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공연, 이끌리다

 

김설진, 차진엽씨의 이름에 이끌려 <춤이 말하다> 공연을 보았습니다. 이 둘의 인기 덕분인지 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건지 좌석은 매진됐더군요. 프로그램 북을 사서 출연진의 이력을 보았더니 공중파에서 알려지지 않았더라도 다른 분들 역시 국내외에서 맹활약을 하는 댄서들이었습니다.

 

발레와 무용, 스트리트댄스까지 분야별 전문가 공연이었어요. 발레 남녀 2, 현대무용 남녀 2, 스트리트댄서 1, 한국 전통 춤 1명이었습니다. 플라멩코나 스포츠 댄스 등의 전문가들도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망은 그랬지만 공연은 풍성했습니다.

 

무대는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에 있는 자유 소극장이었어요. 옆 사람과의 좌석 공간이 좁아 아쉽기는 했지만 이 공연에 대해서는 깔맞춤(?)했다는 표현이 적합할 듯 합니다. 호흡이 서로 통하는 느낌과 함께 단순한 공간과 조명은 이들이 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자연스런 집중이 가능토록 했어요.

 

 

[2013년 <춤이 말하다> 티져 영상, 2014년은 제작되지 않은 듯 하네요]

 

 

춤 공연, 특유의 틀을 깨다

 

무용 공연을 많이 본 건 아니지만 다른 공연과 다른 특유의 긴장감이 있습니다. 소리는 오직 음악과 몸짓 밖에 없으니 작은 소리 하나도 소음으로 작용하죠. 영화나 뮤지컬, 오페라 등을 볼 때면 스마트폰을 진동으로 놓을 때도 있지만, 춤 공연만큼은 꺼놓습니다.

 

이 공연의 특이함은 여기 있어요. , 댄서들이 관객들에게 말합니다. 호흡 역시 마이크를 통해 숨참이 그대로 전해져요. 대신 춤출 때는 마이크를 꺼 오직 몸짓에만 집중토록 하는 배려를 했습니다. 분위기 때문일지는 모르지만 말을 하지만 이 역시 춤의 요소처럼 느껴졌습니다.

 

여섯 명 모두 각자의 주제를 갖고 말하지만 공통 주제는 ''이지요. 한 두 명의 공연이 펼쳐질 때까지는 그들이 무얼 말하는지 보다 춤에 집중했지만 슬그머니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슬그머니 가방에서 메모지를 꺼내 이들의 몸짓을 기록했어요.

 

 

 

 

고통만큼 되돌려주는 몸의 과학, 발레리나 김지영

 

첫 무대 역시 독특했어요. 무대는 각각의 소품들로 깔려 있었는데 6명의 무용수들이 나와 각자 물건을 챙겨 들어갔습니다. 곧 이상하게 숨소리가 들렸는데 발레리나 김지영씨의 마이크였습니다. 다짜고짜 발레를 추는데 <로미오와 줄리엣> 중 줄리엣의 동작을 보여주었어요.

 

사실 설명을 듣고 알았지만, 줄리엣이 무도회장에서 쑥스럽게 시작한 춤이지만 나중에는 흥에 겨워 자아 도취하는 모습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춤추고 난 후의 숨소리가 상당히 거칠어지더군요. 보기에는 편해 보여도 발레의 힘겨움을 알 듯 했습니다. 더 큰 어려움을 겪는 본인의 이야기가 이어졌어요.

 

벌써 18년 정도 프로 무용수의 생활을 했는데 여전히 무대 오르기 전 긴장이 된다고 합니다. 더하여 상당히 예민해지는 정신 때문에 어렵다고 하네요. 춤추고 있는 상황에 누군가 어떤 소리라도 내면 그곳으로 신경이 집중된다고 합니다. 그 사람에게 가서 목 조르고 싶을 정도의 충동이 느껴진다고 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레리나로서 쭉 하고 싶은 이유는 본인이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무대 위에서 춤출 때는 행복하기도 하다고 하네요. 곧 여러 장르의 발레를 보여주고는 바로 무대를 퇴장했습니다. 조금 어리둥절했어요. 어떤 메시지를 알려 줄 듯 했는데 그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저 몸짓뿐이었죠.

 

 

 

 

부상 위험이 커도 좋아하는 것이 뭔 죄라고, 스트리트댄서 디퍼

 

발레 후 비보잉을 보니 역동성이 한층 더 컸습니다. <댄싱9> 덕분인지 비보이의 관심과 인기도 높은 듯 보였어요. 저 역시 신기한 동작을 보는 시선에서 춤의 한 분야를 감상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고난도지만 비슷한 동작도 많아 오래 보면 지루해질 수도 있으나 디퍼는 단 몇 분만에 자신의 모든 기술을 보여주는 듯 했어요.

 

챕터 하나를 끝냈는지 금방 넘어갈 듯한 숨을 몰아 쉬며 역시 그 자신의 말을 했습니다. 먼저 보호장비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부상 위험을 많이 줄여준다고 해요. 단점은 멋이 떨어지는데 요즘에는 그런 단점도 많이 보완했다고 합니다. 보험사에서 가장 꺼리는 이들 중 하나가 비보이라네요.

