권은 안 잃어버렸으니 다행이네?' 한 마디 했지요. 해외출장 그리고 진급 소식에 들뜬 마음이 이런 부주의를 일으켰으니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잃어버린 플래너]

 

그때부터 잃어버린 것은 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푸짐하게 나온 음식들을 참 정신 없이 먹으며 조금 전 멘붕에 빠져 보지 못한 풍광들을 둘러 보았습니다. 곳곳의 호수 속에 놀고 있던 오리들이 참 평화로워 보이더군요. 비교적 여유로운 모습들의 태국 사람들을 보는 것도 방콕 시내의 바쁜 사람들과 대조되어 신기했습니다. '~' 흥미로운 마음이 조금이나마 다시 일어나기 시작하더군요. 생각해보면 지갑이나 핸드폰을 잃어버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그 때마다 적게는 그 날 하루 많게는 일주일 넘게 시간까지 함께 없어져 버린 듯 하네요. 잃어버린 그것에만 함몰되어 있었으니 말이지요.

 

잊기 위한 노력은 잃어버려 찾을 수 없는 사실을 점차 받아들이게 해주는 듯 싶었습니다. 마음이 점차 가벼워졌으니까요. 아마 처음 온 이국 땅 위에서 보내는 시간까지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기에 금방 인정할 수 있었던 듯 싶습니다. 잃어버려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아쉬움을 털기 위한 건배를 하며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잃어버려 더 소중해진 추억들을 위하여'

 

잃어버리는 시간, 하나 없는 소중한 한 주 보내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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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감사한 마음으로, 지상 Dream

http://wangnet.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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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안녕하세요. 왕지상입니다. 이 편지는 한 주 한 주를 보내면서 겪은 일들과 그 느낌을 매우 개인적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자주 만나지 못하니 이런 소식이라도 나누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수 많은 스팸 메일 중 하나를 더 추가할지 모를 우려를 뒤로 하고 보냅니다. 이런저런 회신을 주신다면 더욱 좋을 일이지요. 그러나 저러나 저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고 계시는지요?

 

   

by 왕마담 2013.04.29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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