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2016 레미제라블에서는 새로운 폰트의 타이틀이 선보였다, 출처:구글이미지]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맡게 되는 경우, 전반적인 상황이 머릿 속에 그려지면 쉽게 느껴집니다. 물론 실제 업무를 진행할 때는 갖가지 문제들과 맞닦뜨리게 되죠. 새로운 직원들과 함께 일하거나 만져본 적 없는 시스템이 도입되면 처음부터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호주의 그레이트오션이나 미국 록키산맥, 브라질 나이아가라 등은 희망하는 여행지이죠. 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광활하거나 드넓은 자연 풍광들이 기다리는 곳들 입니다.. 바로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오밀조밀한 숲은 불안하게 느껴져요. 이게 제 성향이죠. 뻥 뚫려 눈이 쫓아가지 못할 정도로 넓게 보는 걸 좋아합니다.

 

내 삶에서 이루고 싶은 큰 줄기를 만나 전반적인 그림을 그리니 순간순간 만나는 일상의 불안은 있더라도 전반적으로 안정감을 느껴요. 그런 비전을 그리는 데에 뮤지컬 <레 미제라블>이 도움됐습니다. 장발장의 인생을 통해 삶을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죠.

 

 

 

[2015-2016 뮤지컬 레미제라블 하이라이트]

 

 

 

힘겹게 형기를 마친 장발장은 기대한 자유를 찾지만 방문하는 마을마다 범죄자 신분으로 배척당하기 일쑤입니다. 넉넉한 일자리와 아늑한 잠자리는 어디서도 구할 수 없었죠. 어쩌다 일을 해도 다른 이들의 반값 품삯만 받을 뿐입니다. 그는 어딜 가도 위험인물로 찍혀 감옥 밖에서도 또 다른 죄인이었어요.

 

성당 앞에 쪼그려 잠든 고단한 몸을 일으켜 세우는 신부를 만나 안온한 곳에서 쉬며 잠깐의 한 끼로 배를 채웁니다. 앞으로 살기가 문제라 하느님의 값나가는 물건을 초라한 가방에 담아 도망가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잡히죠. 추궁하는 경관들을 말리고 값나가는 은촛대까지 주는 신부, 장발장은 구원받습니다.

 

남들이 자신을 죄인으로 대하는 그대로 본인마저 그리 생각한 모습에서 벗어나려는 성찰적인 아리아 [Valjean's Soliloquy]는 고뇌하는 메시지와 ''를 바꾸겠다는 결심을 담고 있어요. 곧 레미제라블 타이틀과 함께 가난으로 비참했던 1800년대 초반으로 [At the end of the day]를 통해 초대합니다.

 

 

 

[첫공 시기의 12월과 막공 즈음 3월에 봤던 캐스팅]

 

 

 

2011년 말 메가박스에서 상영한 <오페라의 유령 25주년 기념 공연>을 통해 뮤지컬에 대한 흥미를 갖게 했다면, 2012년 개봉한 톰 후퍼 감독의 <레 미제라블>을 통해 그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극장에서만 3번을 보고 약 3~4개월 지나 정식 라이선스를 수입한 2013년 국내 초연을 봤어요.

 

2015년 말 다시 무대에 오른 <레 미제라블>을 만났습니다. 서울 첫공 즈음 12월 초 정성화씨(장발장)와 김우형씨(자베르)를 본 후 3월 초 막공 직전 양준모씨(장발장)와 김준현씨(자베르)의 공연을 관람했어요. '돈 아깝지 않을까?' 싶었는데, 양발장의 공연은 어떨지, 첫공과 막공은 무엇이 다를지 궁금했습니다.

 

뮤지컬이라는 Live 무대는 회를 거듭할 수록 완성도가 높아진다는 걸 여실히 느꼈어요. 어설펐던 부분들이 자연스럽게 채워졌습니다. 학생 혁명가들이 사살 당할 때 살짝 엇나갔던 조명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어요. 조금 산만하고 부자연스럽다고 느꼈던 연출들이 제자리에 잘 꿰어져 보였습니다.

 

 

 

[2013년 초연 때 장발장 역을 맡은 정성화씨의 [Valjean's Soliloquy], 볼 때 마다 감명이 더해진다!]

 

 

 

좌석에 앉자마자 눈길을 잡아 끄는건 객석까지 이어진 무대 디자인이었어요. 기존 심플함에 더해 크고 화려하지만, 어두웠던 시대에 대한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극 흐름에 맞추어 역동적인 연출이 눈길마저 집중하도록 만들죠. 하지만, 영화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은 건 아닐까 싶은 장면도 있었어요.

 

장발장이 무거운 짐마차를 들어 올려 사람을 구할 때입니다. 이야기 맥락이 잠시 끊어졌어요. 자베르가 시장을 의심하는 장면을 극 흐름에 맞춰 표현했다면 어땠을까 싶었습니다. 무대 전체를 반으로 나누는 큰 문, 별이 수놓은 하늘과 가로등, 혁명군의 바리케이트 장면 등은 위용을 자랑했어요. 2층에서 볼 때 스크린에서 보고 있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독특하지만 친숙한 팡파레 리듬으로 시작하는 [Prologue & Look down]에서 조명 쓰임새는 <맨 오브 라만차>에서 지하동굴을 비추는 한 줄기 햇살과 비슷한 역할을 했습니다. 노를 젓고 있는 죄수들 머리 위로 떨어지는 햇살과 어둡고 음침한 조명의 대비는 세상과 동떨어진 공간을 효과적으로 보여 줍니다.