 

곧 음악도 없이 비보잉 연습하는 모습을 봤는데 위험해 보였습니다. 병원 의사 인터뷰 영상이 나오는데 어깨부분이 심각한 상황이었어요. 무대 위에서 직접 어깨에 깁스를 하며 다시 똑같은 춤을 추며 부상 위험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고민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 답은 역시 춤으로 보여주더군요. 위험이 높은 고난도 비보잉 대신 현대무용과 같은 몸짓이 많이 섞였습니다. 결국 부상의 위험이 있어도 하고 싶은 춤을 위한 변화를 보여주었죠. 역동성과 박력은 그대로입니다. 게다가 독창적이기도 했으니 어쩌면 변화를 그 자신이 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죠.

 

 

 

 

도포끈 매는 데 필요한 근육의 문제, 전통무용가 오철주

 

이 분 나오시자 마자 뭔가 팔러 온 사람들처럼 야들야들한 목소리로 전통 무용 중 하나인 <살풀이>의 몸짓을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욕마저 거침없어 듣는 사람 마저 웃게끔 만들었어요. 옷 태를 유지하기 위한 운동에도 힘쓴다고 하니 고운 춤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전달 됐습니다. 몸짓과 비슷한 마냥 목소리도 간드러지게 들리더군요.

 

땅을 디디는 동작을 '디딤'이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장디딤, 중디딤, 세전디딤, 솟음 등이 있다고 하네요. 모두 발바닥의 뒷, 중간, 앞 부분을 칭하고 마지막은 발을 들때의 모습입니다. 사뿐한 게 어찌나 곱던지요. 곧 입장단(입으로 장단을 넣음)에 맞추어 <살풀이>를 보여주었습니다.

 

사실 무용이 TV로 보면 지루한데 공연장에서 집중을 하며 보니 전통 무용이 어찌나 고운지 알 듯 했어요. 곧 자신의 미간에 대한 표정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라며 춤출 때도 디딤과 표정을 설명하는데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힘과 에너지가 넘치는 <승무> 역시 보여주었어요.

 

도포를 휘저으며 추는 승무는 춤 같기도 하며 때론 무술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힘이 넘치기도 했지만 사뿐한 모습이 가벼운 깃털이 되는 듯 보이기도 했어요. 때론 슬퍼 보였지만, 나름의 장단에 맞춘 <북가락>에서는 심장이 울렸습니다. 한국 무용에 대한 설명, 좋았어요. 이해가 높아졌습니다.

 

 

 

 

지금의 내 몸에 맞는 춤을 찾아서, 현대무용가 차진엽

 

<댄싱9> 심사위원으로도 여러 번 출연하여 이름을 알고 있던 차진엽씨의 첫 등장은 다이내믹했어요. 현대무용에 스트리트 댄스의 요소가 많이 포함되어 있어 보였습니다. 입고 있던 옷도 검은 색의 모던 느낌 속에 팝스타 같은 느낌도 들었어요. 마치 남자 마이클 잭슨을 보는 듯한?

 

비보이 하던 댄서들이 현대무용 전공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자연스레 그들의 춤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해요. 춤으로는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 하는 성격에 남자들의 힘있는 동작을 기어코 따라 했더라고요. 자연스레 부상도 많이 당하고 스트레스 받고 고생했다고 합니다.

 

여자의 몸으로 하기 힘들다는 걸 깨닫고 지금은 그런 무리되는 동작은 아예 하지 않는다고 해요. 대신 본인이 좋아하는 취미로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고 합니다. 스탠드나 아로마 초와 같은 걸 직접 만드는 거죠. 실제 무대에서 보여줍니다. 와인도 좋아하여 하루 한 잔 정도 마시며 긴장을 푼다고 하네요.

 

마음이 가는 대로 흐느적 몸을 움직입니다. 무대의 조명은 모두 꺼지고 스탠드의 불빛만이 그녀를 비춰요. 무척 자연스런 모습입니다. 점점 더 현대 무용이 되어요. 하나의 원을 상상하며 손으로 팔로 몸과 발 그리고 온 몸으로 표현합니다. 땅이 흔들린다는 등의 상상하는 대로의 몸짓을 보여주죠.

 

무용이라고 해서 어렵게만 생각할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상과 마음의 변화에 따른 몸짓이 바로 춤이 아닐까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충실한 생각이 들었어요.

 

 

 

 

잔인한 예술과 세월을 견디는 몸의 기술, 발레리노 김용걸

 

이번 공연 남녀 앙상블은 처음이었습니다. 마치 스포츠 댄스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어요. 김용걸씨를 도와준 여자 파트너는 처음 무대를 섰던 김지영씨였습니다. 발레리노 특유의 민망한 복장이 이제는 난감하지 않더라고요. 몸매 자체로도 뭔가 말할 듯 하게 멋집니다.

