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약하지 않을까?

 

<빌리 엘리어트>는 영국 북동부 더럼의 광부 파업이 배경인 영화다. 나는 이 영화를 몇 번이나 봤다. 대처 정부의 민영화와 구조조정에 맞서는 가족의 힘겨운 일상이 공감됐다. 그 속에서 한 소년이 편견에 맞서 흥겹게 꿈을 찾아가는 이야기는 먹먹하지만 신난다.

 

엘튼 존은 칸에서 보자마자 감독 스티븐 달드리를 찾아갔고 뮤지컬 아이디어를 냈다. 직접 작곡을 했고, 영화의 각본가 리홀은 극본을 맡았으며, 감독이 직접 연출했다. 2005년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됐다. 우리나라 버전은 2010년 비 영어권 최초로 공연되어 최우수 라이선스 뮤지컬 상을 받았다.

 

2014년 런던 공연 실황을 스크린화한 <빌리 엘리어트 뮤지컬 라이브>가 메가박스에서 상영됐다. 개봉을 기다려 달려갔다. (조금 늦어 지하철에서 진짜 달렸다). 비록 영화관에서 봤지만 공연이 주는 생생한 재미를 느꼈다. 웨스트엔드에서 꼭 보고 싶은 뮤지컬 No.1 이다.

 

작년 11월부터 우리나라 버전으로 공연하고 있는데 막상 보려니 망설여졌다. '좀 약하지 않을까?' 의심했다. 80년대 황량한 시골 분위기, 파업의 거친 대립, 술과 담배, 동성애 코드 등 아이들도 무리없이 볼 수 있도록 각색됐을 듯 싶었다. 즉, 원작의 느낌을 살리지 못했을 거 같았다. 하지만 국내 초연 후 7년 만에 재공연, 이번을 놓치면 언제 볼 수 있을지 기약없다는 지인의 말에 막공을 앞두고 한 달음에 예매했다.

 

 

['Shine' in 2014년 <빌리 엘리어트 뮤지컬 라이브>]

 

 

 

 

공연 속으로

 

공연 시작 전 "무대에서 사용하는 담배연기는 인체에 해롭지 않으며.... 과도하고 촌스러운 욕설이 포함되어 있으니 아이들과 함께 온 보호자분들은 필요시 지도가 필요합니다. 단, 공연장 나가서 말이죠.... " 의 안내 방송이 원작을 잘 표현해줄 거란 기대를 부추겼다.

 

첫 무대를 여는 넘버 'The stars look down' 은 무겁다. 마을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전반적으로 보여준다. 파업을 주도하는 이들이 결의를 다지는 모습은 터프하다. 복싱 수업이 늦게 끝난 빌리, 다음 수업 선생님에게 체육관 키를 전하려다 우연히 발레 수업에 참여한다.

 

분위기를 바꾸는 넘버 'Shine'은 신난다. 유머와 독설 그리고 끼 넘치는 미세스 윌킨슨을 연기한 배우 최정원에 눈을 뗄 수 없다. 1980년대 옷은 촌스러웠지만 그마저 매력적이다. 발레걸들의 무대에 멈칫멈칫 참여하는 빌리가 함께 만든 무대는 반짝반짝 빛난다. 제목처럼.

 

경찰과 노동자가 무대 양끝에서 맞서고, 날선 대화가 칼날처럼 부딪힌다. 대립 속 발레 클래스를 교묘히 엇갈려 보여준다. 이때 나오는 'Solidarity' 는 끼리끼리 부르는 중창에서 어울려 합창이 된다. 아직 낯선 빌리는 주춤주춤 수업에 참여하고, 아버지나 형에게 발레하는 걸 들킬까봐 겁낸다.

 

나 역시 발레를 처음 배울 때 쑥스러움을 극복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 '남자가 무슨 발레를 해?' 자기 검열이 들었다. 그때가 2015년인데 지금도 누군가에게 '취미로 발레합니다' 라고 말하는 건 쉽지 않다. 작품 배경인 1984~85년에는 더욱 그랬겠지. 동병상련을 느껴 빌리가 어려운 동작 에튀튜드, 쉐네 등을 멋지게 해낼 땐 내가 다 짜릿하다.

