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참으면 별 일 아닌 걸로 넘어갈 순간, 짜증과 울컥스러움 덕분에 그 자리를 박찬 적이 있는지요? 얼마 전 회사에서 제안서를 작성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제출해야 하는 날, 마지막 리뷰를 하는 순간 빼먹은 슬라이드가 던져졌어요. 누구도 나서질 않더라고요. 하기 싫었던 게죠. 전날까지 밤새고, 다른 일 젖혀두고 그 일에 매진했던 시간들 때문에요.

 

그 순간에도 네가 잘했고 내가 잘했고 누구의 잘못을 따지는 말의 칼부림이 이어갔습니다. 그 순간 짜증과 울화가 치밀면서 그 일을 도맡으면서 회의를 하고 있는 와중 자리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좀 더 우아하게 그리고 일 바짝 하고 있다는 걸 티 낼 수도 있었는데 ......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사이드 르윈이라는 영화, 가슴이 벅차는 감동이 있지는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중독성이 진하게 다가옵니다. 극장에서 두 번을 보았지만 지금도 큰 감동을 받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르윈이 생각나는 순간들이 있어요. 그날처럼 이성보다 감정이 치닫는 바보 같은 실수를 했을 때가 바로 그 때 입니다.

 

 

[Hang me Oh hang me]

 

 

 

바보 같은 실수를 하고 났을 때의 제 심정일까요? 'Hang me, Oh hang me ~' 라는 곡이 주는 위안은 놀라웠습니다. 이 음악은 영화가 시작하자 마자 나오는 데 어두침침하고 담배연기로 가득한 Gasligh에서의 기타 하나의 선율과 르윈의 침울한 목소리가 맞이하지요.

 

감정은 순간으로 끝나지 않지요. 누군가 별 다른 이유 없이 미워질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특별히 내게 잘못한 점도 없고 해코지하지도 않았는데 ..... 등 돌리고 싶을 때가 있더라고요. 이건 뭐지......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이건 '나의 잘못' 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 마음이 내키지 않아요.

 

가고 싶지 않은 약속을 지켜야 할 때도 개포동에서 강남역에 가는 거리인데 KTX를 타고 부산에 가는 것보다 더 멀어 보입니다. 이럴 때도 바보 같습니다. 그 사람은 ''에 대해 이 정도나 생각할까요? 아닐 겁니다. 생각?은 커녕, 등 돌리자 마자 뇌리 속에 ''란 사람의 존재 자체가 없을 텐데....

 

 

 

[Five hundred miles]

 

 

 

Five Hundred Miles OST 중 가장 좋아하는 곡입니다. 흥겨운 감미로움을 보이지만 듣다 보면 어느새 찡해집니다. 젊은 여성 포크 싱어 헤디 웨스트(Hedy West) 1963년 발표했으며 포크 송이기는 하지만, 호보 송(뜨내기, 방랑자의 노래)라 일반적으로 불린다고 합니다. 옛 민요를 기반으로 만들어 졌다고 하네요.

 

이성과 감정의 거리는 500마일의 거리일까요? 나란 사람 참 어처구니 없게도 누군가를 내 마음 속에 가두어둡니다. 이럴 때 내 감정이 얼마나 아까운지요. 그러나 이 녀석, 내 생각대로 움직여 주지 않습니다. 감성이란 놈의 본성, 고양이와 닮은 건 아닐까요?

 

인생과 삶이란, 바보스러운 나를 만나는 순간의 연속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남들 보다 좀 더 잘 나아 보이고 싶지만, 결국 만나는 건 그들과 개친도친인 ''이지요. 타인과의 잣대를 대는 순간 바보가 되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그럴 때면 누구보다 마음이 굳어지잖습니까?

 

 

[The death of queen Jane]

 

 

 

르윈은 그 중요한 순간의 오디션, 왜 이 곡을 택했을까요? 헨리 8세에게 총애를 받던 세 번째 부인인 제인이 출산을 하면서 자신의 아이를 꼭 살려 달라는 심정을 담은 노래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죽지요. 버드 그로스먼은 르윈을 부인으로 봤을까요? 아이로 봤을까요? 아이라 생각하고 불렀을 터인 노래이지만 결국는 여왕이 되고 말지요.

 

나름의 노력을 펼쳤으나 결과는 훈계만 한 반탕 들었던 르윈은 다시 집으로 향합니다. 히치 하이킹을 하여 얻은 차, 스스로 운전하며 집으로 가던 길에 그만 고속도로를 뛰쳐 나온 작은 짐승을 치어 버리지요. 차를 세우고 살피니 절뚝이며 숲으로 향하는 고양이가 보입니다. 오디션을 받으로 오던 길에 버린 고양이처럼 느껴 집니다.

 

상처입은 순수한 자신을 바라 봤을 듯 합니다. 진지하게 자신이 부르고 싶은 음악을 하던 르윈, 언젠가 인정받으리라 기대했으나 결국 상처투성이 뿐이 자신의 생활이 보였겠지요. 정처없이 방랑하며 살던 삶을 정리하려 하나 이 마저 여의치 않지요. 얼마 전 누나에게 자신이 버리라고 했던 상자박스에 있던 선원 자격증이 발목을 잡아 버립니다.

 

[인사이드 르윈에서만 공개된 밥 딜런의 미발표곡, Farewell]

 

 

 

아마도 '에라~ 모르겠다~' 라는 심정으로 다시 기타를 잡게 되는 르윈, 데이브 반 롱크라는 실존 인물을 그렸지요. 밥 딜런의 선배입니다. 영화 속 마지막 장면 노래를 마치는 르윈의 바톤을 이어가는 가수가 바로 밥 딜런입니다. 미발표 곡이라는 <Farewell>, 먼 여행을 앞둔 남성이 연인에게 이별을 말하는 곡이지요.

 

Ending을 장식하는 노래로 참 잘 골랐다는 생각이 듭니다. 르윈은 이제 담담하게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는 듯 하네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마지막 장면, 누군지도 모르는 이에게 몇 대 맞고도 '오르보아(잘가)'라며 인사할 수 있을 넉살로 다가오는 삶에게 답하는 듯 보여집니다.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고 나만 피해를 입는 건 아닐지 늘 어깨가 움츠려집니다. 딱딱한 표정 속에 긴장하며 인생이라는 녀석, 혹시 나를 속이는 건 아닐까 의심스럽지요. 늘 좌불안석입니다. 순간을 편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네요. 르윈도 마찬가지였을까요?

 

 

[밥 딜런 역시 존경했다는 Dave Van Ronk의 앨범 쟈켓, 고양이가.... ]

 

 

고양이처럼 좀 까탈스러운 게 바로 인생이라는 점, 분명합니다. 피하고 걱정하고 우려한다 해도 어차피 올 것들이라면 어느 순간 제 뒷통수를 치며 들이 닥치겠지요? 비록 상처 주고 상실을 안기며 또 외롭겠지만, 르윈처럼 이제 왔냐며 씨익 웃어주고 싶습니다.

 

 

[Green, Green Rocky Road by Dave Van Ronk]

 

by 왕마담 2014.05.0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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