 

직접 안무를 짠 무대였어요. 마지막인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여정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때론 격렬했고 또한 고요했고 즐거웠으며 슬펐어요. 나이에 대한 스트레스로 말을 이어갔어요. 30대 중후 반이면 클래식 발레 무용수는 끝이라고 합니다. 본인의 생각은 다르다고 하네요.

 

나이 들수록 많은 경험에 의해 다양한 감성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역시 그리 생각해요. 문화예술의 극치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젊었을 때부터 하는 게 중요하겠지만, 나이 들었다고 춤을 추지 못한다는 건 이해할 수 없습니다. 힘은 떨어지겠지만 연륜에서 오는 풍부한 표현이 더하지 않을까요?

 

그걸 위해 여전히 매일 아침 자신이 미친 흑마로 불렸던 22~23살 때 췄던 춤을 연습한다고 합니다. 나이에 대해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라고 하네요. 또한 그 춤은 국립발레단 오디션에서 추었던 <돈키호테 바질>솔로라고 합니다. 그의 마지막 춤은 이것이었죠.

 

세월에 지지 않겠다는 다짐을 보는 듯한 몸짓이었습니다. 힘이 넘치는 동작들의 연속을 무리 없이 이어나가는 그의 모습은 감동적이었어요. 기꺼이 더 나은 ''가 되기 위해 기꺼이 한계에 부딪히는 사람들 만이 줄 수 있는 감명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몸을 쓰는 만큼 알 때 도달하는 어떤 경지, 현대무용가 김설진

 

기대를 가장 많이 받았을 김설진씨의 차례였어요. 독특하게 스토리텔링으로 시작했습니다. 먼저 자신 몸에 대한 컴플렉스에 대해 얘기했죠. 작은 키, 조금 더 긴 오른 다리, 거기에 비해 긴 팔 등 이 극복을 위해 다른 사람과 같은 동작을 해도 더 크게 보이기 위한 연구를 했다고 합니다.

 

근래는 초점이 바뀌었다고 하네요. 같은 동작이라도 질감을 달리 넣는다고 합니다. 팔을 올렸다 내리는 동작이라고 해도 깨끗하게 표현하기 보다는 누군가 끌어내리려는 듯하게 혹은 싸우듯, 손과 팔이 따로 움직이는 듯 등으로 보여주네요. 그가 속해 있는 벨기에의 피핑톤 무용단에서는 수면제를 먹고 몸짓을 연구하기도 한답니다.

 

가수면 상태에서의 동작을 확인하는 거죠. 무척 힘들다고 합니다. 잠이 딱 들려는 순간부터 춤을 춰야 한다고 하네요. 깨어난 후에는 비슷한 동작을 다시 하기 위한 연습 역시 고통스럽습니다. 때론 공연 후에도 깨어나지 않는다네요. 호텔로 돌아가서도 핑핑 돌고 환각이 보여 응급실로 갔다고 합니다.

 

병원에 입원한 김설진씨, 하혈을 했다고 해요. 배에서 뭔가가 나왔다고 합니다. 직접 그걸 보여 주려는지 입고 있던 셔츠를 풀어 배를 헤집는데 정말 뭔가 나올 거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곧 무용으로 이어졌는데 기괴했어요. 마치 뭉크의 절규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픔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절망 등을 표현하는 듯 보였어요. 또 달리 컴플렉스를 표현하는 건가 싶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얼굴을 가지고 여러 표현을 하는 몸짓은 어디서도 볼 수 없었어요. 뭉크의 <절규>라는 그림을 표현하기도 하고, 머리카락을 가지고 여러 얼굴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커튼 콜, 무용수다운

 

결혼을 하고 아기를 가지면서도 춤을 추고 싶다는 김지영씨를 처음으로 다시 한 분씩 나오면서 본인 하던 얘기를 했어요. 차례대로 하기는 했지만 돌림노래를 하듯 나레이션들은 겹쳤습니다. 그들의 춤 역시 교차되면서 의도하지 않는 군무를 보는 듯 했어요.

 

출연진들이 관객에게 인사를 끝으로 퇴장하며 그들의 초기 인터뷰 영상이 나왔습니다. 각자의 일상이야기들을 했어요. 아마도 이 공연 컨셉에 맞는 이야기들을 이끌어내기 위한 인터뷰인 듯 했습니다. 좋아하는 춤을 추는 무용수인 만큼 그들의 자신의 몸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건강을 어떻게 유지할지, 스트레스와 안정을 어떻게 찾아 가는지, 춤을 좀 더 잘 추기 위한 몸을 어떻게 단련 시키는지 등 이들이 보여준 몸짓은 몸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내밀하고 개인적인 고민이지만 또한 현실적으로 민감하게 직면할 이야기들이었어요.

 

이번 공연을 통해 춤은 뭔가를 말하고자 하는 몸짓이라는 걸 배웠습니다. 늘 멋지게 보여주기 만을 위해 있는 게 아니죠. 예매 후 취소할 지 망설였습니다. 난해한 뭔가만 보는 건 아닐까 우려했죠. 하지만, 몸짓이 주는 감동에 대해 조금은 알 수 있게된 듯 합니다.

 

by 왕마담 2014.12.26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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