 

지금도 발레를 하는 중(배워도 배워도 늘지 않는다)이라 매번 연습하는 쁠리에, 탄듀, 피루엣 등 발레 동작을 만날 땐 어찌나 반갑던지. 친구 마이클과 함께 만든 무대 'Expressing yourself'는 아기자기하고 스윗하다. 탭댄스가 유명한 <브로드웨이 42번가> 저리 가랄 정도로 합이 척척 들어맞고, 경쾌한 탭소리는 절로 어깨춤을 부른다.

 

아이들이 귀엽게 흉내만 내는 춤들이 아니다. 성인 프로들처럼 하는 맛은 덜했지만, 기교를  빼고 핵심을 보여준다. '드림발레'로 불리는 빌리가 성인 빌리와 <백조의 호수>음악에 맞추어 파드되를 출 때 숨죽여 봤다. 특수장치를 이용해 하늘을 날아다니는 장면은 꿈을 이루었을 때의 쾌감을 보여준다.

 

'Angry Dance'는 폭발적이다. 기대이상! 실제 자신을 잊은 듯한 'Electricity'는 노래보다 춤추는 모습에 더 설득된다. 할머니의 회상 속에 나오는 현대무용 청년들은 멋지다. 절도와 힘으로 무장한 경찰과 노동자들의 안무까지 눈을 뗄 수 없다. 안무가 유명한 뮤지컬 <캣츠> 만큼 풍성하다.

 

 

[빌리들로 출연한 아역 배우들, 사진출처: 신시컴퍼니 홈페이지]

 

 

 

'졸라' 특별한 뮤지컬

 

유명한 뮤지컬 작품은 대개 한 두 곡정도 따라 부르고 싶은 넘버가 있다. <지킬 앤 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 <맨 오브 라만차>의 '이룰 수 없는 꿈' 같은. <빌리 엘리어트>는 그런 곡이 없었다. 영화와 극장판 공연은 재미있게 봤지만 자주 듣지 않았다.

 

현장에서 접하니 마치 무용 공연에서 만난 음악 같다. 춤이 함께 해야 완성되는 무곡처럼. 유명한 <백조의 호수>의 '정경'도 음악만 들었을 때와 실제 발레 공연을 보면서 접하는 건 다르다. <빌리 엘리어트>도 마찬가지였다.

 

엔딩 신 'Once We were Kings'이 특히 인상적이다. 오디션에 합격한 빌리가 떠난다. 아버지와 형, 그리고 광부들은 파업이 끝나고 막막한 갱도로 들어간다. 꿈을 쫓는 이와 일상을 유지하는 이가 대치된다. 하지만, 광부의 헬맷에 부착된 플래쉬가 강렬하게 빌리를 비추어 배웅한다. 눈 부신 장면, 일상과 꿈을 잇는다.

 

빌리는 미세스 윌킨슨을 찾아가 고마움을 전한다. 선생님은 무뚝뚝하지만 대사 사이 침묵이 감정을 말하듯 울림을 준다. 'You are very fucking special', 그녀의 마지막 인사는 짧지만 최고의 격려다. 한국 공연에서는 '너는 졸라 특별한 아이야!'로 번역했다. <빌리 엘리어트>는 '졸라' 특별한 뮤지컬이다.

 

 

[친구 마이클과 함께, 사진출처: 신시컴퍼니 홈페이지]

 

 

 

<관람 정보>

 

1. 출연

 1) 빌리 : 성지환

 2) 마이클 : 한우종

 3) 미세스 윌킨슨 : 최정원

 4) 아빠 : 김갑수

 

2. 공연장 : 디큐브아트센터

 

3. 관람일 : 2018년 5월 4일

 

 

[출연진들]

 

by 왕마담 2018.06.03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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