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

 

늘 머뭇댔어요.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영화를 보기가. 집에서 재방송 보기가 그랬고, PC로 보기가 참 아쉬웠습니다. 좋아하는 배우인 '한석규'가 나오고 게다가 10년도 넘게 보지 못했던 '심은하'를 볼 수 있었는데도 말이지요. 아마 무의식 중에 오늘을 기다렸던 것은 아닐까 생각됩니다. 생각지도 못한 재개봉 소식에 연이은 주말 근무의 피곤을 물리치고 한 달음에 1998년의 그들을 만나고 왔습니다.

 

역시 명불허전이더군요. 오히려 어렸을 때 보지 않고 이제야 본 것이 참 다행스럽게도 여겨집니다. 아마 첫 개봉 당시나 그 즈음에 봤다면 ... 어쩌면 지루하게 여겼을지도 모르겠어요. 액션과 블록버스터가 최고로만 여겼으니까요. '노킹 온 헤븐스 도어', '인생은 아름다워', '굿바이 마이 프렌드', '엔딩노트' 등 죽음과 시한부를 테마로 다룬 영화는 이미 많이 보았는 데도 비교하여 전혀 오~ 정말 전혀 빠지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제대로 한 몫한 것은 바로 한석규라는 배우의 신들린 듯한 연기인 듯 합니다. 물론 극 중에서는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 들이고 남겨질 일상에 대한 안타까움을 내면 깊숙이 보여줍니다. 신들린 듯한 광기를 보여주거나 일상의 일탈을 꿈꾸지 않습니다. 새롭게 다가온 사랑에 대해 깊은 배려를 담은 모습은 정말 배역 그 자체인 정원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더군요.

 

 

                                                          [한석규의 내면 연기, 갑]

 

 

물론 정원이 경찰서에서 술에 취해 조용히 하라는 경찰의 말에 울컥하여 꾹꾹 참아온 슬픔을 토해낼 때와 아버지가 들을까 이불을 뒤집어 쓰고 혼자 대성통곡을 하는 모습, 비디오 재생을 하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짜증을 낼 때는 한석규씨 연기에는 찬탄이 나올 수 밖에 없더군요. 이 작품 1년 전에 개봉했었던 '초록물고기'라는 영화에서도 순진한 조직 폭력배로서 순간순간 극한 감정을 연기했던 모습이 기억났습니다.

 

한석규 뿐만이 아니지요. 은퇴한지 10년이 넘은 풋풋한 시절의 심은하씨가 더욱 싱그러운 '다림' 역을 보는 것 자체로 흐뭇(?) 했습니다. 당시 청순미의 아이콘였더랬지요. 정원이를 아저씨라 부르며 따르고 은근슬쩍 같이 가자고 놀이공원 얘기를 꺼내는 모습에서는 ... 정말 체면치레고 뭐고.... 까아아아~~^^ 근데 그 뿐만이 아닙니다. 정원이 병원에 입원한지 모르고 자신의 마음을 거절한 줄 알고 괴로워하는 모습에서는 여성의 심리를 일견 엿볼 수 있었으니 말이지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라는 영화에서 조감독을 하고 '8월의 크리스마스'로 데뷔한 허진호 감독은 연출이 부자연스럽기도 했다고 합니다. 한석규씨나 심은하씨, 정원의 아버지 역할의 신구 선생님, 친구 역할의 이한위씨, 첫사랑 역의 전미선씨등 참 연기 잘 하는 사람들의 덕을 많이 보았다고 합니다만 당시 '죽음'을 이렇게 담담하게 그려내기도 쉽지 않았었을 듯 하더군요. 연출뿐만 아니라 각본 역시 그의 작품이지요.

 

 

                                            [지금 봐도 흐뭇한 심은하^^, 꺄아아아~]

 

 

'죽음'을 앞두고 꿈같은 일탈이 아닌 소소한 일상을 소중하게 살아가는 '정원'의 초점을 맞춘 모습은 10년도 넘어 지금 다시 보아도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추억을 남기기에 안성맞춤인 사진사라는 직업으로 정원의 상징을 그려내고, 놀이동산에서 정원과 다림의 뒤에 신혼부부의 야외촬영 모습을 대입 시키는 모습 속에서 좀 적나라하기도 하지만 극이 보여주는 메시지를 왜곡하지 않고 보여주어 좋았습니다.

 

예전에는 사진 찍는 것을 꽤 싫어했습니다. 왠지 인위적으로 뭔가를 남기는 거 같았거든요. 또 그런 생각이 드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유난 떠는 듯 보일 거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잘 찍는 편은 아니나 일상의 소중한 순간들을 대체적으로 남겨 놓으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사진 찍으려 여행하는 ''를 범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말이지요. 무슨 일이 다가오든 내 소중한 삶이라는 인식을 하게 된 효과 중 하나인 듯 해요.

 

여전히 상상일 뿐이기는 하지만, 정말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떨까요? 지금의 이 지지고 볶는 관계도 그리워지겠지요. 내가 보내는 이 작은 순간 순간이 소중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죽음'을 소재로 일상을 챙기는 것은 이제 너무 먼 얘기도 아닙니다. 인기 많은 작가 알랭드 보통 역시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라는 책의 첫 장을 죽음과 결부시키며 '현재의 삶을 사랑하는 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보기만 해도 대리 행복한 커플들이다]

 

이런 시한부와 관련된 영화를 보면 참 슬프기도 하지만, 내게 남겨져 있는 일상의 소중함을 되돌아 보게 됩니다. 명작이 주는 힘이겠지요. 그러나 저러나 영화를 보면서 운 적은 많은데 보고 난 후 영화 생각이 날 때마다 가슴 속이 뜨거워지는 경우는 또 처음이네요.

 

 

 

by 왕마담 2013.11.12 09:15
| 1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