 

 

 

[작품의 Prologue 역할을 하는 [Look down] 장면, 출처: 레미제라블 코리아 홈페이지]

 

 

 

<레 미제라블> 무대에서 듣는 감탄스런 넘버들은 감명을 증폭시키죠. 대체로 좋은 아리아도 작품 밖에서 들으면 울림이 떨어집니다. 캐릭터들에게 부여된 [I dreamed a dream], [Stars], [On my own], [Bring him home] 등의 아리아들은 따로 들어도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는 호소력을 지니고 있어요.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심리를 표현하는 합창 역시 마음을 이끕니다. ABC Cafe에서 부르는 [Red and Black]은 앙졸라의 혁명에 대한 호소와 코제트에게 반한 마리우스의 설렘이 화음을 이루죠. [In My Life] [A heart Full of love]에는 풋풋한 사랑 뿐만 아니라 애절한 짝사랑, 부성애를 함께 노래합니다.

 

자베르의 추격을 직감한 장발장의 불안한 내일, 엇갈린 운명이 다가오는 시간을 맞이하는 코제트와 마리우스 그리고 에포닌, 혁명을 통해 희망을 이루겠다는 학생혁명군과 그들 모두 잡으려는 자베르 등, 주요 등장인물 모두가 각자 원하는 '내일'을 담고 있는 [One day more] <레 미제라블>을 대표하는 웅장한 아리아죠.

 

 

 

[2013년 초연 때 자베르 역을 맡았던 문종원씨의 [Stars]]

 

 

 

재미있는 요소 중 하나는 캐릭터만큼 다양한 이야기들입니다. 장발장과 자베르의 대결 구도에서 오는 긴장감 속에서, 팡틴과 코제트의 비극적인 모성에 대한, 돈을 위해 뭐든지 하는 떼나르디에 부부의 웃픈, 실패한 혁명이 주는 비애, 코제트와 마리우스 그리고 에포닌의 사랑 등 다채로운 공감 요소를 보여주죠.

 

떼나르디에 부부의 돈 욕심은 마치 나를 보는 듯해서 미워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에게 키워질 때 공주였던 에포닌이 숙녀가 된 코제트를 보고 느꼈을 마음은 간만에 만난 코찔찔 동창이 사회적으로 성공해 나타났을 때의 그 마음과 비슷할테죠. 도저히 변하지 않는 자베르의 우직함에는 존경심과 함께 답답함이 듭니다.

 

많은 이야기들이 장발장의 삶을 관통하여 표현되고 있습니다. 주된 장면마다 그의 측은지심과 성찰을 만나요. 성당에서 지금처럼 도둑놈으로 살 수 없다고 결심한 이야기는 작품의 시작입니다. 다른 이가 '장발장'으로 오인되어 체포된 상황에서 신과 자신을 속일 수는 없다며 부르는 [Who am I]는 모든 걸 버릴 각오를 보여주죠.

 

 

 

[2막의 중심 스토리 라인을 형성하는 6월 혁명의 바리케이트 장면, 출처: 레미제라블 코리아 홈페이지]

 

 

 

본인 실수로 팡틴의 삶이 나락에 떨어진 것에 죄책감을 느껴 그녀의 딸 코제트를 평생 돌보겠다는 마음은 [Fantine's Death]로 표현됩니다. 6월 혁명기간 중 자베르를 피해 다시 도망가려는 찰나 코제트와 사랑하는 마리우스를 살려야겠다는 결단이 그들에게 사랑의 결실을 안기고 본인은 안심하며 떠나죠.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 지 소상하게 쓴 편지를 코제트에게 주며 미리엘 신부와 팡틴은 물론 코제트, 마리우스와 함께 부르는 [Epilogue]는 주요 아리아들의 리프레이즈로 만들어졌습니다. 장발장이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품에 안겨 평안하게 눈을 감는 순간 '' 역시 저 순간을 마주할 때 어떨지 상상하게 되죠.

 

잠깐이지만, 바로 그때가 내 삶을 쭉 살펴본 순간이었습니다. 가슴을 파고드는 명장면이 많았지만, 이 라스트 신의 인상은 유독 크게 다가왔어요. 벅차오르는 그 감정을 그대로 이어 등장인물들 모두가 함께 부르는 Finale,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은 가슴을 들끓게 만들더군요.

 

 

 

[영화 레미제라블에서의 라스트 신과 [Do you hear the people sing]]

 

 

 

<레 미제라블>의 뜻은 '비참한 사람들' 이라고 합니다. 작품에 나오는 많은 캐릭터들 중 누가 비참한 사람인지, 지금의 내가 사는 모습은 어떤지 묻게 되더군요. Finale 아리아의 외침이 지금 당장 뭔가 해야할 듯한 에너지를 줍니다. 원하는 삶으로 다가서지 못하게 만드는 ''를 옭아매어 구속하는 그 무엇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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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1. 월간 <더 뮤지컬> 편집장인 박병성씨가 쓴 네이버캐스트의 <레 미제라블>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43&contents_id=12839

2. 2016 뮤지컬 <레 미제라블> 홈페이지

   http://www.lesmis.co.kr/

 

 

by 왕마담 2016.03.20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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